<앵커>
이른바 황제 노역 사건의 숨겨진 내막을 취재한 내용, 오늘(20일)도 이어가겠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인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자신의 사위인 김 모 판사가 당시 재판장을 상대로 로비를 벌여서 황제 노역 판결이 나온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허재호 씨는 김 모 판사를 둘러싼 또 다른 의혹을 저희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고정현 기자가 단독 취재한 내용 먼저 보시겠습니다.
<고정현 기자>
지난 2010년 광주지법 파산부 수석부장으로 대주그룹 계열사 2곳을 법정관리하던 선재성 전 판사.
계열사 자금의 수상한 흐름을 포착해 허재호 전 회장에 대한 고발을 검토했습니다.
[선재성/전 고등법원 부장판사 : (허재호 전 회장이) 의도적으로 돈을 빼돌려 가지고 이렇게 회사들을 망가뜨려 놓냐고. '손해배상 청구도 하고, 고발 응하지 않으면은 고발하는 것으로 해보자'라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러나 얼마 뒤인 2011년 3월 초, 선 판사는 비위 의혹이 제기돼 사법연수원으로 좌천되면서 법정관리에서 손을 떼게 됐습니다.
법원행정처 감찰과 검찰 수사도 동시에 이어졌습니다.
대주그룹 계열사 공동관리인에게 친구인 B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도록 요청한 게 변호사법 위반으로 인정돼 벌금 300만 원이 확정됐고 정직 5개월 징계도 받았습니다.
허 씨는 이 과정에서 사위인 김 모 판사가 선 판사에 대한 진정 투서를 직접 넣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허재호/전 대주그룹 회장 (지난 1월 지인 통화) : 진정 탄원을 김00이가 썼어. (선재성 판사를) 법정관리인 빼버리고, (사법)연수원으로 발령해버렸다고. 그 사람이 법원장까지 할 사람인데.]
허 씨는 SBS와의 통화에서도 같은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허재호/전 대주그룹 회장 (SBS와 통화) : 정식 서류를 만든 것은 김00이에요. 대법원에 낸 건. 선재성 관계되는 서류가 대주 건설 앞으로 왔어요. 그 서류를 보고 김00이가 거기에 대해 '선재성이가 여러 이런 문제가 있다' 해가지고, 긴 서류를…]
당시 선 부장판사가 처가 소유 회사에 대한 압류 결정을 내리자 이에 반발해 진정 투서를 작성한 거라고 허 씨는 설명했습니다.
[허재호/전 대주그룹 회장 (SBS와 통화) : (김 판사 장모) 황00이가 뮤제오라는 (회사를 운영)했어요. 이태리 수입가구 회사를 했어요. 그것을 갖다가 (법원이) 압류를 해버렸어요. (그래서) 황이 막 흥분하고 난리가 나니까. (사위) 김00 이라든지 딸들이 다 같이 흥분을 했죠. 선재성 판사를 혼내야 된다고.]
선 판사 측은 당시 김 판사 처가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선재성/전 고등법원 부장판사 : (김 판사 장모 황 씨가) 아주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가압류를 했느냐. 니네들이 그런 식으로 하면은 광주에서 변호사를 할 수 있는지 봐라.]
선 판사는 또 김 판사가 장인인 허 씨 관련 선처 요청도 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선재성/전 고등법원 부장판사 : 김00 판사가 저한테 찾아와서 (장인 허 씨에 대한) 책임 추궁하라고 제가 지시를 내렸는데, '그걸 없었던 일로 좀 할 수 없겠느냐'고 저한테 부탁을 했어요. (하지만 거절했죠.)]
지난달 26일 김 판사 해명을 듣기 위해 근무지를 찾아갔습니다
[법원 관계자 : 금요일 스마트워크라서 오늘 출근 안 하셨습니다. (스마트워크가 뭔가요?) 자기 자택 주변에 법원으로 출근하는 거예요.]
집 근처 법원이 아닌 서울 자택에서 취재진을 만난 김 판사는 관련 의혹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김 판사는 대신 대리인을 통해 "허 씨가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상대로 근거 없이 형사고소를 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계속 괴롭히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선재성 전 판사 진정 의혹과 관련된 질문들에는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취재 : 하 륭, 영상편집 : 오영택, VJ : 김준호, 그래픽 : 이재준·김한길·임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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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허재호 씨는 또 사위인 김 모 판사가 과거 대주그룹 경영에도 사실상 참여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부회장으로서 회의까지 주관했다고 하는데, 이에 사위인 김 모 판사 측은 일방적인 허위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내용은 유수환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유수환 기자>
허재호 전 회장은 지인과의 통화에서 사위인 김 모 판사가 대주그룹 경영에 깊숙이 개입했었다고 말했습니다.
[허재호/전 회장 (지난 1월 지인 통화) : 회사에 출근해 가지고, 회사 재산 다 관리하고….]
법원에 장기 휴가를 내고 회사 회의까지 주관했다고도 했습니다.
[허재호/전 회장 (지난 1월 지인 통화) : 휴가를 6개월 맡아 가지고 회사에 부회장으로서 회의 주관을 다 해서 회사 업무에 다 관여를 했어….]
끝까지판다팀은 과거 대주그룹 임원들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허 씨의 주장과 비슷한 내용으로 진술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지난 2010년 대주건설 부도 당시 대표를 맡았던 A 씨는 "허재호 회장이 2010년 뉴질랜드로 출국하기 전 앞으로 법적인 부분은 김 판사와 상의하고, 자금 부분은 둘째 사위와 상의해 처리하라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습니다.
대주건설 계열사 대표였던 B 씨도 경찰 조사에서 "김 판사가 휴직 중에 대주건설을 왔다 갔다 했었고, 대주건설 내에서 만난 사실도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런 진술들이 사실이라면 김 판사는 대주건설 부도 전후로 단순한 법적 조언 수준을 넘어 회사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걸로 추정됩니다.
허 씨는 SBS와 통화에서 대주그룹 재산 처분 과정에도 김 판사가 관여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허재호/전 회장 (SBS와 통화) : 자기가 부회장이네 하고 다니면서요. 회사 돈은 전부 남길만 한 것 다 간추려 가지고 어떻게 했는지 몰라요. 나는 회사 망하고 나서 단돈 5천만 원 하나 받은 거 없어요. 장모, 사위, 김OO이 짜고 해먹을 거 다 해먹고 티끌만 남겨 놨어.]
김 판사는 대리인을 통해 "장인 허 씨와 큰 갈등이 생겨 10년 가까이 인연을 끊고 있다"며 "허 씨의 이런 말들은 일방적인 허위 주장일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영상취재 : 하 륭, 영상편집 : 오영택, VJ :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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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제(19일)도 말씀드렸듯이 허재호 씨의 이런 주장은 가족과 재산 다툼 과정에서 나온 거기 때문에 이 말들이 다 사실인지는 명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허재호 씨는 판사 사위가 한 일들이라고 계속 이야기하지만, 사실 허 씨를 둘러싼 특혜 논란은 예전부터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내용은 권지윤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권지윤 기자>
허재호 전 회장 녹취에 등장하는 사법부를 향한 '로비'와 '좌천'.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익을 얻은 것도 허 씨 자신인데, 그동안 허 씨를 둘러싼 맞춤형 특혜 논란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2007년 허 씨에 대한 수사 당시 광주시장과 전남지사를 비롯한 호남지역 기관장들 및 전 국회부의장, 지역언론사 사장 등 각계에서 탄원을 요청했습니다.
508억 원대 탈세와 100억 원대 횡령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엄벌은커녕 선처 요청부터 쇄도한 겁니다.
그 때문일까, 광주지법은 "대주그룹이 허재호 씨 1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례적 사유까지 붙여가며 허 씨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검찰은 징역형과 벌금 1천억 원을 구형하면서도 벌금형 선고유예를 요청하더니 2008년 12월 말, 1심은 탈세액의 두 배 이상도 가능한 벌금을 도리어 작량감경으로 508억 원으로 뚝 깎습니다.
약 1년 뒤 항소심은 또 다른 감경사유를 찾아내 징역형은 줄이고 벌금은 254억 원으로 낮춰 '일당 5억 원의 황제노역' 판결을 완성합니다.
허 씨가 탈세를 숨기려 허위진술을 유도하고 증거까지 없앴지만, 검찰 고발 전 자수서를 제출한 걸 '자수 감경' 사유로 삼은 겁니다.
법의 권위와 신뢰는 무너졌는데, 특혜와 비호를 둘러싼 규명이 없던 탓에 허 씨는 지금까지 수혜자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영상취재 : 하륭, 영상편집 :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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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취재한 고정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현직 판사가 보복성 투서?
[고정현 기자 : 허재호 씨 폭로와 관련해 우선 법관 윤리규정부터 따져봐야 됩니다. 법관은 다른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주는 행동도, 타인의 법적 분쟁이나 재판에 개입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됩니다. 또 직무수행에 지장을 줄 '염려'만 있어도 경제적 거래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데요. 공정성, 청렴성 이 두 가지 의심받을 행동은 티끌만큼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허 씨 말에 따르면, 사위 김 판사는 처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선배 판사 좌천에 개입하고, 현직 법관 신분으로서 그룹 경영에도 참여했다는 거니,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윤리 규정 위반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Q. 판사 사위가 선처 부탁?
[고정현 기자 : 네, 맞습니다. 어제 사위 김 판사가 '황제노역 판결' 재판장에게 로비를 했다 이런 허재호 씨 주장 전해 드렸는데요. 당사자인 김 판사는 사실무근이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습니다만, 장인 허 씨의 선처를 김 판사가 직접 요청했다는 선재성 전 판사의 증언까지 나왔기 때문에 '황제노역 판결' 로비 의혹의 실체, 반드시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Q. 심각한 의혹, 왜 이제야?
[고정현 기자 : 네, 사실 9년 전에도 황제노역 판결이 논란이 되면서 허재호 씨를 둘러싼 각종 유착, 특혜 의혹 일부 제기가 됐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법부는 특정 지역 법원에 오랫동안 근무하는 이른바 '향판 제도', 이 제도에만 손질했을 뿐, 정작 각종 특혜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법부가 저희가 제기한 각종 김 판사와 관련된 의혹들뿐만 아니라 최종 수혜자인 허재호 씨에 대한 특혜 논란의 실체가 뭔지 직접 밝혀야 할 겁니다.]
Q. 내일 보도는?
[고정현 기자 : 네, 내일은 그동안 호화 생활 논란이 일었던 허재호 씨와 허 씨 일가, 그리고 그와 너무 대비되는 생활을 하고 있는 대주그룹 부도 피해자들의 현 상황 그리고 남은 쟁점들 살펴보겠습니다.]
(영상편집 : 오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