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이효석 뉴스페퍼민트 대표 )
지난 6일 뉴욕타임스에는 의학 발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됐습니다.
1988년 태어난 몰리 팸은 열 살이 되던 해, 당시로서는 서른 살을 넘기기 어렵다고 알려진 낭포성 섬유증 진단을 받습니다. 그러나 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프리랜서 요리사가 되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서른 살이 되기 전 예상대로 몰리의 폐는 망가졌고, 그녀는 폐 이식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트리카프타라는 약이 등장했고, 이제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은 60대까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현대과학과 의학의 성공담입니다. 말기 질환으로 분류되던 낭포성 섬유증은 만성질환으로 바뀌었고, 몰리와 같은 환자들은 30년 정도를 더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는 속도
이렇게 생존율이 올라가는 것은 단순히 몇 년의 시간을 더 버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트리카프타는 몰리와 같은 이들에게 30년의 수명을 더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30년이 30년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30년은 낭포성 섬유증을 포함한 의학계 전체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곧 몰리는 70세와 80세를 넘어 100세까지 살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낭포성 섬유증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질병이나 노화를 피해 단 몇 년이라도 더 살 수 있게 된다면, 그 몇 년 사이에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다시 남은 수명을 더 늘려줄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영생'이라는 극히 비현실적이며 환상적으로 들리는 개념을 현실로 가져옵니다. 어느 순간, 생명공학 기술이 수명을 늘리는 속도가 노화의 속도보다 빨라지게 될 때 사람은 죽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는 속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계획하는 일
예를 들어, 몰리의 경우 열 살 때부터 서른 살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몰리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가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했을까요? 즐겁고 행복한 학생 시절을 보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판단이지 않았을까요? 기대수명이 60대로 늘어난 지금도 몰리는 여전히 노후를 위해 얼마나 저축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비슷한 질문과 고민을 늘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40대나 50대의 사람들이 치아 교정이나 눈 성형을 고민할 때 자신의 기대수명이 70세인지 아니면 100세인지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보험으로 재정을 보조해야 하는가 하는 좀 더 제도적인 문제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