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세 번의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위원장이 사실은 문 대통령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주고받은 친서들이 공개된 것을 보면, 김정은은 2018년 9월 21일 보낸 친서에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하며, 지금 문 대통령이 우리의 문제에 대해 표출하고 있는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노골적으로 문 대통령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더구나 김정은이 이 친서를 보낸 날은 2018년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이어서, 백두산에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던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지금의 시점에서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2018년 당시에는 많은 국민들의 지지 속에 남북 화해의 움직임이 진행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도보다리 회동'은 깊은 인상을 남겼고, 문 대통령이 당시 진정성을 가지고 남북 화해의 길로 매진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 당시 서울 프레스센터에 내걸렸던 현수막 "우리는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당시 정부의 희망적인 분위기를 상징합니다.
당시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지지를 보냈던 것은 남북 관계에 정말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북한에 또 한 번 속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시 우리 국민들이 북한에 또 속을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몰라서 남북 관계 발전에 지지를 보냈던 것일까요? 당시 국민들의 지지는 북한을 반드시 믿어서가 아니라, 남북이 어떻게든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분단을 극복하며 미래지향적인 통일의 길로 갔으면 하는 기대감에서 비롯됐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들
2018년의 순수성은 그 자체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또 한 가지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2018∼2019년의 화해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뒤늦게 드러나고 있는 사실은 우리가 화해 협력의 국면이라 생각했던 그 시기에도 김정은은 남한을 배제하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정성을 가지고 김정은을 대했을지 모르지만, 김정은은 백두산에서 문 대통령의 손을 맞잡은 바로 다음 날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을 배제하자는 친서를 보냈습니다.
2018년의 남북 화해 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남북 관계의 발전을 지고지순한 가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의 화해 분위기는 하노이에서 미국의 무리한 요구로 어그러진 만큼 복원해야 하며, 2018년 당시의 남북 간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2018년의 과정 자체가 북한의 속임수였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속임수를 알았든 몰랐든 북한에 이용당한 것이며, 남북 간의 신뢰는 허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철저하게 국익 위주로 움직이는 국제관계에서 지도자 간의 신뢰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 간 신뢰가 있다고 해서 국가지도자가 자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김정은은 애초부터 북한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문 대통령을 이용했을 뿐인데, 우리가 '장밋빛 남북 관계 발전'이나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 같은 감성적인 기대감에 빠져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기대'와 '현실'을 구분해야
우리가 2018년의 경험에서 되짚어 볼 부분은 현실은 현실대로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시 국제정세를 이용했을 뿐인데, 우리는 남북 관계 발전이라는 '기대'에 빠져 북한이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곱씹어봐야 합니다.
남북 관계에서 기대와 현실을 뒤섞어보는 모습은 비단 2018년 만의 일도 아닙니다. 지금도 이념적 지향성에 따라 남북 관계를 자신의 '기대'대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만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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