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을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면서, 검사 시절 윤 당선인과 이들의 '악연'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2012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산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 소속으로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했습니다.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의 친형이 검찰에 구속된 첫 사례였습니다.
이후 굵직한 특수 사건들에 투입되며 승승장구하던 윤 당선인은 2013년 이명박 정권 관료들이 연루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기점으로 '미운털'이 박혔습니다.
당시 수사팀장을 맡고 있었던 그는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윗선의 부적절한 수사 지휘가 있었다고 폭로했습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직속상관을 공개 비판한 그는 이후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대구고검으로 좌천됐습니다.
4년여간 한직을 떠돌던 윤 당선인은 2016년 정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으며 화려하게 '칼잡이'로 복귀했습니다.
정·재계 고위직 인사들을 거침없이 수사하며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혔고, 성과를 인정받아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인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후 윤 당선인은 '적폐 청산'의 명분을 앞세워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습니다.
검찰은 다스를 통한 비자금 조성과 뇌물 의혹을 파헤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친형과 아들 사위 등을 조사했습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한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 역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며 비판했습니다.
야권 역시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를 규탄하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반발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는 '정점'을 향했습니다.
검찰은 2018년 3월 이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습니다.
횡령과 뇌물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의 실형을 확정받아 현재 수감 중입니다.
'검사 윤석열'은 이재용 부회장과도 악연이 깊습니다.
윤 당선인은 국정농단 사건 수사 당시 정권에 대한 삼성 그룹의 뇌물 공여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삼성전자 사옥과 그룹의 미래전략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등 핵심 간부들은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수사망을 좁혀가던 검찰은 2017년 두 차례 영장 청구 끝에 이 부회장을 구속했습니다.
뇌물 공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광복절에 가석방됐습니다.
윤 당선인은 2019년 검찰총장에 취임한 후 '삼성 합병·승계 의혹'의 수사를 지휘하며 이 부회장에게 또 한 번 칼끝을 겨눴습니다.
삼성 그룹 계열사 임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이 부회장에 대해 또 한 번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이후 열린 수사심의위원회에서도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불기소 권고가 나왔으나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윤 당선인이 향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특별 사면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다음 사면이 부처님오신날(5월 8일)에 맞춰 이뤄진다면 윤 당선인이 취임하기 전이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여부 결정은 형식상 현 정부의 몫이 됩니다.
윤 당선인은 앞서 대선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전직 대통령이 장기간 수감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검찰총장 시절에는 "이명박 정부가 측근을 구속할 때 별 관여가 없었고 쿨하게 처리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이 검찰 시절 직접 범죄혐의를 밝혀내 기소한 인물들에 대한 사면을 건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자기 손으로 잡은 '범죄자'들에 대한 사면을 건의하는 것은 수사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라며 "윤 당선인이 검사 시절 강조했던 '법과 원칙'을 정치적 고려에 따라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