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SBS 뉴스의 팩트체크팀 「사실은」과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선거 기간 동안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들을 명징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알려드리기 위한 취지입니다. 선거 때마다 판을 치는 허위·과장 정보를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은」팀의 이경원 기자는 '해석'을, 「마부작침」팀의 배여운 기자는 '분석'을 맡습니다. 대선 직전까지 연재합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한 발짝, 한 발짝, 팩트에 다가가는 데이터 세상으로 함께 빠져보실까요?
이번 대선은 유독 '세대'와 관련된 기사들이 많습니다. 청년층은 '진보', 중·고령층은 '보수'라는 전통적 세대론이 깨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언론들은 앞다퉈 진보의 든든한 우군이었던 청년층이 보수로 돌아섰다는 걸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되는 청년층 여론조사를 봐도 이런 경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국, 기사들은 '청년층의 보수화'로 쉽게 결론 내리곤 합니다.
「사실은」팀은 아무리 당연한 명제라도 수치와 데이터로 입증해보자는 문제 의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는 추이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실제 투표율을 통해 최근 청년층의 지지 성향은 어땠는지 파악해보고 싶었습니다.
과거 선거관리위원회 개표 시스템도 확인해보고, 관련 논문도 뒤져봤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결국, SBS 데이터저널리즘의 끝판왕 「마부작침」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마부작침」도 기존 선거에서 청년층만 딱 떼어내 누굴 지지했는지 알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선거 데이터를 통해 청년층의 성향 변화를 '유추'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믿고 보는 마부작침에 바통을 넘기겠습니다.
아쉽지만, 우리나라 선거는 비밀 투표이기 때문에 연령, 성별에 따른 개표 결과 분석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주민등록 데이터를 활용해 2030 유권자가 많은 동네는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년들이 많이 사는 동네의 과거 개표 결과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난다면 청년들의 표심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부작침」은 2030세대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몰리는 서울에 집중해봤습니다. 서울의 2030 유권자 비율은 35.03%(2012. 12월 기준)입니다. 서울의 유권자 3명 중 1명은 2030세대란 의미죠. 따라서 마부작침은 425개 행정동 중 20, 30대 유권자 비율이 35.03%가 넘는 동네 77곳을 MZ 유권자 밀집 지역이라고 설정했고 그 외 지역과 비교해가며 과거 행정동 개표 결과를 분석했습니다.
이같이 20, 30대 비율이 높은 행정동은 대학가 앞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관악구 신림동, 낙성대동(서울대), 광진구 화양동(건국대), 성동구 사근동(한양대), 서대문구 신촌동(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동대문구 회기동(경희대, 시립대, 한국외대) 성북구 안암동, 동선동(고려대)등입니다. 문재인 정부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이 동네의 표심은 과연 어땠을까요?
▶ 역대 대선 다 맞춘 '천기누설 동네'는 어디?
19대 대선…MZ세대의 표심은 누구?
서울 내 행정동 가운데 20, 30대 비율이 높은 77곳에서 문재인 후보 득표율은 44.07%, 그 외 행정동에서는 40.97%로 3.1%포인트가량 차이가 났습니다. 당시 서울 전체 득표율인 42.34%와 비교해보면 20, 30대 유권자 비율이 높은 동네는 서울시 전체 득표율보다 문재인 후보 지지도가 실제로 더 높았습니다.
개별 동네로 더 자세히 들여다 볼까요? 서울시 행정동 중 가장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이 높았던 건 관악구 신림동(51.24%)이었고, 금천구 가산동(48.81%), 관악구 중앙동(47.49%), 동대문구 회기동(47.42%), 광진구 화양동(47.32%) 등과 같이 MZ세대 비율이 높은 동네 다수가 문재인 후보 득표율이 서울 전체 득표율을 상회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다음 해인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서울시장 선거까지 이어집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판세는 3강 체제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후보,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 그리고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였죠. 결과는 1년 전보다 진보의 흐름은 더욱 강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의 서울 전체 득표율은 52.79%로 1년 전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가 받은 41.08%보다 10%포인트 더 높았는데요. 이를 다시 20, 30대 유권자가 많은 동네와 그 외 지역을 비교해 보면, MZ세대 밀집도가 높은 동네에서 박원순 후보 득표율은 54.95%, 그 외 지역은 52.19%로 두 비교 그룹 간 차이는 3.64%포인트입니다. 19대 대선에서 보인 3.1%포인트보다 더 벌어졌네요.
그렇다면 안철수 후보는 어느 동네에서 표를 많이 받았을까요? 안 후보에게 가장 많은 득표율을 안겨준 건 바로 노원구 상계5동(30.44%)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상계1동(29.93%), 종로구 창신2동(29.12%), 상계2동(28.86%)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득표율이 높았던 동네 상위 10개 중 6곳이 본인의 지역구였던 노원구에 속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즉, 안 후보에게 표심을 던진 건 결국 2030세대가 아닌 안 후보의 직전 '지역구' 유권자들의 지지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 지역 대부분은 20, 30대 거주 비율이 서울에서 하위권에 속하기 때문에 안철수 후보가 19대 대선에서 서울 지역 20, 30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21대 총선... 청년 표심에 어떤 '조짐'이 보인다
우선 전체로 보면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서울 전체 득표율은 52.5%, 미래통합당은 42.9% 였습니다. 총선은 지역구마다 후보가 다르기 때문에 서울 전체 득표수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받은 득표수를 나눴습니다. 서울 지역구는 민주당이 41석, 미래통합당이 8석으로 압도적인 차이였지만 득표율에서는 크게 나지 않았습니다.
20, 30대 유권자 표심은 어땠을까요? 대선과 지방선거까지는 더불어민주당을 강하게 지지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달랐습니다. 전 선거에서 MZ밀집 동네와 그 외 지역의 더불어민주당 후보 득표율 차이가 3.64%포인트까지 벌어졌지만 21대 총선에서는 2.07%포인트로 오히려 감소합니다. 민주당의 압승이란 평가인 21대 총선에서 그 2, 30대 유권자들의 표심은 반대로 관측된 겁니다. 이런 현상은 20, 30대 유권자 비율이 높은 동네로 좁힐수록 더 심해집니다. 청년층 비율이 50% 이상인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표심을 살펴보면 직전 서울시장 선거에서 6.01%포인트 차이로 훨씬 벌어졌지만 21대 총선에서는 2.16%포인트로 격차가 떨어집니다.
즉, 의석수에서는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지만 실상은 20, 30대 유권자의 표심에는 서서히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 배경에는 <조국 관련 논란>, <낮은 취업률>, <부동산> 등 MZ세대의 민감한 이슈와 맞물린다는 분석입니다. 인사이트케이 배종찬 소장은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 배신감이 청년 민심이 돌아선 가장 큰 이유" 라며 "조국 전 장관이 강조했던 가치가 '정의'였는데 사모펀드 관련된 부분, 가족과 관련된 의혹들이 결국 청년들이 등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대학가는 '더불어민주당'을 외면했다
「마부작침」은 대학가 앞 행정동을 중심으로 4·7 재보궐선거 개표 결과를 비교 분석해 봤습니다. 현 정권의 심판 성격이 강했던 선거에서 20, 30대 유권자들의 심판은 어땠을까요? 표심으로 보여준 청년층의 민심은 생각보다 엄중했습니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쪽으로 돌아선 득표율을 계산해 보니 가장 크게 변한 곳은 서울시 행정동 중 관악구 신림동으로 득표율 44.81%포인트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림동은 20, 30대 유권자 비율이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청룡동, 낙성대동 등 대표적인 진보 텃밭으로 불리던 관악구 내 모든 행정동에서 이런 급격한 표심 변화가 관측됐습니다.
다른 대학가 앞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북구 안암동 39.52%포인트, 마포구 대흥동 39.13%포인트, 용강동 37.47%포인트, 성동구 사근동 36.27%포인트, 회기동 33.63%포인트, 화양동 32.13%포인트 등으로 나타났는데 이렇게 짧은 기간에 표심이 크게 바뀌는 건 이례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장성철 특임교수는 "현실적인 먹고 사는 문제에서 쳥년들이 좌절했다"라며 "하지만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뽑은 게 청년들이 보수화 된 건 아니고 상식적인 판단에 옮겨갔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2030세대는 과거처럼 진형, 이념, 지역을 떠나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은」팀은 「마부작침」의 분석을 보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특정 계층의 '이념'이 불과 몇 년 새, 이렇게 극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 한국 현대 정치사에 이런 선례가 있었던가.
급작스러운 이념 변화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고 사람이 변하는 동물이라도, 이념 만으로는 해석이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다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민주당은 '진보', 국민의힘은 '보수'라는 이념적 틀거리는 '사실'인가.
최근 「사실은」팀 아이템 회의 중에 대학생 인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머리 커지고 국민의힘이 이기는 선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 민주당이 이긴 선거를 경험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6년 전 2016년 총선을 기점으로 민주당은 우세를 점했고, 이후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을 거치며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거까지 최근의 큰 선거는 모두 민주당의 '압승'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청년층들에게, 정치적 주류, 이른바 '기축 정당'은 민주당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586세대를 비롯한 민주화 세대들, 그리고 그 이후 X세대들은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의 장기 집권 시기, 혹은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범보수 정권 속에서 청춘의 한복판을 보냈습니다. 세대 별로 기축 정당의 기준이 묘하게 다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청년층은 그 어느 세대보다 정치적 주류와 기득권 세력에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 왔습니다. 어느 시대든 어느 국가든 볼 수 있는 보편적 정서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민주당=범진보, 국민의힘=범보수라는 공식을 전제하고 '청년층의 보수화'라고 답을 내는 건 기계적인 분석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이념적 틀거리는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실제 두 정당의 이념적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약만 보더라도 수사가 조금 다를 뿐, 모두 복지를 말하고 공정을 말합니다. 정책만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누가 진보이고 누가 보수인지 쉽사리 정답을 맞히기 힘들 것 같습니다.
결국, 청년층의 표심이 극적으로 변했다는 「마부작침」의 분석은 '청년의 보수화'라기 보다는, 이념 정치가 희석되고 있는 현실 정치, 이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성'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분명한 것은 표심을 결정 짓는 여러 변수 가운데 이념의 영향력은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건 한국만의 이야기도 아니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이른바 '선진국'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SBS 「사실은」과 「마부작침」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다양한 층위를 풀어내는 분석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SBS 사실은' 치시면 팩트체크 검증 의뢰하실 수 있습니다. 요청해주시면 힘 닿는 데까지 분석해보겠습니다.
글 : 이경원, 배여운 디자인 : 안준석 데이터분석 : 강동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