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운 군은 4남매 중 셋째였습니다.
낯을 많이 가렸지만 친한 또래들 앞에선 장난기 넘쳤던 친구.
하지만, 가정 형편을 생각해 대학 대신 바다에 미래를 걸었던 속 깊은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돈 많이 벌어서 요트 사업을 하겠다는 꿈도 꿨습니다.
[故 홍정운 : 아파트 예쁜데? 내 것 할까? 한 동을 사줄게.]
홍정운 군이 미래를 걸었던 바다, 잠수 현장실습 첫 날이었습니다.
요트 밑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없애는 작업이었습니다.
평소 물을 무서워했다는 정운 군, 숨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물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12kg짜리 납덩이가 달린 허리 벨트를 풀지 못했습니다.
정운 군은 수심 7m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故 홍정운 군 아버지 : 잠수복을 벗고, 납벨트부터 풀어야 하는데, 한 번이라도 잠수를 해왔다면, 당연히 풀죠. 그날이 처음이에요. 이건 어찌 보면 어른들이 애 하나 죽인 겁니다.]
근로감독 결과 보고서에는 잠수면허도 없던 정운 군에게 잠수 작업을 시켰다고 써 있습니다.
잠수는 실습 대상 업무도 아니었습니다.
[故 홍정운 군 친구 : 스킨스쿠버 교육받는 데 못 들어가고 무서워서 중도 포기를 했단 말이에요. 그때부터 정운이가 수영도 안 하고 물에도 안 들어갔던 것 같아요.]
[故 홍정운 군 친구 : 물에 항상 안 들어 갔었어요. 그때 이후부터 안 들어갔었어요.]
[故 홍정운 군 친구 : 바다에 나가서 직접 잠수하는 게 있었나 봐요. 도중에 얘가 도저히 트라우마 때문에 못하겠다고…]
크고 작은 법들이 무시된 사이, 꿈을 위해 찍어둔 자격증 시험 원서 증명사진은 정운 군의 영정사진이 됐습니다.
[故 홍정운 군 아버지 : 정운이 친구들도 지금 현장에서 실습을 하고 있고요.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정운이 같은 일이 안 일어나라는 법은 없거든요.]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은 정운 군 아버지의 말에서,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용균재단 김미숙 대표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더는 아들과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는 것, 하지만,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기대마저 늘 반복되고 있는 역사를 딱딱한 숫자들로나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2018년 12월, 故 김용균 사망 이전과 이후,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이들에 대한 통계를 다시 분석했습니다.
사망 이전 2년 6개월, 2천403명 사망, 사망 이후 2년 6개월, 2천211명 사망, 떨어짐, 끼임, 부딪힘 순으로 희생됐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고가 잦은 이유가 컸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조금 줄었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다치는 사람들, 김용균 이전 21만 4천673명, 김용균 이후 23만 5천476명,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사망은 8% 줄었지만, 부상은 9.7% 증가했습니다.
10대, 20대 청년만 따로 살펴봤습니다.
김용균 이전 127명 사망, 이후 112명 사망, 12%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다친 사람은 김용균 이전 2만 2천675명, 김용균 이후 2만 6천533명, 17% 늘었습니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김용균 이후 사망 감소하고 있다며 낙관적인 분석을, 사망률은 감소했지만 다친 사람은 되레 증가하고 있다며 비관적인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김용균 이전이든 이후든,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목숨이 낙엽처럼"이라는 작가 김훈의 문장처럼, 이틀에 5명꼴로 죽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사가 지나간 자리는 적막이 흘렀습니다.
정치는 어느 때보다 요란합니다.
내년 큰 선거를 앞두고 모든 게 정치로 빨려 들어가는 사이, 산업 현장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정운 군이 스러진 자리에도 정치인들이 다녀가며 노동을 말하고, 청년을 말했지만, 우리가 죽어갈 다음 사고 현장에도 또 다른 정치인이 찾아올 겁니다.
우리를 구원해줄 길은 또 정치일 수밖에 없는 역설을 알면서도, 우리 스스로 되묻습니다.
우리에게 과연 미래는 있을까요?
2017년 11월, 현장실습을 하다 기계에 눌려 숨졌던 제주도 특성화고 학생 故 이민호 군의 4년, 故 김용균의 3년, 그리고 故 홍정운의 한 달….
그렇게 살아남은 우리의 지금,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팩트체크….
우리의 판정은 아직, 여전히, '판단 유보'입니다.
(자료제공 :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