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든 '고난의 행군'
그러면서 "나(김정은)는 당 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하여 각급 당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간고'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보면 어렵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은 그대로 해석하면 이전보다 더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각오하겠다는 뜻입니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 역사
첫 번째는 1938년 12월부터 1939년 3월까지의 시기로,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 빨치산부대가 일본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감행한 행군을 말합니다. 이 시기 김일성 부대는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모진 추위와 가슴까지 차오르는 눈길 속에서 식량난을 겪으면서도 일본군과 끊임없는 전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유래된 '고난의 행군' 정신은 어떠한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패배주의를 모르는 낙관주의 정신, 불굴의 혁명 정신으로 정의됩니다.
북한 역사에서 두 번째로 '고난의 행군'이라는 구호가 등장한 것은 1950년대 6·25전쟁 이후 시기입니다. 6·25전쟁 이후 경제 복구에 골몰하던 북한은 '고난의 행군' 정신을 내세우며 강력한 사상, 교양 학습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부터 1997년 말까지를 지칭하는 '고난의 행군'은 따라서 세 번째 '고난의 행군'입니다. 1980년대 말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로 대외적 고립 상태에 처하게 된 북한은 이 시기 극심한 경제 침체와 연이은 수해로 식량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김정은의 '고난의 행군'
이 같은 맥락에서 김 총비서는 사상 통제를 다시 한번 강력히 주문했습니다.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하면서 자라나는 청년세대들의 교양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외부 문물의 침투로 사상이 이완되는 것을 막고, 청년들을 김정은의 결사옹위대로 키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개조' 사업을 적극 벌여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북한이 갈수록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김 총비서는 "인간개조 사업을 적극 벌이며 집단 안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공산주의적 기풍이 차 넘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간개조 운동이 힘있게 벌어지던 천리마시대처럼 뒤떨어진 사람들을 사회주의적 근로자, 애국적인 근로자로 만드는 사업을 전당적으로 조직 전개하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21세기에 다시 꺼내 든 '고난의 행군'과 '인간개조' 사업. 외부와의 문을 닫아걸고 김일성 일가의 나라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이 같은 퇴행적인 움직임이 북한 주민들의 삶에 심각한 고난으로 다가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