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이 불거진 지난해부터 디지털 성 착취물을 거래하거나 소지한 이들이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대부분 자백이나 반성을 이유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9단독 조국인 판사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소지)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A씨에게 최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80시간의 사회봉사와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3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도 명령했습니다.
A씨는 지난해 2월 서울 관악구의 한 PC방에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접속해 가상계좌로 3만 원을 지불하고 동영상 1천125건을 휴대전화에 내려받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A씨가 접속한 사이트는 전직 승려 B(33)씨가 운영하던 곳으로, n번방·박사방 등 텔레그램으로 유포된 성 착취물이 단돈 몇만 원에 거래되는 곳이었습니다.
B씨는 지난해 12월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재판부는 "A씨가 성폭력 범죄로 이미 처벌받은 전력이 있고 아동·청소년 음란물 소지는 사회적 해악이 중대한 범죄"라면서도 "구매한 영상을 유포하지는 않았으며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최근 다른 법원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5만 원 상품권을 내고 텔레그램 성 착취물 4천785개를 내려받아 소지한 이모 씨는 지난달 서울서부지법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음란물의 양이 매우 많은 점에 비춰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자백·반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달 초 청주지법도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n번방 파일을 판매한다'는 사람으로부터 동영상 파일 2천798개를 전송받은 20대 남성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지난해 6월 개정된 법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구매하거나 소지·시청한 경우 1년 이상 징역에 처해야 합니다.
다만 법 개정 전 삭제한 사실이 입증된다면 1년 이하 징역, 2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형량이 훨씬 낮은 구법이 적용됩니다.
해당 영상들이 단순 음란물이 아닌 성 착취물임을 고려하면 수사·사법기관이 '영상물을 언제까지 소지했는지'를 확인해 법 적용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 개정 이전에 성 착취물을 내려받았더라도 지난해 6월 이후까지 삭제하지 않고 있었다면 개정법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동부지법에서 재판 중인 사건에서는 20대 남성이 아동 성 착취물을 지난해 6월 10일까지 소지한 사실이 확인돼 개정법을 적용하는 취지로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관계자는 "온라인 성 착취 범죄를 사소한 일로 치부하고 확산하는 데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일조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며 "법 개정의 취지를 살리려면 처벌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