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를 경고하며 지금까지 '전방위'로 이뤄진 은행권 기업 지원 방식의 변화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총재는 선별적 지원이나 경영혁신과 연계한 지원이 취약 부분에 대한 지원 축소나 지원 의지 약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22일 이 총재는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 초청 인사로 참석해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가는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장마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대응도 길게 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권이 기업을 지원하는 데도 지금처럼 전방위적 지원을 계속할 수 있는지, 접근 방식을 바꿔 지원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총재가 기존 '전방위' 기업 지원 방식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실상 '선별' 지원 전환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으로 은행권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는 기존 전방위적 지원과 대비되는 선별적 지원 방식의 구체적 예시도 들었습니다.
그는 "좀 더 창의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있을 텐데, 어려운 기업이 영업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꾸면 지원한다든지, 거래은행이 업종 변경을 권고한다든지, 기업의 경영 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동시에 이 총재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기업에 대한 지속적 지원 필요성도 강조했습니다.
이 총재는 "아직은 가계와 기업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말을 인용하며 "지원 자체는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코로나19 지원 관련) 접근 방식이 다소 달라지더라도 이것이 지원을 거둬들이는 시그널(신호)로 이해되거나 지원 의지의 약화로 해석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적 전언입니다.
간담회에서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 한 은행장은 "장기화 가능성 등에 대한 총재님의 의견을 널리 알려달라"며 "증시 급등 등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규모 기업 지원에 따른 은행의 중장기적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한 은행장은 "당장 올해 3, 4분기 은행의 건전성 지표가 문제라기보다, 내년의 지표 악화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정부와 한은은 재정·통화 정책을 통해 경영난에 놓인 기업들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당장 비가 한창 퍼붓는데 우산을 뺏을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 결국 각 기업의 위기가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 구조적 부실 탓인지 가려 지원도 차별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코로나19 지원 '출구 전략'입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서 경제 주체들이 지금 어느 정도 버티는 것은, 정부나 한은이 유동성을 계속 공급해 부실화를 늦추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만 아니면 괜찮았을 기업과 가계의 부실화를 막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 부실의 원인이 코로나19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지금은 특별한 방법이 없어서, 도산하라고 놔둘 수 없어서 유동성 공급을 어느 정도 해줘야 하겠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쯤에는 정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한국은행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