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도소리에서 훌륭한 타악기 연주자의 음악을 발견한다.
● 파도를 깨닫다
무심히 해송 숲길을 걷다가 문득 파도 소리를 깨닫는다.
어느 바다, 어느 육지를 돌아 예까지 와서 두런두런 속삭이는지 그 이유야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갯바위에 부딪치고 또 부서지는 그들의 끈질김은 어느 순간 박자를 갖추고 일정한 리듬을 타는 훌륭한 타악기 연주자의 음악이 된다.
조금은 떨어져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의 진면목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은 어쩌면 사실일 것이다. 아득히 귓전으로 밀려드는 파도 소리가 그러했다. 눈이 아닌 귀로 파도를 깨닫는 것은 눈이 보여주는 것, 그 이상이었다.
가끔은 풍경마저도 소리로 다가와 자신 안에서 증폭되며 여행의 이유가 되기도 하나보다.
숲길을 벗어난 길은 바닷가를 에둘러 갯바위를 지난다.
이정표는 머지않은 곳에 '용난굴'이 있음을 알려준다. 용난굴은 이름 그대로 '용이 나와 승천한 굴'이란다. 밀물일 때는 바다의 차지였다가 썰물일 때라야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는 동굴이기도 하다.
2007년 12월 7일, 이곳 태안의 앞바다에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 호'와 '삼성 1호'가 충돌하면서 유조선 탱크에 있던 약 8만 배럴의 원유가 태안 인근 해역으로 유출돼 태안 앞바다가 기름으로 뒤덮이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태안 앞바다는 삽시간에 죽음의 바다가 되고 말았다. 시커먼 기름을 뒤집어쓴 새들이며, 기름범벅이 된 아름다웠던 해안의 갯바위들, 그리고 수많은 생명들의 보고였던 갯벌은 더 이상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그들의 땅이 아니었다. 한 순간의 실수에 의해 빚어진 재앙은 그곳을 터전으로 사는 인간과 수많은 생명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이 해변이 10여 년 전 기름으로 얼룩졌던 그 해변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소생된 그 모습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상처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다 아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바다 속의 생태계는 그날의 아픔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땅의 사람들은 힘을 모았고, 그렇게 모인 한 명, 한 명의 손길이 태안의 앞바다를 이처럼 다시금 찾아와서 보고, 느끼고, 걸을 수 있는 곳으로 되돌려 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참여의 손은 위대한 손이었던 것이다.
바닷가 갯바위를 벗어난 길은 다시 해송 숲으로 이어진다.
바람이 분다. 얼굴을 스치며 지나는 바람 속에서 험난한 생을 살아온 그들만의 뜨거운 땀 냄새를 맡는다. 고달프지 않은 삶이야 어디 있으랴마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든 삶에는 아픔과 땀이 배여 있기 마련이다.
"삶은 길 위에 누군가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보물찾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순례자>의 작가인 코엘료의 혜안이 다시금 마음에 와 닿는다.
<와일드>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미국의 작가인 셰릴 스트레이드가 4,300여km에 이르는 미 대륙 종단 트레일인 PCT(Pacific Crest Trail)을 도보 여행한 경험을 쓴 와일드(원제:Wild: From Lost to Found on the Pacific Crest Trail)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영화는 자신의 전부였던 엄마가 갑작스런 암 선고를 받고 세상을 뜨자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로 살던 셰릴이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기 위해 PCT(Pacific Crest Trail)를 걷는 94일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녀는 1,700여km을 걸었다.
어느 날, 그녀를 상담하던 심리상담사가 묻는다.
"본인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당연히 소중하죠"
"그럼 누가 당신을 등한시했죠?"
그리고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엄마가 네게 가르칠 게 딱 하나 있다면, 네가 가진 최고의 모습을 찾으라는 거야. 그 모습을 찾으면 어떻게든 지켜내고."...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으니까 네가 맘만 먹으면 언제나 볼 수 있으며, 너도 아름다움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초월하라"
그녀 앞에 놓인 험난한 여정이 그녀를 쓰러뜨리려할 때 그녀가 그녀에게 당부하던 말이었다.
나아가는 여정은 절대 고독의 시간이었다. 사방이 눈으로 둘러싸인 텐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여우마저도 반가운 여정 속에서 그녀는 자신과 마주한다. 과거의 상처와도 날 것 그대로 만나 비탄과 통곡의 시간을 통해 화해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림으로써 그녀 스스로 사랑받아야 할 존재로서의 자신을 깨닫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깊어지는 길 위에서 그녀는 널브러져 있던 자신을 곧추세우고, 자신을 망가뜨렸던 과거의 아픔을 떠나보내는 애도와 치유 과정을 통해 자신을 인정하고, 나아가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길 위에는 새롭게 살아가야 할 그녀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겐 지켜야 할 약속과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이자, 그녀가 그녀에게 던지는 숙제이자, 목표가 되는 말이다. 결국 그녀는 지켜야 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고, 가야 할 길을 걸어 과거의 슬픔과 상처와 화해하고 떠나보냄으로써 새로운 자신과 조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자랑스러워 할 딸이 되기까지 4년 7개월 하고도 3일이 걸렸다. 슬픔의 황야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숲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냈다. 종착점에 닿기 전까진 어딘지도 모르고 걸었다. 신들의 다리. 수도 없이 감사하다고 되뇌었다. 길이 준 가르침과 나도 모를 미래에 대해..."
"이젠 공허한 손을 뻗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물속에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내 인생도 모두의 인생처럼 신비롭고 돌이킬 수 없고 고귀한 존재다. 진정으로 가깝고, 진정 현재에 머물며,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wild)인가..."
어쩌면 삶은 슬픔을 먹고 자라는 흙탕물 속의 연꽃인지도 모를 일이다. 고난과 슬픔을 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영화의 원작인 셰릴 스트레이드의 책, <Wild>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
맞는 말이다. 그런 이유로 길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는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그 길을 완주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길을 잃기도 하지만, 가고자만 한다면 길은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언제나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이란 가장 슬픈 날 가장 행복하게 웃는 용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걸어야 하는 이유다.
멀리 보이던 여섬이 어느새 눈앞이다.
<태안 솔향기길 1코스... 3편에서 계속>
꾸지나무골해수욕장 → 1.26km → 큰어리골 → 2.2km → 용난굴 → 1.41km → 여섬해변 → 0.93km → 가마봉전망대 → 1.64km → 당봉전망대 → 0.53km → 붉은앙뗑이 → 1.93km → 만대항 (전체 10km 남짓)
● 태안 솔향기길 1코스 가는 길
대중교통(원점 회귀시) – 하루 7차례 마을버스 운행. 버스 간격은 2시간~2시간30분 간격이므로 버스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함. (부도경로당 – 만대항)
▶ [라이프]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태안 솔향기길 1코스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