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박지원과 황대헌이 네덜란드 로테르담 아호이 아레나에서 열린 2024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1000m 결승에 나란히 진출했으나 둘 다 메달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이날 황대헌은 3바퀴를 남기고 선두를 치고 나갔고 뒤따르던 박지원이 3번째 곡선 주로에서 안쪽을 파고들어 추월했습니다. 이 순간 황대헌이 손을 이용해 박지원을 밀쳤고, 박지원은 중심을 잃고 넘어졌습니다.
박지원은 레이스를 완주하지 못했고, 황대헌은 4위로 골인했습니다. 비디오 판독 결과 황대헌이 이미 코스를 빠져나간 박지원을 건드렸다고 판단해 페널티를 받았고 실격 처리 됐습니다.
우승 후보인 두 사람이 무너지면서 윌리엄 단지누(캐나다)가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가져가게 됐습니다.
경기 후 박지원은 충돌 장면에 대해 "정신이 너무 없긴 한데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었고 몸을 주체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펜스에 부딪혔고 서서 넘어져서 몸에 충격이 컸던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변수가 없던 경기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는데 또 변수가 나왔다. 어쩌면 이게 또 쇼트트랙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생기게 열심히 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팀 동료와의 충돌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드릴 부분이 없을 것 같다"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황대헌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취재 구역을 빠져나갔습니다.
몸싸움이 치열한 쇼트트랙 경기의 특성상 접촉 사고로 넘어지는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선수 사이 충돌 사고가 연이어 벌어지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고의가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개인전이긴 하지만 한 나라의 선수 두 명이 결승에 올라갈 경우 시너지를 내며 동시에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두 번의 경기는 모두 '팀킬'에 가까운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황대헌이 박지원에게 반칙을 한 건 이번 시즌에만 벌써 세 번째입니다.
앞서 전날 열린 1500m 결승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박지원이 선두로 질주하고 있었는데, 결승선을 3바퀴 남기고 곡선 주로에서 황대헌이 안쪽을 파고들어 박지원을 몸으로 밀어냈고, 박지원은 이 충돌로 속도가 줄어 7명 중 가장 마지막에 골인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월드컵 1차 대회 10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서도 황대헌은 앞서 달리던 박지원을 뒤에서 위험한 반칙을 해 심판진으로부터 옐로카드를 받고 이날 대회에서 딴 모든 포인트가 몰수된 바 있습니다.
황대헌은 선두로 결승선을 통과했으나, 이후 반칙이 확인되면서 실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황대헌의 반칙으로 남자 대표팀은 선수의 실격 처리는 물론, 이번 대회에서 한 개의 금메달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박지원은 지난해 세계선수권 개인전 2관왕에 오른 한국의 에이스입니다. 올 시즌도 월드컵 종합랭킹 1위에 오르며 2년 연속 크리스털 글로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세계선수권 최상위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국가대표 자동 선발권을 놓쳤고, 다음 달 열리는 국내 선발전에 출전해 경쟁해야 합니다.
국제대회 이상으로 치열한 것으로 알려진 국내 선발전은 8위 이내에 들어야 태극마크를 달 수 있고, 상위 3위 안에는 들어야 개인전에 나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2024~25 시즌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않으면 2025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없습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대헌은 대표팀 1인자 자리를 지키다가 지난해 휴식을 취하고 싶다며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지 않았고, 올 시즌엔 부상으로 주춤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