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 국가에 쳐들어가 그 나라 대통령을 자국으로 끌고 가는 행위.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과 마두로 대통령 압송이 논란의 여지없는 '무법 행위'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을 뒤바꿀 어떤 시도도 불가능한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습니다. 마두로는 압송 과정에서 짐짓 여유를 보였지만 내일 시작되는 재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1990년대 파나마 대통령이 겪은 것과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면 수십 년의 수감 생활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제사회의 관심은 베네수엘라의 선택에 쏠려 있습니다. 미국에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일 것인가?
베네수엘라, 미국에 저항? 현실을 수용?
유고 상태인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직은 델리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로드리게스는 마두로가 끌려 간 직후 미국에 항전 의지를 보였습니다. 비상 내각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의 유일한 대통령은 마두로"라고 했고, 베네수엘라를 운영(이해를 돕기 위해 영어 표현을 일부 병기하겠습니다. run)할 것이라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베네수엘라는 그 어떤 나라의 식민지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로드리게스 부통령, 미국에 협력 요청...이틀 만에 태세 전환
그런 그녀가 오늘 미국에 협력을 요청하면서 자세를 확 바꾸었습니다. 로드리게스는 소셜미디어에 성명을 올려 공개적으로 미국에 협력(collaborate)을 요청했습니다. 글은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작성됐습니다.
"우리는 미국이 공동체의 지속적 공존을 강화하기 위한 국제법 틀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공동 발전을 지향하는 협력 의제를 중심으로 협력할 것을 요청한다. "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 인스타그램 성명 중)
불과 이틀 만에 '저항'에서 '협력'으로. AP통신은 '기조의 극적 전환(a dramatic shift in tone)'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로드리게스의 태세 전환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성 위협 직후 나온 데 주목했습니다. 트럼프는 미국 시사주간 애틀랜틱과 전화 인터뷰에서 로드리게스를 향해 "옳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매우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고, "아마도 마두로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미국에 협력하라고 압박했습니다.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베네수엘라가 제대로 처신하지 않을 경우 '2차 공격'에 나설 수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얼핏 트럼프의 압박에 로드리게스가 입장을 바꾼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옳은 일 하지 않으면 큰 대가 치르게 될 것" 압박
하지만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침공 즈음에 이미 로드리게스가 미국에 협력할 의사를 비공개로 밝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로드리게스가 사태 초기에 밝혔던 강경 입장을 "수사(修辭, rhetoric)"라고 평가했습니다. 초기의 혼란 상황에서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미국 측 주장대로라면 로드리게스는 일찌감치 미국에 협력하기로 한 상태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미국의 '여론 공작'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사태 발생 불과 이틀 만에, 마두로 정권의 핵심 인사였던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미국에 협력을 요청함으로써 국면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루비오,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에 이로운 변화 일어나는 것이 목표"
미국의 입장에서는 군대를 다시 투입하지 않고, 미국의 구도대로 움직여줄 정치 세력이 베네수엘라를 장악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어떻게 운영(run)한다는 것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국가가 아니라) 정책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답했고, 구체적인 정책 목표로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의 영향력 행사 차단, 미국으로 마약 밀매 중단, 석유 산업 재편 등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미국에 이로운 방향으로 베네수엘라의 정책이 재조정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는 것입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갔다가 결국 실패하고 빠져 나와야 했던 미국의 이전 개입 사례를 감안하면, 이번 침공의 목표는 '들어가지 않고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설정된 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네수엘라 내부에서 미국에 협력하는 세력이 득세하길 바랄 것입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은 군과 경찰 조직을 책임질 다른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군부와 경찰이 미국이 원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입니다.
로드리게스의 태세 전환...군부와 경찰 움직임이 관건
로드리게스의 오늘 발언이 앞으로 어떻게 실행으로 옮겨질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 언론 월스트리트저널은 '로드리게스는 정치적 술수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인물평을 전했습니다. 로드리게스의 부친은 좌익 게릴라 지도자였고 1976년 미국인 사업가 납치 사건으로 체포된 뒤 구금 상태에서 사망했습니다. 로드리게스는 이른바 '혁명가 집안' 출신인 셈인데, 마두로 정권에서 여러 장관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고 마두로 정권 반대 세력을 색출하기 위해 쿠바 정보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국회의장인 친오빠와 함께 마두로 정권을 유지한 핵심 실세였던 것입니다. 로드리게스가 돌연 미국과 협력 메시지를 보인 상황에서, 베네수엘라의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이 어떤 자세를 보일지, 이에 따라 군부와 경찰이 어떤 입장으로 정리될지가 베네수엘라 사태의 초기 국면을 좌우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베네수엘라 사태에 미사일 발사로 대응...김정은 발사 참관
이번 사태 직후 북한이 보인 반응에 다들 주목했습니다. 미국이 자국에 적대적인 국가 원수를 잡아가는 일종의 '참수 작전'을 벌여 성공했기 때문에, 리비아 카다피 정권 몰락 후 이런 상황을 늘 걱정했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어제 아침 7시 50분쯤 미사일 여러 발을 동해 쪽으로 시험 발사했습니다.
우리 군 당국이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11마'로 분석한 미사일이었습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이 알려진 게 그제 오후 3-4시쯤이었으니 어제 아침 시험발사가 그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고 하면 대단히 신속한 반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주목할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 시험 발사를 참관했고, 베네수엘라 사태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점입니다.
"전략적 공격 수단의 상시 동원성과 그 치명성을 적수들에게 부단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인식시키는 것 자체가 전쟁 억제력 행사에 중요하고 효과 있는 한 가지 방식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북한은 전략 미사일 같은 공격 무기를 언제라도 동원해 대응할 수 있고, 상대에 치명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위력을 갖췄음을 부각하기 위한 시험 발사였다는 메시지입니다. 김정은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숨길 것 없이 우리의 이 같은 활동은 명백히 핵전쟁 억제력을 점진적으로 고도화하자는 데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은 "지정학적 위기와 국제적 사변"..."핵 억제력 고도화"
그러면서 김정은은 "그것이 왜 필요한가는 최근의 지정학적 위기와 다단한 국제적 사변들이 설명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정학적 위기'와 '국제적 사변'은 미국 턱밑에 있는 베네수엘라가 겪은 이번 사태를 가리키는 말로 보입니다. 결국 앞선 메시지와 연결해 보자면, 자신들은 강력히 대응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갖추었고 그 점에서 베네수엘라와는 다르다, 다만 앞으로도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핵무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고도화하기 전인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을 언급했었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는 메시지이기도 해 보입니다.
(사진 자료 : 연합뉴스, 디자인 : 정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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