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전쟁 고아들을 '데려다 키우기'보단 '팔기'를 선택했습니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구호'였습니다. '전쟁 직후 황폐한 환경에서 길러지느니, 평화로운 해외에서 유복한 양부모를 만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가난한 국가의 불우한 아동을 돕는다'는 서양 국가의 인도주의적 발상도 때마침 맞아들었습니다. 해외 입양이 본격화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비행기에 실려 미국,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타국으로 보내졌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시대가 바뀌었지만, 해외 입양은 계속됐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등 4대 입양기관 주도로 오히려 더 늘었습니다. 1970년대, 4~5천 명 수준이던 해외 입양아 수는 1980년대 들어서는 7~8천 명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1985년 한 해 동안 해외로 보내진 아이는 무려 8천837명에 달합니다. 당시 아이 1명당 해외 입양비와 수수료를 합치면 대략 5천 달러 정도 됐습니다. 같은 시기, 대한민국의 1인당 GDP가 약 3천 달러였으니, 아이를 해외로 수출해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겁니다.
해외 입양 제도가 외화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동안, 수많은 아동 인권 침해가 자행됐습니다. 입양기관은 '미아'를 '고아'로 조작해 해외 입양을 보냈고, 부모가 입양에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임의로 아이를 해외로 보냈습니다. 생년월일 등 아동의 신원이 조작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과거 해외 입양 과정에서 국가 차원의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정부의 공식 사과와 후속 대책 마련을 권고했습니다.
정부 "2029년까지 '해외 입양'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7월, 공적 입양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민간 입양기관 주도로 이뤄졌던 입양 프로세스는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체계로 개편됐습니다. 입양 업무는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일원화되고, 국가는 입양 과정 전반을 관리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가 책임진다고 공언한 만큼, 입양이 성립한 후에도 복지부와 지자체는 아이와 입양 가정에 대해 모니터링을 실시합니다.
반복되는 정부의 해외 입양 중단 선언
지난 1970년, 정부는 돌연 해외 입양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북한이 남한의 해외 입양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자, 이를 의식해 해외 입양을 더 이상 안 하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대외적 이미지만을 고려해 추진된 해외 입양 중단 조치는 발표 1년 만에 해제됐습니다.
1982년, 정부는 또다시 해외 입양 전면 중단을 골자로 하는 '요보호아동에 대한 입양 및 가정위탁 5개년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 역시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 정부는 재차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고 1996년부터는 해외 입양을 중단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고아 수출국'이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자, 부랴부랴 정책을 내놓은 겁니다. 해외 비판 여론만 의식해 만들어진 정책이 성공할 리는 없었습니다. 이후 복지부는 1997년에도 "2015년까지 해외 입양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모든 정책은 실패했고, 해외 입양은 계속됐습니다.
정부 차원의 사과도 물론 있었습니다. 지난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 입양인 29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우리가 정말 잘못했다"며 공식 사과했습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저출산 때문에 고민하면서 해외로 아동을 수출하는 부끄러운 관행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밝히며 해외 입양의 단계적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2025년 한 해 동안 해외로 입양된 아동은 모두 24명입니다. 정부가 50년간 '이제는 한국에서 기를 수 있다'며 해외 입양 중단을 추진해왔지만, 바뀐 건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해외 입양 중단의 성공 조건
황준협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소속)
"입양이 필요한 아이들이 국내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핵심입니다. 공적 입양 체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전문 인력도 필요하고, 예산도 필요합니다. 또, 원가족 회복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가 미미한 수준인데, 이 역시 확대돼야 합니다."
제도적 개선과 함께 부모의 인식 전환도 필요합니다. 출산할 때 아이를 골라 낳을 수 없는 것처럼, 부모가 입양 아동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대전환이 동반돼야 한다는 겁니다.
노혜란 교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임신해서 아이를 낳을 때, 여자아이 남자아이 가리지 않잖아요. 입양도 가정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이거든요. 입양 부모에 대한 교육도 이뤄져야 합니다. 무조건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는 게 아니라, 부모들이 신중하게 결정해서 제대로 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입양 동기도 살피고, 여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미혼모가 입양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복지부는 2022년부터는 해외 입양 아동의 미혼모 비율을 공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혼모 자녀가 해외로 보내지기까지는 여러 요인이 작용합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홀로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 문제들, 정상 가정을 벗어났다는 사회적 낙인 등입니다. 미혼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많이 없어졌다곤 하지만, 당사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시선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런 환경 속, 미혼모들은 아이를 입양 보내는 환경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누군가는 미혼모의 자발적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엔 입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존재하는 겁니다.
김진석 교수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근본적으로는 아이를 입양 보내는 환경을 없애야 합니다. 생활고든, 부모 간의 갈등이든, 부모가 아이를 키울 준비가 안 돼 있든 간에, 결국 국가가 해야 되는 일은 그런 부모들이 아이 키우는 부담을 최소화시켜주는 겁니다. 실제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준비를 해 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겠죠."
해외 입양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선, 미혼모가 아이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게 우선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미혼모 혼자서도 별다른 편견,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는 걸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선행돼야 합니다. '정상 가정'을 넘어선 '새로운 유형의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가 동반될 때, 비로소 정부의 해외 입양 단계적 중단 방침이 선언에 그치지 않을 겁니다.
<자료 출처>
국가기록원
아동권리보장원 대한민국 아동권리역사관
김재윤(2009) <국외 입양아들의 특성과 변화>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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