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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장기기증, 숭고한 결정' 기사에 달린 댓글 3개

[취재파일] '장기기증, 숭고한 결정' 기사에 달린 댓글 3개
"저희 서윤이 예쁘게 나오게 부탁드립니다." 절반은 눈물이 섞인 인터뷰를 마치고, 방송에 띄울, 세상을 떠난 세 살 배기 딸아이 서윤 양의 사진을 보내 달라 어머니께 부탁드렸습니다. 엄마와 함께 즐겁게 공놀이를 하고 장난감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서윤이의 짧은 영상과 사진들을 보내오면서, 어머니는 그렇게 오히려 부탁을 했습니다. 서윤 양은 지난달 17일, 세상을 떠나며 심장과 신장 등을 기증해 네 아이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이런 인터뷰 힘드실 텐데 따뜻하게 질문해주셔서 좋았어요." 27살 건혜 씨의 어머니는 인터뷰 뒤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담담하게 딸을 떠나보낸 과정을 이야기한 어머니는 몇 번이나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건네받은 사진 속에 모두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남아 있는 건혜 씨는 지난해 9월 7일, 심장과 신장 등을 기증해 네 명의 삶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쉽지 않은 선택을 한 뇌사 장기기증자 서윤 양과 건혜 씨, 그리고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사망 확정을 부모가…'숭고한 결정' 주저하는 가족들> 기사에는 댓글이 3개 달렸습니다. 사람들은 장기기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댓글 3개가 그 생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gala****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그 어떤 고통도 비교할 수가 없음>

지난 5월 말,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 다음 날 응급실로 간 서윤 양에게는 경련도 이어졌습니다. 뇌척수염 진단을 받았고, 얼마 뒤엔 심정지에 다발성 장기부전 증상도 나타났습니다. 병원에 있었던 시간은 46일, 어머니는 먼저 장기기증을 의료진에게 얘기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정신이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이후에) 어차피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의료진이) 얘기를 하셨고, 그냥 힘들게만 있다가 가는 것보다는 친구들 구해주고 가는 게 조금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예쁜 모습일 때 보내주자 이런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어머니가 장기기증을 결심하고 뇌사판정위원회가 열렸고, 뇌사 판정을 받은 서윤 양은 세 친구들을 살렸습니다. "저희 아이 얘기를 하려면 말로는 부족하죠. 제 눈에는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 싶은데 딱 40개월, 정확하게 40개월 건강하게 살다가 이렇게 된 거거든요. 하늘이 원망스럽죠. 저희 아이가 개미, 나비, 새도 좋아하고 풀도 좋아하고, 그런 걸 쉽게 꺾지도 않은 아이였거든요. 근데 그런 아이가 다른 아이 4명을 살리고 간 거잖아요. 우리 아기는 정말 큰일 하고 간, 너무 멋진 아이죠."

스노클링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장기를 기증한 김건혜 씨

건혜 씨는 지난해 8월,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다 물살에 휩쓸렸습니다.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켜보던 가족들 사이에서 장기기증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수없이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기계에 의존했지만 숨 쉬고 있는 아이였으니까, 살아있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내 자식 몸에 칼을 대고. 다 없어지는 게 아니고 어딘가에서 살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걸어보자, 그래서 이제 장기기증 결정을 하게 된 거죠." 어머니는 처음 장기기증 관련 상담을 받다가는 최종 동의 직전에 한 차례 절차를 멈췄었다고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사인만 남았을 때 제가 '못하겠습니다'하고 거절을 한 번 했었죠. 우리 아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사인을 하고 상담을 하고 면담을 하는 게 아이한테 너무 미안하고. 그리고 이제 한 2~3일 있다가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mast**** <정말 멋지고 좋은 일 하시는 분들 위해 기증받는 분들은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네요>

멋지고 좋은 일. 슬픔과 미안함 같은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그런 길을 택한 뇌사 기증자와 가족들에게, 특별하고 대단한 선택을 했으니 훌륭하다고 박수를 보내는 것만으로 우리의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기실 이들의 숭고한 선택은 아직 '예외적인' 선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뇌사 기증자의 기증률을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장기기증 및 이식 등록기구(IRODaT)에 따르면 인구 1백만 명당 뇌사 기증자 숫자를 가리키는 뇌사 기증자 기증률은 2022년 기준 우리나라가 7.88명입니다. 스페인 46.03명, 미국 44.5명, 이탈리아 25.5명에 비하면 낮은 수준입니다(스페인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장기기증을 한다는 전제를 두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당국에 신고하는 절차를 거쳐 그 대상자에서 빠져나가는 '옵트 아웃'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2014년 뇌사 장기기증자는 446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483명이었습니다. 10년 전이나 최근이나 기증자 숫자는 4백 명 대 그대로인 셈입니다. 하지만 장기이식을 대기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2014년 24,607명에서 지난해 51,857명으로 2배 넘게 늘었습니다.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숨지는 사람이 한 해에 3천 명에 가깝다는 통계도 이미 나온 지 오래입니다(2022년 2,918명). '최소한의 보상'이 금전적인 대가와 같은 반대 급부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어야겠지만(현행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는 이를 장기 매매 행위로 보고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숭고한 선택에 합당한 예우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yim9**** <나는 시신기증 하려고 했으나 맘을 바꿔 화장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017년 뇌사 장기기증자의 시신을 유가족들이 수습하도록 하는 일이 발생하고 이 일이 보도된 뒤 장기 기증률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지난 2020년 최혜영 의원실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기기증을 희망했다 취소한 경우는 2019년 5,124건입니다. 2015년 1,181건이었다가 1,789건(2016년), 4,994건(2017년), 4,187건(2018년)을 거치며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기타'를 제외하고, 그 이유로는 '본인의 변심'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가족의 반대', '언론과 방송' 등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개인과 가족의 고민 외에 외부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부분인 셈입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하 기증원)에서는 '가족지원팀'을 만들어 장례절차를 안내하고 기증자를 이송하는 등의 예우와 유가족 마음의 치유를 돕는 상담 기관 연계 등 유가족 지원을 도맡아 담당해 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국립기증자추모공원을, 스페인에서는 지역별 추모공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한데, 예우를 갖추는 사회적 분위기를 좀 더 조성하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조직기증 희망등록 서약서, 인파

쉽지만은 않지만 의료진의 세심한 소통도 장기기증에 이르는 길까지는 필수적입니다. 강은정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 교수는 현재 장기기증의 '허들'에 대해 몇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강 교수는 "한 번의 면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환자가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보호자가 받아들이는 시간이 굉장히 길고, 그때 보호자에게 죽음과 장기이식을 동시에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한 번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보호자들의 마음을 다독이면서 그것들을 끌고 가는 게 신경외과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쉽지 않으실 것 같아, 그런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고려가 돼야 하지 않나 싶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건혜 씨 어머니도 한 차례 기증 절차를 중단하고, 마지막 순간에 며칠 더 고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동의로 딸의 사망을 사실상 확정하게 되는 뇌사 판정 절차 자체가 힘겨웠다고 했습니다. 현재는 의료진이 뇌사를 추정하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장기기증 의사를 묻고, 이에 가족들이 동의를 하면 1차 뇌사 조사, 2차 뇌사 조사, 뇌파 검사 등을 거쳐 뇌사판정위원회를 열어 뇌사 상태임을 최종 확정하는 순으로 절차가 진행됩니다. "내 아이의 마지막을 우리가 먼저 결정을 하는 거잖아요. 그 결정 자체를 우리 유가족이 먼저 해야 되는 게…." 이동근의 논문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의 비판적 고찰과 뇌사자의 존엄성을 위한 제언>에도 이런 측면이 언급됩니다. 이는 사망 시점을 언제로 볼 것인가에 대한 법적, 의학적 쟁점에서 기인하기도 하는데, 그는 현재 "뇌사자의 장기 기증을 승인하는 조건에서만 뇌사판정 절차가 진행되어 장기를 기증하고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면서 "장기기증은 뇌사 상태 환자와 그 가족의 권리로 해석되어야 하지만, 장기기증이 뇌사 상태 환자의 뇌사 판정 절차를 진행하기 위한 의무로 이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장기기증과 무관하게 뇌사 판정 절차가 진행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뇌사 판정의 의미를 장기 적출을 위한 목적으로 축소시키고 있다"는 다소의 비판도 덧붙였습니다.

서윤 양과 건혜 씨를, 그리고 어려운 결정을 한 그 가족의 뜻을 기억하고 한 번 더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영웅이라 칭송받지만 외롭지 않도록 말입니다. 위 언급한 논문에서도 이야기하듯, 현재 우리나라 뇌사 기증자들이 존재하는 건 뇌사자 보호자들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깊이 있고 진심 어린 소통을 통해 가족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장기기증의 숭고한 뜻을 기릴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예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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