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급발진' 여부 가릴 핵심 증거인데…'스키드마크' 오인하고 번복한 경찰

9명의 사망자를 비롯해 총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차량 역주행 사고를 두고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사고 차량의 운전자 차 모(68)씨는 '차량 급발진'을 사고 원인으로 주장하고 있어 이 부분이 경찰의 수사로 밝혀져야 할 핵심으로 꼽힙니다. 이 때문에 경찰도 사고 차량과 현장을 분석해 급발진 여부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난 1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어제(3일) 오후 2시,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언론 브리핑을 열고 수사 경과를 설명했습니다. 이 가운데 눈에 띈 것은 '스키드마크' 여부에 대한 경찰 측의 설명이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마지막 사고 지점과 정차 지점에서 스키드마크가 남은 것을 확인했다며, 구체적인 위치와 길이를 확인해 다시 공지해주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스키드마크가 생길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스키드마크는 기본적으로 제동장치가 작동했을 때 발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스키드마크는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바퀴가 굴러가지 못하고 미끄러지면서 도로 표면과의 마찰력으로 타이어가 녹으며 생기는 바퀴 자국을 말합니다. 이 타이어 흔적의 길이를 재면 사고 당시의 속력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브레이크가 작동했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소 의아스러운 발표였습니다. 저희 취재 결과 서울경찰청은 사고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를 분석한 결과 운전자 차 씨가 브레이크를 밟은 정황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사고기록장치는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5초 간의 차량 속도 등 주행 당시 작동 상황을 기록하는 장치인데, 브레이크의 작동 여부도 'ON', 'OFF'로 기록됩니다. 브레이크가 작동한 흔적이 없는데 스키드마크가 남았다는 것은 EDR 자체가 고장이 나 브레이크를 밟았더라도 기록이 안 됐거나 혹은 EDR 분석이 잘못 됐다는 의미인 만큼,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해당 내용을 더 확인하기 위해 취재를 진행하던 중, 경찰은 브리핑 현장에 남아있던 기자들에게 다시금 공지를 전해왔습니다. 확인 결과 사고 현장에 있던 것은 스키드마크가 아니라 당시 충격으로 부동액이나 엔진오일, 냉각수 등이 흐르면서 생긴 '유류물 흔적'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브리핑을 마친 지 약 1시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확인된 유류물 흔적은 BMW와 소나타 차량과 부딪친 사고 지점에서부터 정차 지점까지 약 35m 길이에서 발견됐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경찰이 공식 브리핑에서 언급한 사안을 정정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브리핑 과정에서 착오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며 사과했습니다. 서울경찰청에서도 이례적으로 교통 수사 담당 간부가 직접 출입 기자단을 찾아와 사과하고 해명했지만, 중대 사안을 가릴 핵심 증거에 대한 설명을 번복했다는 점에서 일부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경찰도 스키드마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만큼 사고 당시 현장을 구간별로 나눠 샅샅이 찾아보기도 했었다고 설명한 까닭입니다.


경찰도 사고 원인을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과 EDR 기록, 사고 현장 CCTV 6점 등의 분석을 의뢰해둔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중대 사고라는 점에서 주요 사안에 대한 설명에는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번 참사의 정확한 원인과 경위는 결국 수사를 통해 규명돼야 할 수밖에 없고, 이는 희생자들과 운전자 당사자 모두에게도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결과여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사 기관의 노력에 이런 신중함이 더해질 때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과 사건을 지켜본 시민들의 마음에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