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문명에 대한 역설적 애정, 우주적 스케일의 상상력 《삼체》 [북적북적]

문명에 대한 역설적 애정, 우주적 스케일의 상상력 《삼체》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417: 문명에 대한 역설적 애정, 우주적 스케일의 상상력 《삼체》
 
“이곳에 오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이 세계를 얻는 것을 돕겠습니다. 우리 문명은 이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능력을 잃었습니다. 당신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요즘 너무 ‘핫한’ 책을 들고 와 버렸나 싶기도 합니다. 바로 지금, 베스트셀러입니다. ‘웬만하면 베스트셀러는 읽지 않으려 한다’고, 모르고 지나쳐 간 좋은 책들을 발견하실 수 있게 먼저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늘 말씀드리면서도 그 말을 못 지킬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읽고 싶었습니다.
 
“명단 속 물리학자들은 최근 두 달 사이에 차례로 자살했습니다.”

[삼체]는 올봄에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최근에 뒤늦게 [삼체]를 보고, 원작이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3권짜리 완역 개정 양장본이 2020년 7월에 발간됐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가 인기를 끈 이후인 5월 현재 11쇄까지 나왔더라고요.) 

영상화된 원작을 둘 다 보고 나면 보통은 “원작을 제대로 못 담아냈네.” 하게 되거나 “각색이 엄청 잘 된 거였구만.” 같은 반응을 하기도 합니다. [삼체] 드라마와 원작은 동시에 만족스러웠습니다. 아니, ‘만족’했다기보다 ‘흥분 상태가 될 만큼 좋았다’고 말씀드리는 게 더 정직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지금 넷플릭스에 올라있는 [삼체] 시즌 1은 원작의 1권에서 좀 더 나아간 정도까지 각색돼 있습니다. 무대를 중국에서 영국으로 옮겼고, 등장인물들 설정도 제법 많이 바뀌었습니다. 보통 이렇게 각색이 크게 이뤄진 영상물은 원작 팬들로부터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경우엔 영상물을 먼저 봐서 그런지 ‘엑기스를 참 잘 옮겼다’는 느낌이 컸습니다. 이 책의 주제의식과 포인트를 깊이 이해했고, 원작자 류츠신 작가의 웅장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장이 그려낸 장면들을 기가 막히게 영상으로 구현했습니다. 다만, 단 하나 마음에 좀 들지 않았던 부분이 오늘의 ‘베스트셀러’ 낭독에 이르게 했습니다.
 
모두가 빨리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곧 대회장은 텅 비었고 단상 아래 단 한 사람만 남았다. 

예저타이의 딸 예원제였다.

[삼체]가 밀레니엄 이후 보기 드문 SF 걸작이라는 점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온 2008년부터 온 세상이 16년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모든 위대한 SF가 그렇듯이, 2024년 오늘 나온 책이 아닐까 싶도록 앞서가는 상상력이 담겨 있고, 아마 2044년에 읽어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제게는 이 작품이 뭔가 ‘심정적으로’ 좀더 마음에 달라붙어 떠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제가 먼저 접한 영상물에서 많이 축소되고 평면화된 1부의 진주인공 예원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원제가 누구인가. ‘[삼체], 재미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세 권 짜리는 엄두가 안 난다!’ 하시는 분은 -이 책을 집어들 결심에 좀더 다가서는 차원에서- 드라마 [삼체]의 첫 장면을 보시면 됩니다. 
 
그녀는 깃발을 흔들며 자신의 청춘을 불살랐다. 적들이 불꽃 속에서 잿더미가 되고 이상 세계의 내일이 자신의 피 끓는 열정 속에서 탄생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가 이런 선홍빛 몽상에 빠져 있을 때 소총의 총알이 그녀의 가슴을 관통했다. 어린 홍위병은 들고 있던 깃발과 함께 옥상에서 떨어졌다. 그 가벼운 몸은 마치 하늘에 미련이 남은 작은 새처럼 깃발보다 더 늦게 떨어졌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녀는 행운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이상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장렬한 열정 속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무수한 병행연산을 하는 CPU처럼, ‘문화대혁명’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광란은 형체 없는 홍수처럼 도시를 휩쓸어 미세한 틈과 부분까지 파고들었다.

6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에서는 공산주의의 기치 아래 -또는 당시 권력체계의 영속을 위한 전략 아래- 문명과 인간성을 일단 한 번 말살시켜 ‘새 판’을 짜고자 하는 움직임이 대대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지식인들이나 지주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학대, 고문하고 군중 앞에서 문자 그대로 때려 죽이는 상황들까지 발생했습니다. 원작에서는 1권의 4분의 1쯤 지나갔을 때 나오는 이 문화대혁명 당시의 장면으로 드라마가 시작합니다. 지식인 비판 대회의 무대 위에서 (문화대혁명이 저지른 가장 처참한 학살인 자라나는 아이들의 영혼 파괴를 통해 탄생한) 여중생 홍위병들에게 맞아죽는 물리학자 아버지를 무력하게 바라보는 딸. 바로 [삼체]의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 예원제입니다.
 
“예저타이, 당신은 각종 역학에 정통하다. 당신이 지금 저항하고 있는 이 위대한 힘이 얼마나 강한지 똑똑히 봐두어라. 계속 고집부리면 죽음뿐이다! 지난번 대회에 이어 계속하겠다. 쓸데없는 말은 안 하는 것이 좋다. 다음 물음에 사실대로 대답해라. 제62~65차 기초과목 내용에 당신이 독단적으로 상대성 이론을 추가했지?”

예저타이가 대답했다. 

“상대성 이론은 물리학의 고전 이론이다. 기초과목에서 어떻게 그것을 강의하지 않겠는가?”

옆에 있던 여자 홍위병 한 명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 아인슈타인은 반동 학계 권위자다. 그는 기회주의자야! 미국 제국주의에 빌붙어 원자폭탄을 만들었어! 혁명적인 과학을 이룩하려면 상대성 이론으로 대표되는 자산 계급 이론의 검은 깃발을 타도해야 한다!”

‘내 편이 옳다’가 강령이자 이데올로기이자 모럴이 되려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명사가 된 ‘홍위병’이 바로 문화대혁명에서 파생된 말이죠. 가장 무서운 세상은 바로 그런 세상인 것 같습니다. ‘나쁜 놈’들은 언제나 있습니다. 나쁜 놈들이 득세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상식이나 인간성조차 ‘내 편이 옳다’는 절대명제 앞에서 당연한 듯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야말로 영원히 온전히는 복구되지 않는 폐허를 남기는 게 아닌가 합니다.

첨단의 SF인 이 소설이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실감을 물씬 지니고 있는 것, 이 작품에서 굳이 따지자면 악역으로 분류될 수도 있는 예원제가 가장 가슴을 울리는 인물로 남는 것이 [삼체]의 매력입니다. 예원제는 영상물에서보다 책 속에서 훨씬 더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예원제는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고자 한 권력에 의해 너무 큰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 상처가 뿜어내는 무력감과 절망감 속에서 예원제는 인류와 문명에 아예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아버지를 죽인 권력과 어쩌면 뿌리가 같은 논리에서 나온 생각과 그에 따른 그녀의 어떤 결정으로 [삼체]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책 속 예원제는 그같은 결정을 내린 자신을 성찰하고 회의하며 그 결정의 결과를 받아들여갑니다.

 저는 먼저 본 영상물에서도 예원제를 제일 좋아했고, 젊은 예원제와 노년의 예원제를 맡은 배우들의 품위와 존재감에 그야말로 매료됐습니다. 책 속 예원제의 입체성이 그 배우들을 통해서 좀더 표현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젊은 예원제는 최선을 다해 각색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노년 예원제는 그야말로 해당 배우의 아우라와 대사 톤이 ‘멱살잡고 캐리’했다 싶을 정도로 단순화된 점이 있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멋진 배우들에게 예원제를 맡긴 것이 소설을 축약하면서 예원제 캐릭터를 좀 평면화시킨 제작진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내의 계속되는 연설에 예저타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린, 내가 당신을 기만했다고? 사실 당신은 줄곧 내 마음속의 미스터리였어. 한번은 내가 당신 아버지께 당신의 천부적 재능을 칭찬했지.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이 재난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야. 그때 아버님을 고개를 흔들며 내 딸은 학술계에서 공적을 세우기 어렵다고 하셨어. 그리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지. “린은 너무 똑똑해. 기초 이론을 하려면 미련해야 해.”

 이후 수많은 세월 동안 나는 이 말의 깊은 뜻을 끊임없이 깨달았어. 린, 당신은 정말 너무 똑똑해. 몇 년 전 당신은 일찌감치 지식계에 불어오는 정치적 변화를 간파하고 행동을 시작했지. 당신은 수업하면서 물리 법칙과 계수 이름 대부분을 바꿨어. 옴의 법칙은 전기 저항 법칙으로, 맥스웰 방정식은 전자 방정식, 플랑크 상수는 양자 상수라고 했지. 그리고 학생들에게 과학적 성과는 모두 대다수 노동자 인민의 지혜의 결정체이고 자산 계급의 학술 권위자는 그들의 지혜를 훔친 것이라고 말했어. 하지만 그렇게 했어도 당신은 혁명 주류에 끼지 못했어. 지금의 당신을 한번 봐. 당신의 소매에는 ‘혁명 교직원’이라는 붉은 완장이 없잖아. 당신은 마오 주석의 어록을 들 자격조차 안 되어 빈손으로 올라왔어. 누가 당신을 중국의 대단한 가정에서 태어나게 했으며 당신의 부모는 또 왜 그렇게 유명한 학자였는지. 

원작이 나온 지는 16년이 지났고, 넷플릭스 드라마도 이제 볼 사람은 거의 보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하지만 단 한 분이라도 [삼체]를 처음부터 깨끗한 도화지 상태로 시작하시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스포일’이 섞인 낭독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직 도입부만 말씀드리면, [삼체]는 세계(중국)의 과학자들이 잇따라 사망하거나 자살하는 상황 속에서 시작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인가. 문화대혁명 당시에 군중 앞에서 맞아 죽는 아버지의 최후를 지켜본 젊은이였던 예원제는 이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권당 450~700여 쪽의 3권짜리 소설을 집어 들기로 결심하기가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새 마지막 장이 아직 멀기를, 언제까지나 멀기를 바라면서 점점 줄어가는 남은 페이지를 초조하게 가늠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남자 홍위병 한 명이 화제를 바꿨다.

“빅뱅 이론을 가르친 적도 있지? 그건 모든 과학 이론 중에서도 가장 반동적인 것이야!”

“앞으로 그 이론이 전복될 수도 있지만 이번 세기 우주학의 2대 발견인 허블의 법칙과 3K 우주배경복사에 의거, 빅뱅 이론은 현재까지 가장 믿을 수 있는 우주 기원 이론이다.”

“헛소리!”

사오린이 소리쳤다. 그리고 빅뱅에 대해 길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물론 그 안에서 반동 본질을 끄집어내는 것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네 명의 소녀 중 가장 똑똑한 한 명이 이 이론에 빠져들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그러면 시간도 모두 특이점에서 시작됐다는 말인가? 그러면 특이점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지.”

예저타이가 말했다. 그는 마치 평범한 소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자상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중상을 입은 데다 철제 고깔모자를 쓴 그의 움직임은 매우 힘들어 보였다.

“뭐라고…… 아무것도 없다고? 반동! 반동분자!”
​​​​​​​
그 여자아이는 공포스러운 듯이 큰 소리를 지르며 사오린에게 도움을 청했다.

[삼체]에는 정말 보기 드문 스케일과 상상력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와 문명에 대한 가치관을 지닌 진짜 문학가, 인류의 지성사에 뼛속 깊이 매혹돼 파고들어본 적이 있는 과학 ‘덕후’가 밤하늘을 수놓은 성운처럼 찬란한 상상력으로 써 내려간 작품입니다. 이 책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삼체를 읽을 때만큼은 백악관에서의 일이 사소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해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죠. 네,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도 그렇게 생각될 법 합니다. 사소설이 장악한 소설 세상에서 진귀할 정도의 문학적 스케일이 있습니다.

번역본이긴 하지만, 원작 중국어 문장의 아름다움을 짐작하게도 합니다. 사실 중국어는 라틴어와 더불어서 그 언어의 압축적인 스타일 자체가 엄청난 문학적 잠재성을 갖고 있는 언어입니다. ‘문학은 중국을 빼고 논할 수 없다’는 건 분명히 과거에는 지당한 말이었습니다. 더 이상 중국 문학이 세계에서 그 정도의 위상을 지니지는 않는 것도 결국은 문화대혁명이 불러온 단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체]가 묘사하는 어떤 파괴들, 어떤 절망들의 스케일은 사실 ‘SF적 상상력’이라고만 하기엔 뭔가 어긋나는 점이 있습니다. 그 정도의 ‘문명 파괴’가 발생한 역사 속에서 탄생한 문학가에게는 이것이 ‘상상력’의 문제라기보다 -스스로 의식했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속한 사회에 깊은 흉터로 남은 그 집단적 경험을 정리하는 문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22년 11월 13일 오전, 당신의 아버지는 아인슈타인을 수행하고 난징로를 산책했어. 위유런 상하이대학교 총장과 차오구빙 대공보 경리 등이 함께했지. 길을 걷다가 아인슈타인이 돌 깨는 일을 하고 있던 소년을 발견하고 그 옆에 가서 추운 날씨에도 다 떨어진 옷에 손이 온통 검게 변한 아이를 묵묵히 쳐다보다가 당신 아버지에게 “저 아이는 하루에 얼마나 버느냐?”라고 물었지. 당신 아버지는 아이에게 물어본 다음 “5펀”이라고 대답했어. (화폐 단위. 1위안의 100분의 1. -옮긴이 주-) 이것이 바로 아버님과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자와의 유일한 교류였지. 물리학도 상대성 이론도 없고 그저 냉혹한 현실만 있었지. 당신 아버지는 아인슈타인에게 대답한 다음에도 말없이 그곳에 한참 서 있었다고 했어. 아이의 무감각한 노동을 보면서 들고 있던 담배가 다 타들어가도록 말이야. 그 일을 말하면서 당신 아버지는 “중국에서는 아무리 자유로운 사상이라도 결국에는 모두 탁, 하고 땅에 떨어져버리지. 현실의 인력이 너무 무거워”라고 탄식했어.

이번 [북적북적]에서는 이 책의 문화대혁명 당시 부분을 읽었습니다. (오늘 소갯글에 실은 [삼체]의 발췌 대목들은 첫 두 대목만 제외하고는 모두 낭독에 포함된 부분에서만 가져온 겁니다.) 

1960년대 ‘과거’ 이야기입니다. ‘고구마’ 대목이기도 합니다. 뭔가 ‘SF 티’가 좀 더 나는 구절들을 찾아 읽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도 해 봤습니다. 하지만 예원제의 출발점이란 토대 없이 이 찬란하도록 기발하고 장대한 이야기의 여기저기를 발췌해 오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발하고 장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인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문명에 대한 치밀한 고찰이란 토대 위에 탄탄히 ‘건축’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구마’를 꿀꺽 삼키고 나면 비로소, 반짝반짝 빛나는 과학적 상상력, 치밀한 공부와 탐구가 선행돼야 비로소 가능한 SF적 상상력의 세계로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여자아이 네 명이 아버지에게 폭력을 가해 그의 생명을 앗아갈 때 그녀는 단상으로 뛰어오르려 했다. 그러나 곁에 있던 학교 직원이 그녀의 팔을 꼭 붙들고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너도 죽고 싶으냐”고 말했다. 대회장은 광란과 흥분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나섰다면 더 많은 폭도가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녀는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대회장의 구호와 함성에 묻혀버렸다. 모든 것이 조용해졌을 때는 그녀에게서도 아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단상 위에 놓인, 이미 생명이 빠져나간 아버지의 몸을 응시할 뿐이었다. 울음으로도 외침으로도 나오지 않은 것들이 그녀의 핏속에 가득 퍼지고 용해되어 평생 동안 그녀와 함께 했다.

[북적북적]을 들으면서 [삼체]를 읽다가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어제도 오늘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어두움이 불현듯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몇십 광년을 달려서 여기 도착한 별빛들이 도시의 불빛에 가려 희미하게 나타났다 흩어져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 우주가 어느 날 문득 나를 위해 반짝이기로 결정했다면. 나에게 “너희는 벌레다!” 밤하늘 가득 메시지를 보내온다면.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고맙습니다.

*자음과 모음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 <골룸: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는 '팟빵', '네이버 오디오클립', '애플 팟캐스트'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접속하기
- '네이버 오디오클립' 접속하기
- '애플 팟캐스트'로 접속하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