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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모든 것을 건다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이나가키 에미코 [북적북적]

'지금 여기'에 모든 것을 건다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이나가키 에미코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84 : '지금 여기'에 모든 것을 건다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이나가키 에미코
처음에는 흔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퇴직한 뒤 시간이 생기면, 아직 건강할 때 그동안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일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 …(중략)…
내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었다.//

이나가키 에미코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中

시간이 생기면 도전하고 싶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일, 여러분께도 그런 일이 있을 겁니다. 굳이 퇴직까지 하지 않더라도요. <골라듣는 뉴스룸>의 일요일 책방 <북적북적>에서 오늘 소개하고 낭독하는 책은 이나가키 에미코의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박정임 옮김, RHK펴냄)》입니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1965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올해 59세입니다. 아사히 신문 기자로 일하다 지난 2016년 50세에 퇴사했지요. 당시 그가 쓴 《퇴사하겠습니다》를 북적북적에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냉장고도 도시가스도 쓰지 않는 미니멀리스트 생활을 담은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등을 비롯해 여러 책으로 한국 독자와 만나오고 있습니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과 동그랗고 보글보글한 퍼머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죠. 이번 책 표지에도 바로 그 보글보글한 퍼머 머리의 저자가 카페에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그림이 실려 있습니다.

저자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랬듯, 일본에서도 초등학교 때면 다들 피아노를 배우고 중학교쯤 되면 그만두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저자 역시 어릴 때 배우던 피아노를 중학교 입학과 함께 그만두며, 무서운 선생님과 지겨운 연습에서 벗어나 홀가분했다는군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난 거죠. 하지만 정신 없는 직장 생활에 밀려 다시 배울 기회를 찾지 못하다가 퇴직을 하면서 재도전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집에 피아노도 없습니다. 피아노가 있는 카페 주인에게 부탁해 가게 영업 시간을 피해 연습을 하는 '더부살이 피아노' 생활을 시작합니다.
어른의 피아노는 다르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경험해 보면 누구나 놀란다. 또 한 가지, 결승점이 없어서 좋다. 대놓고 말하기 좀 뭐하지만 다 큰 어른이 이제 와서 열심히 연습한다고 해 봐야 수준은 뻔하다.
그런데도 즐거울 수 있다니 정말로 신선한 세계가 아닌가.
…(중략)… 중요한 것은 한 발 내딛는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것.

이나가키 에미코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中

그렇게 다시 배우게 된 피아노의 첫 곡은,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끈질기게 연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제 세상을 좀 살아봤고 열심히 연습할 마음과 시간이 있으니 뭘 못하랴 하는 자신감으로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막상 다시 친 피아노는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악보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이 음이 뭐더라' 헤매야 했고 매일 여러 시간 지나치게 연습하다 손에 급성 통증이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음악의 아름다움과 악보에 담긴 작곡가의 마음에 감탄하고 무엇보다 완벽히 '몰입'합니다. 그 순간을 즐기는 것,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것이 바로 '어른의 피아노'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 책에서 밑줄 치고 느낌표까지 꽝꽝 찍어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저자가 '나 요즘 피아노 다시 쳐' 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도 하고 싶다', 혹은 부러워하는 반응인데, 한편으로는 '그런데 손가락은 움직일까?' '어렸을 때처럼 하농 같은 거 죽어라 연습하는 거 아니냐?' 라고 묻는다고 해요. 저자는 여기에 명확하게 답을 내려줍니다. "그런 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곧바로 좋아하는 곡, 연주하고 싶은 곡으로 전진하세요." 라고요. 그 이유는 이겁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무한대가 아니다. 인생 후반전에 들어서면 언제 콜드게임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한다."

이나가키 에미코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中

콜드게임. 과연 그렇습니다. 운명의 심판이 나타나서, '이제 끝. 너 인생 여기까지였어' 라고 해버리면, 우리가 별 수 있나요. 거기까지 살 수 밖에요. 그러니, 하농으로 손가락의 힘을 기르고 정확한 움직임을 만드는 것, 물론 하면 좋지만, 그것만 연습하다가 내가 진짜 쳐보고 싶던, 죽기 전에 내 손으로 쳐서 내 귀로 싶던 그 곡을 뒤로 미뤄둘 수는 없다는 거죠. 인생곡을 치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면, 연습도 되고 자신이 좋아하기도 하는 일석이조의 곡으로 해도 되니까 하농에 겁먹지 말자고 저자는 말합니다. 무엇보다, 어른은 어린이처럼 연습해도, 놀라울만큼 발전이 없으니 우리에게는 즐기는 게 중요하지 않겠냐고요.

이나가키 에미코에게는 피아노를 다시 배울 때 마음에 품고 있던 '인생곡'이 있었어요. 이 곡만큼은 죽기 전에 쳐보고 싶다 하는 곡이죠. 드뷔시의 '달빛'이었는데요, 저자는 이 인생곡을 생각보다 훨씬 일찍 치게 되는 기회를 맞습니다.
그것은 내가 알던 <달빛>이 아니었다. 아니, <달빛>은 맞는데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만 했던 그 신비한 음악이, 내 손으로 직접 한 음 한 음 확인하며 건반을 누르자 더없이 사실적인 감각으로 눈앞에 스르르 나타났다.
대체 뭘까 이 감각은…?
그렇구나. 곡을 연주한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듣는 것과 연주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연주는 더욱 깊게 듣는 행위다. 곡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 이나가키 에미코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中

이 책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는 저자가 3년 동안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앞으로의 인생도 계속 피아노와 함께 하기로 마음먹으며 '이 좋은 걸 나 혼자 할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어 원제는 '노후와 피아노'인데 우리 말 제목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가 더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되고 싶다'가 아니라 '될래'라는 말에서 막연한 바람이 아닌 실행의 힘이 담겨있달까요.

무엇보다 저자가 피아노를 치는 시간은 '집중'과 '몰입'의 시간이었습니다. 피아노가 아니라 그 무엇이든, 은퇴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에겐 이런 대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성취나 대가와 상관 없이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말이죠.
그런 무언가를 마음 속에서 꺼낼 의욕을 충전하고 싶으신 분, 그 무언가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자신의 애정을 쏟고 싶으신 분,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스스로의 도전을 응원하고 몰입하고 싶으신 분들께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를 추천합니다. '콜드 게임'으로 끝나기 전에 우리의 로망을 현실로 데려와야죠.
그렇다. 여섯 페이지의 악보를 전부 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한 페이지, 아니 반 페이지라도, 아니 네 소절도 좋다. 그 정도라면 내가 생각한 대로 즐겁게 칠 수 있다. 안 되면 되도록 연습하면 된다. ..(중략)..
설령 아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쳤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인생 후반전의 삶에는 '내일'이 없다. 그렇다면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미래가 아닌 지금 이 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나가키 에미코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中


*출판사 RHK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오디오 편집: 하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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