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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면 먹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을까…'연대의 밥상' [북적북적]

쫄면 먹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을까…'연대의 밥상' [북적북적]

[골룸 ] 북적북적 355: 쫄면 먹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을까… <연대의 밥상>
 
"나는 묻는다. 우리에게 쫄면을 먹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는지. 맥주와 노가리를 지키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는지. 3대 사장과 수다를 떨며 새벽을 보냈다. 너스레를 떤다. 요즘은 사람도 100년을 산다는데, 을지OB베어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꼭 인생 마지막 맥주를 마시겠노라고. 실없는 소리에 밤이 깊어간다. 술꾼들아, 단골 가게를 지키자."  

'단골'이라고 부를 만한 식당이나 술집, 카페 같은 곳, 한두 개쯤은 갖고 계신가요? 저는 자주 가던 곳들이 있긴 한데 여기를 '단골'이라고 할 수 있나 싶습니다. 으레 지정석처럼 앉는 자리가 있고 메뉴 볼 것도 없이 "늘 먹던 걸로 주세요" 하거나 "오늘 뭐가 좋나요? 그걸로 주세요" 하거나 사장이든 직원이든 친분을 쌓고 그래야 단골이겠다 싶습니다. 암튼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대개 균질한 음식 맛과 서비스와 직원이 버텨주는 단골집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조금 덜 개발되고 낙후됐던 지역이 활성화하면서 돈과 외부인이 들어오게 되고 그로 인해 임대료가 오르면서 원래 살거나 장사하던 이들이 밀려나는 현상이죠. 그 과정에 때때로 폭력이 동원되고 불법과 편법 행위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쫓겨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걸 업으로 삼는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서울 무악동의 옥바라지 골목 철거에 항의하다 아예 이름으로 삼은 옥바라지선교센터, 여기의 사무국장인 이종건 작가가 쓰고 곰리 작가가 그림을 더한 책 <연대의 밥상>, 이번 주 북적북적이 고른 책입니다. 
 
"한입 넣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바다 향.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넘기고 따르기에 바쁘다. 까는 사람은 접시에 놓느라 바쁜 것 같지만, 실은 제일 잘 쪄진 것 골라 그때그때 먹기에 바쁘다. 모두가 바쁘다. 술잔 돌아가는 소리, 연신 맛있다며 신이 나는 연대인들, 별것 아닌 것처럼 목장갑 끼고 턱턱 석화를 까는 사장님의 뿌듯한 표정,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설레는 석화 무더기." 
 
"이제는 그 석화를 떼 올 옛 시장도 없다. 석화를 팔던 이는 물대포와 소화기 분말을 맞으며 농성을 한다. 이제는 밤을 새워 철문 앞 CCTV를 쳐다볼 일도 없다. 궁중족발은 홍은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연대의 밥상을 그렇게 또 한 차례 지나 보낸다. 어떤 밥상은 일상을 되찾아 열심히 노동하는 이의 피와 살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밥상은 여전히 천막 아래 반찬 몇 개와 소주로 쓴 마음 달려며 먹먹한 밤을 보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월세를 몇 배나 올리는 건물주에 항의하거나 행정대집행을 한다는 철거용역에 맞서는 철거지역 농성장이 배경인데 주요 내용은 갈등의 디테일이라기보다는 그 언저리나 와중에 등장했던 음식들, 밥상입니다. 숱한 갈등과 투쟁을 거친 끝에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이 마련됐지만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이나 조명받지 못하고 지나가버린 상황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절로 묵직해지지만 석화든 잔치국수든 막회든 작가가 묘사하는 음식들은 어찌나 군침이 돌던지요.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이나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이나 다 엄중하고 처연하게 들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밥상에 오르는 것들은 개별적이지만 밥상이라는 건 보편적이죠. 단골과 이웃, 연대와 밥상의 의미와 가치가 도드라지는 이 책을 읽으니, 그래서 꼭 작가의 편, 쫓겨나는 이들의 자리에 같이 서진 않더라도 폭넓은 공감을 불러올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00년 가게가 될 수 있었던 숱한 가능성들은 소리도 한번 지르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렇게 골목이 사라지고 나면 못내 아쉬워 한숨만 쉬고, 기별도 없이 떠난 가게에 섭섭해했던 시간들이 있다. 서울은 그 한숨이 한데 모여 한이 된 곳이다. 밟고 있는 모든 땅, 쫓겨난 가게와 사람들, 그들을 사랑했던 손님과 이웃들의 한숨이 한 줌씩은 서려 있는 곳이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명백하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이 함께 살기 위해 선택한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 '밥상'이다. 우리는 밥상 앞에서 당신과 내가 고통과 기쁨, 배고픔을 느낄 줄 아는 보통의 몸뚱이임을 확인한다. 혼자서 차린 조용한 밥상도, 예기치 못한 때 누군가 차려준 고마운 밥상도,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풍성한 밥상도, 살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먹었던 절박한 밥상도 결국 모두 '연대의 밥상'이다." 
 
*출판사 롤러코스터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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