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R.I.P. 장 자크 상페 『상페의 어린 시절』[북적북적]

R.I.P. 장 자크 상페 『상페의 어린 시절』[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54 : R.I.P. 장 자크 상페 『상페의 어린 시절』 
 
R.I.P. 장 자크 상페 
『상페의 어린 시절』 
 
“난 행복한 아이들을 상상하기를 좋아하죠. 자기도 모르게 행복한 아이들 말입니다.”  
“아이들은 늘 행복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행복할 구실을 찾아내고야 말죠.” 
-『상페의 어린 시절』中 


‘꼬마 니꼴라’를 그려낸 일러스트레이터, ‘뉴요커’ 표지를 100번 넘게 그린 화가, 장 자크 상페. 그의 가느다란 펜끝에서 나온 즐거운 개구쟁이들과 어딘가 자유로운 어른들과, 익숙한 도시들은 종이 위의 평면이지만 4D 극장처럼 생생하다. 

장 자크 상페가 타계했다. 향년 89세. 1932년 8월 17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상페는, 90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지난 8월 11일 세상을 떴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상페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서 정겨운 그림을 계속 그릴 것만 같은 생각을 근거 없이 하고 있었다. 열 두 살에 처음 『꼬마 니꼴라』를 읽을 때부터 상페는 이미 할아버지 뻘이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새 책이 나오는 데다 (올해 초에도 『계속 버텨』라는 책이 번역돼 나왔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이 늘 생기 있고 활발해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워낙 유명하고, 게다가 그림 작가이기 때문에 ‘북적북적’에서 소개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작가이지만, 이제 세상에 없는 이 작가를, 오랜 애독자로서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는 법. 상페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 『마주 보기』,『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어설픈 경쟁』,『뉴욕 스케치』, 『아름다운 날들』 등 수많은 책이 한국어로 번역돼 있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처럼 다른 작가의 글에 상페의 그림이 더해진 작품도 여럿이다.  

이번 주 〈북적북적〉에서는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인터뷰집 『상페의 어린 시절 (양영란 옮김, 미메시스 펴냄)』을 소개하고 일부를 낭독한다. 이 책 역시 책의 70% 정도가 상페의 그림으로 이뤄져 있지만, 인터뷰인 만큼, 그림 없이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상페의 밝은 그림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힘든 어린 시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상페의 아버지는 툭하면 술에 취해 아내와 싸웠고, 어머니는 상페를 자주 때렸다. 상페는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를 듣고, 싸움을 말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교과서를 살 돈도 없어 학교에서 눈치를 봐야 했고, 자전거를 갖는 게 소원이었으며, 집세를 못 내 자주 이사를 다녔다. 친구도 없었다. 그림 교육도 따로 받은 적은 없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3살 무렵이라고 한다.  
 
“남의 흉내로 시작했어요. 난 보르도의 신식 중학교에 다니다가 퇴학당했죠. 그 때 그 학교에 클라리넷을 부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열아홉 살이었던 그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죠. 게다가 칠판에 미군 지프차도 곧잘 그렸어요. 당시엔 벌써 미군이 들어왔던 때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도 해봐야지’ 하면서 지프차를 그리기 시작했죠. 다른 것도 그렸죠. 레이 벤투라 악사들도 그렸고요. “ 
-『상페의 어린 시절』中 
 
상페가 처음 그림을 보여준 사람은 아버지였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그림을 보고는 ‘이거 괜챃구나’, ‘이 그림에는 움직임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고 상페는 회상했다. 상페의 그림에 대해 처음 조언을 준 사람은 청소년 선교회에서 만난 ‘칠 공장이 도색 전문 직공’. 그는 ‘좋아, 계속해봐’ 라고 상페를 격려했다.   

그러던 상페는 열 다섯 살에 처음 그림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광고회사에 그림을 갖고 갔더니 ‘당신은 만화를 그려야 할 사람’이라며 신문사 삽화가를 연결해줬고 신문에 그림 두 점이 실린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어린 상페가 그림만으로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될 만한 돈을 벌기란 쉽지 않았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던 상페는 열 일곱 살에 나이를 속이고 군에 입대까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가 발각돼 쫓겨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말 그대로 ‘운명처럼’, ‘니콜라’라는 캐릭터를 만나게 된다.  
 
“하루는 이 잡지(르 무스티크)의 편집장이 인물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마침 좌충우돌 사고를 치고 다니는 장난꾸러기 어린 남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익살스러운 그림들을 그려 가져다주던 참이었는데, 오던 길의 버스 안에서 니콜라 포도주 대리점의 광고를 봤던 터라 편집장에게 <그렇다면 이 아이를 니콜라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 그림들의 주인공은 니콜라입니다, 아니 꼬마 니콜라가 더 나으려나…, 암튼 잘 모르겠네요.> 시작은 그렇습니다.”  
-『상페의 어린 시절』中 


포도주 대리점의 이름을 딴 ‘니콜라’, 이 한 컷짜리 그림은, 이후 상페가 르네 고시니와 협업하면서 수십년동안 전세계 어린이가 읽고,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꼬마 니콜라’ 시리즈가 되었다.  

니콜라를 비롯해 상페의 그림 속 어린이들은 밝다. 항상 즐겁지는 못하더라도 슬픔에 짓눌려 있지 않고, 웃을 수 있는 힘이 있는 아이들이다. 상페를 인터뷰한 르카르팡티에(전 『텔레라마』 편집장 겸 대표)는 상페에게 묻는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건 말이죠, 당신의 어린 시절과 당신의 그림 속 어린 아이들 사이의 괴리죠. 당신이 그린 아이들은 항상 즐겁고 낙천적인 편인 것 같거든요. 

“그렇죠, 그런 말이죠…,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침묵) 저기 말입니다, 내가 워낙 설명에 서툴러서. 그건 일종의 치료라고 보시면 됩니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행복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행복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미친 짓이었죠. 하지만 그게 바로 내 성격입니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이후부터는 빨리 걷거나 뛰는 사람만 그린다니까요. “ 
-『상페의 어린 시절』中 

‘행복한 사람이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이 마음, ‘인간이 선하지 않더라도 선량함은 분명 존재하며, 그걸 제대로 붙잡는 인간들이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선함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감탄은 우리가 상페의 작품을 볼 때 느끼는 행복감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상페는 ‘당신은 아직 늙지 않는 모양이군요?’라는 질문에 “무슨 말씀을. 많이 늙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로 남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라고 답한다. 덧붙여 “나는 잠깐이라도 어린 아이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낍니다”라고.  
늘 ‘이제까지 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하며 그렸던,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갖고 있던 작가 장 자크 상페는 이제 우리 곁에 없다. 오랜 독자들은 그저 그가 남긴 작품을 보고 또 보면서,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추억과, 그 책과 함께 어른이 된 우리의 시간을 돌아볼 뿐이다.  

뉴욕 타임스는 상페의 타계 소식을 전하며, 그의 작품을 ‘그림으로 그린 하이쿠’라고 표현했다. 르몽드는 ‘상페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걸 보여주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보게 만든다, 웃음과 함께’ 라고 회고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 소개한 책 『상페의 어린 시절』은 상페의 다른 작품들을 먼저 읽고, 그런 뒤 상페가 더 궁금하다 할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9월엔 상페의 작품들 속에서 빨간 베레모를 쓴 개구쟁이를, 나이를 잊고 즐거워하는 어른을, 출근길 차 속에 갇힌 내 모습 같은 사람을 발견해 보시면 어떨까 싶다. 그러다 보면 매일 한 번은 웃을 수 있음을 보장드린다. ‘어떻게든 행복을 찾아내는’ 어린이의 마음도 우리 안에서 조금씩 꺼낼 수 있을지 모른다.  
 
 
*출판사 ‘미메시스’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 <골룸: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는 '팟빵', '네이버 오디오클립', '애플 팟캐스트'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접속하기
- '네이버 오디오클립' 접속하기
- '애플 팟캐스트'로 접속하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