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가족이 사는 지리산을 떠나 홀로 김천 수도산으로 올라간 반달가슴곰 KM53이 다시 지리산 숲에 방사됐다. 반달곰은 이미 두 차례 경남 함양과 거창을 거쳐 90km를 걸어 경북 김천 수도산으로 찾아갔다. 새로운 서식지를 개척한 것이다. 그런데 정착할 만하면 환경부가 포획 틀로 잡아들여 강제로 지리산으로 보냈다. 살 곳을 정하는 건 오롯이 반달곰의 자유인데 환경부는 반달곰의 진심을 알아보겠다며 또다시 시험을 하고 있다. 반달곰 KM53은 과연 90km를 걸어 다시 수도산으로 갈 것인가? 환경부에게 반달곰을 시험할 권리가 있는가?
반달곰을 지리산에 방사한 지 올해로 13년째다. 확인된 개체 수만 47마리다. 인간의 간섭이 없는 지리산 숲에서 짝짓기를 해 새끼를 낳고, 바위굴이나 속이 빈 고목 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며 살고 있다.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해발 1천m를 경계로 능선과 계곡을 누비고 있다. 지리산은 반달곰의 집이다. 반달곰이 안전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지자체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올무와 덫을 제거해 위험요인을 없애고 있다.
또 반달곰이 사는 곳이라는 안내문을 산 곳곳에 설치했다. 등산객들이 탐방로를 벗어나지 말라는 당부도 늘 잊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지리산에 가는 등산객들도 반달곰과 마주칠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갖고 조심을 한다는 게 환경부 생각이다. 반면 수도산의 경우 아직 준비가 안 돼 위험하다는 판단이다.
그만큼 사람과 맞닥뜨릴 확률은 낮다는 얘기다. 동물 본능 상 인기척을 느끼면 미리 피하는 건 기본 습성이다. 실제 곰과 마주쳤던 한 연구원은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자극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곰이 아무런 반응 없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반달곰은 맹수처럼 공격성이 높은 건 분명 아니다. KM53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14일 수도산에서 등산길 정비작업을 하던 근로자들에게 처음 발견됐을 때도 반달곰은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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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으로 강제 송환 뒤 7월 6일 야생으로 돌아가 다시 수도산으로 올라간 뒤 등산객 눈에 발견될 당시에도 이상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산속에는 반달곰 말고도 삵이나 담비 같은 육식형 사나운 동물들이 살고 있다. 이점 에서 반달곰의 해코지를 우려해 수도산에 터를 잡은 반달곰을 지리산에 살라고 하는 것은 논리가 약하다. 물론 곰의 안전을 위해 수도산 지역의 올무나 덫 같은 밀렵 도구의 확인과 제거는 반드시 필요하다.
동면장소까지 찾아 겨울을 보냈다면 이미 반달곰 KM53은 수도산을 보금자리로 삼아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팀은 반달곰이 이번에도 다시 지리산을 벗어나 수도산으로 갈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개체의 행동을 봐도 한번 찾아간 곳을 다시 가는 습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먹이도 풍부하고 다른 개체들과 경쟁을 피할 수 있어서 지리산을 벗어났다면 말이다.
반달곰이 연구팀의 예상과 달리 지리산에 살 수도 있다. 만일 수도산 새집으로 다시 찾아간다면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무사히 올라갔으면 좋겠다. 반달곰의 안녕을 빌면서 잘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보내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