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을 추적하는 안테나에 수신음이 울린 것은 지난 25일 낮 12시 20분쯤이다. 발신지는 경북 김천 수도산, 곰을 생포하기 위해 해발 1,000m 계곡에 설치한 트랩에서였다. 곰 포획 트랩을 설치한 지 꼭 하루만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직원들은 발신음 장소에서 1km가량 떨어진 수도암에 머물며 신호를 기다렸다. 수신음 소리에 화들짝 놀란 직원들은 급하게 생포트랩 쪽으로 달려갔다.
트랩은 드럼통 두 개를 이어 만들었다. 입구 쪽에 철문을 달아 트랩 속으로 곰이 들어오는 순간 닫히도록 해 산 채로 잡는 원리다. 종복원기술원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생포트랩을 이용해 지리산에 사는 곰들의 유전자를 확보하고, 발신장치를 달거나 교체하면서 위치 추적을 해왔다. 곰을 유인하는 미끼로는 달콤한 꿀과 비릿한 통조림 생선이 주로 이용된다.
예상대로 트랩철문이 내려져 있고, 랜턴을 이용해 드럼통 안을 들여다보니 곰 한 마리가 갇혀있었다. 일요일인 지난 23일 오후 수도산에 나타나 등산객에게 발견됐던 반달곰 KM-53이다. 지리산 야생곰인 KM-53이 트랩에 걸려 붙잡힌 것은 지난 6월 14일 이후 두 번째다. 한 달 전에는 민가 농장에서 탈출한 사육 곰인지 야생 곰인지 분별이 안 돼 포획됐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백두대간을 따라 수도산까지 올라간 반달곰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6일째 머물다가 생포트랩에 붙잡혔다. 숲이 울창한 수도산에는 반달곰이 좋아하는 산딸기, 다래, 층층나무열매가 풍부하다. 지리산 못지않게 서식환경이 잘 발달해 반달곰이 살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던 것 같다. 반달곰은 고향인 지리산을 떠나 수도산에서 제2의 삶을 꿈꿨는지 모른다.
생포트랩속에 갇힌 반달곰은 태어난 지 2년 6개월 된 수컷으로 몸무게가 80kg쯤 된다.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종복원기술원은 반달곰의 유전 특성이 파악됐고, 몸집도 그렇게 크지 않아 1차 포획 때 마취를 해 지리산으로 데려갔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마취 없이 트랩을 통째로 들고 산에서 내려왔다. 6명이 양쪽에서 들고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온 뒤 트럭에 싣고 곧장 지리산으로 달렸다.
연구팀은 만일 세 번째 방사해도 이 반달곰은 또다시 김천 수도산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지리산 천왕봉 근처에서 붙잡아 방사한 곰들도 다시 천왕봉으로 돌아간 경험에 근거해서다. 연구팀의 고민은 반달곰을 자연에 풀어주고 지리산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다시 붙잡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에 있다.
반달곰을 방사한 지난 6일 이후 연구팀은 24시간 발신음 수신 안테나를 들고 반달곰을 추적했다. 장애물이 없을 경우 3km까지 신호가 잡히기 때문에 주로 높은 산에 올라 곰의 위치를 확인했다. 차 안에서 노숙을 하고 컵라면으로 식사를 하면서도 반달곰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따라간 끝에 결국 지난 20일 수도산으로 이동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여름 온갖 고생 속에서도 연구팀이 백두대간을 따라 90km를 쫓아가면서 한 눈을 팔지 않은 것은 반달곰의 자연복귀 성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은 "반달곰을 지리산 울타리 안에 가두려는 시도를 중지하고 포획과 회수가 아니라 반달곰의 행동권 모니터링을 위한 인력과 예산을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색연합도 성명을 통해 "야생동물이 적합한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환경부는 지리산국립공원을 반달가슴곰 동물원으로 만들려는가?"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