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통계 사이트 ‘브룩스베이스볼’의 기준에 따라, 구종들을 ‘빠른 공 Hard'과 '느린공 Breaking 혹은 Offspeed’으로 나눠 보자.
빠른 공 : 포심-투심-싱커-커터
느린 공 : 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스플리터*-기타 변화구
올 시즌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전체 투구의 54.5%가 ‘빠른 공 계열’이다. 즉 45.5%가 느린 공이다. 이 조합은 해마다 거의 비슷하다. 메이저리그에는 우리보다 빠른 공이 조금 더 많다. 빠른 공과 느린 공의 분포가 정확히 6대 4다. 일본도 미국과 비슷하다. 빠른 공 59.7%, 느린공 40.3%다. 어쨌든 세 나라 모두 ‘빠른 공을 느린 공보다 많이 던진다’가 투구의 정석이다.
예전에는 류현진도 그랬다. 메이저리그 평균보다는 적었지만, 빠른 공을 느린 공보다 많이 던졌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정석과는 완전히 반대로 던지고 있다.
<류현진 연도별 구종>
빠른 공 계열 | 느린 공 계열 | |
2013년 | 53.8% | 46.2% |
2014년 | 53.0% | 47.0% |
2017년 | 38.9% | 61.2% |
올해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 등 느린 공의 비중은 61.2%. 즉 빠른 공은 38.9%에 불과하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류현진보다 느린 공을 많이 던지는 선발투수는? 너클볼 투수 R.A 디키 한 명 뿐이다. 즉 현재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의 ‘보통 투수들’ 중에 (‘너클커브 혁명’의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휴스턴의 랜스 맥클러스와 함께) 느린 공을 가장 자주 던지는 투수다.
<메이저리그의 '느린 공 투수들 - 40이닝 이상>
이름 | 느린 공 |
R.A 디키 | 85.2% |
류현진 | 61.2% |
랜스 맥클러스 | 61.2% |
브론슨 아로요 | 59.85 |
앤드루 트릭스 | 58.2% |
추정해볼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1. ‘느려진 빠른 공’을 자주 던지기 부담스러울 것이다.
현재 류현진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시속은 89.6마일. 수술 전보다 1마일 이상 느려졌다. 포심 패스트볼의 피안타율은 0.353, 장타율은 0.794에 이른다. 당연히 덜 던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2. 팀 동료들에게 배웠다.
LA 다저스 투수진은 뉴욕 양키스 다음으로 느린 공을 많이 던지고 있다. 올 시즌 다저스 투수들이 던진 공의 45.8%가 느린 공이다. 슬라이더만 65.4%를 던지는 세르히오 로모, 커브만 53.5%를 던지는 리치 힐, 그 힐보다 느린 공을 더 많이 던지는 마에다 켄타, 심지어 그 위력적인 포심 패스트볼을 47.9%밖에 안 던지는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까지. 정석에서 벗어난 ‘변화구 애호가’들이 즐비하다.
이들 모두는 원래 많이 던지던 느린 공을 올 시즌에 더 늘렸다. 변화구를 많이 던지는 게 좋다는 동료 투수들과 그 공을 받는 포수들의 생각은, 류현진에게 당연히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요즘 류현진은 느린 공을 점점 더 늘리고 있다. 최근 두 경기에서 빠른 공 비율이 20%대에 그쳤다. 즉 70% 이상을 느린 공으로 던졌다. 그리고 10이닝 동안 한 점만 내주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정석에서 벗어난 극단적인 ‘느린 공 승부’는 부활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스플리터는 ‘스플릿핑거 패스트볼’의 별칭이다. 즉 이름만 보면 ‘빠른 공 계열’이다. 하지만 공의 속도와 쓰임새는 ‘느린 공’에 훨씬 가깝다. 패스트볼보다는 체인지업과 속도가 비슷하다. 그리고 주로 스트라이크존 아래로 떨어뜨려 헛스윙을 유도하는 데 쓴다. 그래서 ‘브룩스베이스볼’에서도 스플리터는 ‘Offspeed' 계열로 분류하고 있다.
(자료출처 : fangraphs.com, brooksbaseball.net, 일본 Essence of Baseball, statiz.com)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