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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에게 던져진 질문, 돌아오지 않은 답

[취재파일] 대통령에게 던져진 질문, 돌아오지 않은 답
"국민들께 어떤 점이 송구하십니까?"
"뇌물 혐의 인정하십니까?"
"세월호 인양 보면서 무슨 생각하셨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 법원 도착
질문을 던지고, 답이 돌아오지 않는 걸 확인하는 데에는 8초가 걸렸다.

기자들은 포토라인에 설 누군가에게 던질 질문을 항상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물론 그 누군가에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묻고 싶은, 그러니까 핵심이 될 내용을 고른다. 그러다 보면 질문을 받을 사람이 가장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 뽑히기 마련이다. 그날도 포토라인 앞에 선 기자들은 어떤 것을 물을지 고민했다. 무엇보다도,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결정된 질문은 세 가지였다. 물론 ‘영장심사를 앞두고 당연히 답을 하지 않겠지’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래도 마음 한 편에는 ‘이제 이 질문들 만에라도 답을 해줬으면 좋겠다. 뭐라도 얘기하지 않을까’하는 안타까움이자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법원으로 들어오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준비한 질문을 던지며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는 단 8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검찰 조사를 앞두고 검찰청사 앞에서 했던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의 뜻이 뭔지, 특검이 적용한 뇌물 혐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전히 ‘세월호 7시간’이 논란 속에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파면 13일 뒤 바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보고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말 그대로 가장 ‘궁금해서’ 던진 질문들이었다.

● 유달리 길었던 영장 심사 준비, 그리고 '심기 경호?'

전례 없는 전직 대통령의 영장 심사에 법원은 그 전날부터 분주했다. 파면은 되었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 경호는 받고 있어 문제가 복잡했다. 법원 청사를 얼마나 통제할 건지, 또 박 전 대통령의 동선은 어떻게 할 건지 등이 출석 전날 저녁쯤에야 결정됐다. 청와대 경호실에서는 당초 박 전 대통령이 지하 통로를 통해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법정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헤 전 대통령령 전직 대통령급 경호
결과적으로 이는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반 피의자들이 드나드는 통로와 같은 통로로 출석하는 것이 확정된 뒤 경호실은 박 전 대통령의 동선 안에 있는 취재진의 숫자를 줄여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가장 가까이서 박 전 대통령의 표정을 지켜볼 수 있는, 즉 박 전 대통령이 대면해야 하는 근접 취재 구역 기자들을 제한해 달라고 한 거다.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취재 기자와 영상 기자 숫자는 애초부터 기자단 내부에서도 자체적으로 각 언론사별 1명으로 제한한 상태였다. 근접 취재라고 해도, 박 전 대통령 옆에 마이크를 들고 가까이 서지도 못했다. 멀찌감치 경호원들 뒤에 서서 질문을 던지는 것 뿐이었다.

요청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였을까. 영장심사 출석 당일 경호실 직원들은 박 전 대통령을 앞, 옆, 뒤 모두에서 가로막았다. 박 전 대통령이 걸어 들어오는 바로 맞은편에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자리 잡았던 영상취재, 사진 기자들의 카메라에는 박 전 대통령 대신 경호실 직원들이 더 많이 잡혔다. 걸어 들어오는 박 전 대통령 바로 앞으로 경호실 직원이 걸어 들어오면서 박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가렸기 때문이다.

한 경호실 직원은 박 전 대통령이 법원에 도착하기 직전, 법원이 이미 설치해 놓은 라인을 갑자기 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법정으로 향하기 전 ‘4번 출입구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는데, 이 검색대를 통하지 않고 법정으로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쳐 놓은 라인이었다. 갑작스런 행동을 법원 직원들이 급히 제지했다. 라인 근처에 계속 서 있던 이 직원은 박 전 대통령이 도착하고 계단을 통해 법정으로 걸어 올라가자 갑자기 카메라와 박 전 대통령 사이에 버티고 섰다. 그리고 당황한 기자들의 항의에도 비켜서지 않은 채 꿋꿋이 카메라를 가렸다. 경호라는 걸 완벽하게 해내려면 어떤 원칙들을 지켜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소위 ‘심기 경호’도 그 안에 포함되는 것이었나 보다는 얘기가 알음알음 터져 나왔다.

● 답을 듣고 싶었던 순간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 박 전 대통령에게는 나름의 답을 내놓을 기회가 많았다. 국민들이 듣고 싶은 말도 많았다. 그때마다 박 전 대통령은 나름의 수습책을 내놓았다. 답은 나왔고 해결책도 제시됐지만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최순실 씨 소유라는 태블릿 PC에서 국정 문건이 발견됐다는 보도 바로 다음 날 박 전 대통령은 최 씨의 국정 개입 일부를 시인했다. 연설문이나 홍보물의 표현에 있어서 일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발견된 문건만 해도 그런 분야에 국한돼 있지 않았다. 최 씨가 국정 여기저기에 개입한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났고 사람들은 올바른 해명을 요구했다. 최 씨가 구속되고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이 체포됐다. 박 전 대통령은 ‘잘못을 했다’고 인정했지만 문제의 근원은 다른 곳에서 찾았다. 국가 경제와 국민 삶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한 것 뿐이고,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니 본인도 안타깝고 참담하다는 메시지가 두 번째 담화에 담겼다.

두 번째 담화에 담겼던, 검찰과 특검 조사를 받겠다던 약속마저도 그들이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켜지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 목소리가 높아지자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긴다고 했지만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인터넷 매체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궁금한 부분은 비껴간 일방적인 메시지였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이 진행되면서도 박 전 대통령의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건 유출이 지속적으로 이뤄져도 민정수석실에서는 체크가 안 되는 건지, 최순실 씨가 만든 재단 관련 자료를 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받게 됐는지, 왜 좋은 취지의 재단이라면서 안종범 전 수석은 증거를 인멸하려고 한 건지 등 재판관들이 구체적인 설명을 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한 것에도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이 내려졌다.

파면 결정 이후에도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알 길이 없었다. 승복한다는 건지, 혹은 인정할 수 없을 만큼 억울한 부분이 있다는 건지, 있다면 어떤 부분이 그런 건지 질문을 하고 답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이틀 뒤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보인 박 전 대통령의 미소로 사람들은 어렴풋이 그 속내를 유추할 뿐이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은 '국정농단 3인방'
정호성 최순실 안종범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서 열린 어제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수석의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 25번째 재판에는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증인으로 섰다. 한동안 정 전 비서관의 재판이 진행되지 않아 (정 전 비서관의 혐의는 나머지 두 사람의 혐의와 달라 별도로 사건을 분리해 진행하고 있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오랜만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 눈도 한번 마주치지 않고 큰 동요 없이 재판에 임했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과 최 씨, 안 전 수석 변호인의 질문에 이전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답변을 내놨다.

박 전 대통령의 포괄적인 지시를 받아 청와대 문건을 이메일이나 이영선 행정관을 통해 최 씨에게 전달했고, 최 씨가 간혹 이러이러한 자료를 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고, 그에 대해 국가기밀 사항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따라서 최 씨의 요구를 거절한 적도 없다는 답변이었다. 정 전 비서관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을 때 최 씨는 간간히 자신의 옆에 앉은 변호인과 무언가를 상의했다.

자신이 다른 구치소로 이감되는 건지도 물었다고 한다. 재판장은 증인신문을 마친 뒤 최 씨와 안 전 수석에게 직접 정 전 비서관에게 질문할 기회를 줬지만, 두 사람은 할 말이 없다며 입을 열지 않았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답변을 한 뒤 법정을 빠져나가는 정 전 비서관의 뒷모습, 그리고 건너건너 옆자리에 앉은 안종범 전 수석의 옆모습을, 최순실 씨는 흘끗 한 번씩 쳐다봤다.

이들의 재판이 이렇게 25번 진행되는 사이, 박 전 대통령의 신분은 대통령에서 직무 정지된 대통령, 또 자연인인 전직 대통령에서 구속된 피의자로 거듭 바뀌었다. 이제 연이을 검찰 조사에서 또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들이 이제껏 먼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당연하게도, 질문은 국민들에게 무엇이 송구한지, 뇌물 혐의를 인정하는지, 세월호 인양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 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스스로는 ‘이미 다 이야기했는데 무엇을 더 말하라는 것이냐’며 억울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더더욱 질문을 회피하고 권위의 뒤에 숨어서는 안 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에서 최승호 PD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대해 질문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만큼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기 때문에 이런 질문도 받으시는 겁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실 의무도 있는 거고요.” 사람들은 여전히 궁금하다. 이제 박 전 대통령이 다시 질문에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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