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조사 결과의 핵심은, 폭발한 목함 지뢰는 자연 유실된 게 아니다, 지뢰를 의도적으로 매설한 흔적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실제, 현장 지형을 보니 북쪽보다 남쪽 지대가 높아 폭우 등으로 북한의 목함지뢰가 우리쪽으로 쓸려내려왔을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지뢰는 우리 수색 대원이 자주 드나드는 철책 통문 양쪽에 묻혀 있있는데, 그 위치가 질서정연해 인위적 매설 과정이 있다는 게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조사 발표가 앞뒤가 안 맞거나, 과장 됐다거나, 이런 부분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곳이니 사람이 했다면 북한군 아니면 우리 군, 둘 중 하나일 테고, 우리 군이 여기에 지뢰를 매설하지 않았으니 북한군이라는 결론인 겁니다. 논리상 하자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 군도 북한군이 우리 측 추진 철책에 왔다 간 증거를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실제, 사고 현장 5m 근방에서 풀이 누워있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은폐엄폐를 했다는 가정입니다. 북한군이 왔다면, 우리 측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숙이며 엎드린 채 왔을 것이고, 지뢰를 매설하기 전 장비를 갖추기 위해 그 앞에서 잠시 머물렀을 것이며, 또 엎드려 머물러 있었다면 그 흔적으로 풀이 누워져 있을 거란 가정입니다.
특히 이 장소는 나무 밑이라 멀리서 보면 잎으로 가려져 은폐가 용이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건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습니다. 풀이 누운 흔적이 사람이 아니라 동물 때문일 가능성을 배제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무장 지대에는 산짐승이 많으니까요. 결국, 이 증거는 조사 결과 발표 때 제외됐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온 증거만으로 따져볼 때 법리적으로는 어떨까요. 제 기자 경력의 대부분은 사건기자였습니다. 일이 터지면 사건기자가 가장 먼저 챙겨보는 게 증거입니다. 정황 증거가 아무리 확실해도 물증이 없으면 수사가 쉽지 않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죠. 삼식이가 집에서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이 마을에는 삼식이와 철수만 삽니다. 외부인이 들어온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당연히 철수가 용의자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철수의 칼까지 발견됩니다. 삼식이는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삼식이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습니다. 심증은 굳혀갑니다.
그런데, 사건 당일 철수가 삼식이 집에 찾아간 증거가 없습니다. 현관 CCTV에도 이게 찍히지 않았습니다. 창문을 통해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지만, 창문엔 철수가 지나간 흔적이 없습니다. 철수는 기소는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법적 공방을 벌이다보면 무죄가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직접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18년 동안 미제로 남아있는 이태원 살인사건이 이런 경우입니다. 분명 둘 중 하나가 살인을 했는데, 하나하나 따져보면 누가 살인을 했는지 물증이 없습니다. 결국, 둘 다 무죄가 나왔습니다.
북한이 도발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이걸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사실, 기자 역시 정황 증거로 볼 때, 이번 사건이 북한군의 도발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사건의 증거 능력, 그리고 이에 대한 법리적 판단에 대한 논의가 이번 사태에서 제외된 것은 기자 입장에서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갖게 했습니다.
국방부의 조사결과 발표, 그리고 이내 이어진 대중의 치열한 반응과 분노, 이 연결고리에 당연히 있어야 할 물증에 대한 담론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즉, 북한의 소행이란 국방부의 ‘확신’은 일반 국민들에게 엄청난 파급력을 낳았고, 이 파급력은 이내 남북의 군사적 긴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쟁 불사론까지 나왔습니다.
특정 행위에 대한 법리적이고 이성적 판단보다 서로를 향한 적대적 인식이 먼저 작용될 수밖에 없는, 전시 국가의 안타까운 현실이었을 겁니다. 아군과 적군이 명확한 상황 속 중간지대를 용납할 수 없는 안보 지형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우리 사회에는 북한에는 없는 최소한의 ‘절차 정의’란 게 있으니까요. 실제,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이 계속 발을 빼고, 협상이 타결된 이후에도 목함 지뢰 도발이 남측의 조작극이라며 대내 홍보에 나선 건 이런 상황 때문 아니었을까요.
물론, 북한이 협조하지 않는 이상 그 증거를 밝혀내는 건 어려울 겁니다. 우리가 북한의 GP 초소에 가서 수사를 할 수는 없는 만큼, 수사 범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범죄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맞지 않다는 반박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 공동조사를 한다는 합의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출입 한 달 남짓한 국방부 초보 기자의, 세상 물정 모르는 기대였을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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