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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본분 다한 당신, 가치가 +100 상승하셨습니다!

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이번 달 우리 지사 경영실적이 나왔다. 상황이 좋지 않아서 실적 악화가 예상은 되었지만 생각보다 더 안 좋다. 원인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어디 회사에 통하겠는가. 잠시 이해하는 척할 뿐, 지속되면 책임은 고스란히 내가 져야 한다.

"휴…"하고 한숨 쉬는데 판매팀장이 들어왔다. 한 단체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데 우리의 참여를 요청한다는 공문을 들고 말이다. 나는 물었다. "얼마짜리 계약인가요?" 판매원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하기를 무상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비용만 받는 내용이라는 것. 의아한 마음으로 프로젝트가 뭔가를 검토했다. 좋은 일이다. 고민이다. '착한 일이긴 한데 우리 실적이 적자인 상태에서 최저 금액으로 계약? 본사에는 뭐라고 얘기하지. 욕만 바가지로 먹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일단 결정을 미루고 직원을 내보냈다. 혼자 고심하고 있던 순간 단체 방의 메신저가 깜박 깜박거린다.


친구 1 : 주말에 갈 거야?
친구 2 : 이 시국에 어딜 가냐. 취소하자.
친구 1 : 그래. 그 말을 기다렸다. 우리 회사 주말에도 일해야 할 것 같아.
나 : 아, 그러겠네. 이 와중에 가장 바쁜 회사 중에 하나이군. 난 폭망ㅠㅠ
친구 1 : ㅎㅎ. 그렇지 뭐. 배송할 물량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걱정. 이제 좀 빠지려나.
친구 3 : 아, 물류센터 감염 때문에 그렇지?
친구 1 : 응. 온라인 물량이 줄면 전체 물량이 빠지거든.
친구 2 : 그런데 택배기사들도 배송하다가 코로나 걸릴 가능성 있는 거 아냐?
친구 1 : 그렇지. 그래서 이번 상황에선 고객들처럼 기사분들도 꺼림칙해 하는 분들 많아. 하지만 그럼에도 자기들한테 온 배송 건을 어떻게든 다 하려는 것을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아.



이번에 약사인 친구가 들어왔다.

친구 4 : 나는 이제 한시름 덜었지. ㅋ 한두 달 전 마스크 파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어.
친구 2 : 그렇겠네. 수고했다.
친구 4 : 감사. 어쨌든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마스크 팔았다. ㅋ
나 : 그거 안 할 수도 있니?
친구 4 :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안 하기가 좀 그렇지. 60대 의사도 대구 갔었잖아.


이렇게 메신저로 잡담을 하다가 이번 주말 약속은 취소임을 서로 확인하고 나는 다시 업무로 돌아왔다. '돈이 안되는데 이 이벤트에 참가해야 하나?' 또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택배기사들의 노고가 떠올랐다. 물론 해당 회사에 다니는 친구 말에 의하면 그들은 배송을 많이 하면 할수록 돈은 많이 버는 구조란다. 그러니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번다고 자신의 건강을 포기하려 할까? 전염병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돈만 생각하고 그 일을 할까? 아닐 것 같았다. 약사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는 굳이 생고생하면서 마스크를 팔 필요가 없는 녀석이다. 그런데 했다. 그런데 나는 뭔가? 좋은 일을 하자는데 그것도 무상도 아니고 최소한의 비용은 주겠다는데 왜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거지?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내 결정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자원과 노력이 들어가야 하니 본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벤트의 취지와 내용을 정리해서 결재를 올린 뒤 관련 팀장에게 경영층에 잘 말해달라고 별도로 부탁까지 넣었다. 그 사이 밀린 업무를 처리한 뒤 점심을 먹고 돌아와 결재함을 확인해보니 이런, 최종 결재권자가 이 문서에 '설명 요망'을 달았다. 순간 걱정스러운 마음이 솟구쳤다. '해당 팀장이 설명을 잘 못했나? 분명 이익이 나지 않아서 그럴 거야…그래도 너무하네.' 마음속 우려를 머금고 최종 결재권자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인가?"
"(해당 이벤트에 대해 자세히 얘기한 뒤) 실행했으면 합니다."
"내가 안 해주겠다는 게 아니야. 좀 기다려."


목소리는 까칠했지만 그래도 긍정적 반응이다.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다행이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해보니 그 문서는 승인돼 있었다(그런데 왜 기다리라고 했을까?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상사도 나처럼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OK). 그러자 판매팀장 신이 났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며 뭔가 더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확인한다.

직장생활 하면서 어깨가 으쓱해지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대표적으로 누군가를 도우는 일(혹은 사회 기여)에 내가 한몫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그런 순간이다. 그래서 배송기사도, 약사도,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도 비록 본연의 자기 일임에도 자신이 더 필요해지는 상황에서 더 열심히, 더 책임감 있게, 더 희생적으로 일을 하는 것 같다.

본분 다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보냅니다, 엄지 척!

<레이첼의 커피>라는 책이 있다. 나누고 베풀면서 마음의 샘이 채워지고 큰 부자도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 지금 같은 순간에 동감하게 되는 내용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법칙을 소개해 주고 있다. (5가지 중에 3가지만 기재)

# 첫 번째, 가치의 법칙
당신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이 받는 대가보다 얼마나 많은 가치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 두 번째, 보상의 법칙  
당신의 수입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그 도움이 그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 세 번째, 영향력의 법칙
당신의 영향력은 타인의 이익을 얼마나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별거 아니지만 이 일로 내 가치가, 내 월급이, 내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 같다. 기분 좋~다.

인잇 필진 네임카드

#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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