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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향년 88세로 서거 - ①

<앵커>

32년동안의 군정을 끝내고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던 한국 정치의 거목,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오늘(22일) 새벽 향년 88세로 서거했습니다. 정치부 주영진 기자, 김수형 기자와 함께 관련 소식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김수형 기자, 오늘 새벽 갑작스럽게 서거 소식이 전해졌는데, 사실 그동안 배드민턴이나 조깅처럼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왔던 걸로 알려졌었는데 좀 갑작스럽게 전해졌어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었다는 소식은 알려졌었는데요, 오늘 새벽 갑작스럽게 서거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정확한 시각은 새벽 0시 22분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서거했고요, 향년 88세로 직접적인 사인은 패혈증과 급성 심부전증으로 서울대병원측이 발표를 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에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는데, 상태가 나빠지면서 어제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부터 반복적인 뇌졸중과 협심증, 폐렴으로 여러 차례 입원 치료를 받은 바 있습니다.

<앵커>

그러면 이번에도 언제 병원에 먼저 입원을 했다가 치료를 받아온건가요?

<기자>

네, 지난 19일에 일단 먼저 입원을 했는데 증세가 나빠지면서 중환자실로 이동을 했고 그 상태에서 결국 서거를 하고 만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그리고 이제 장례식장에 빈소가 3층 1호실에 준비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9시부터 본격적인 조문이 시작될 것으로 보였는데, 이른 시간부터 많은 조문객들이 찾고 있는 걸로 보이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벌써 정치권의 거목들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라이벌이자 동반자였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벌써 빈소를 찾아서 애도의 성명을 발표를 했고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벌써 빈소를 찾아서 조문을 했습니다.

<앵커>

일단은 지금 장례식장이 마련되고 있고, 오늘 새벽부터 이른시간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조문객들을 맞고 있는데, 그래서 또 이제 궁금한 점이 그럼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이냐, 사실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장례절차문제를 놓고 좀 논란이 있었는데요?

<기자>

그렇죠, 바로 그 점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그 당시 정부와 상당히 여러 가지를 협의한 끝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장으로,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뤄졌는데요, 이러한 논란거리를 앞으로는 만들지 말자, 그래서 지난 2011년에 국가장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져서 3년 동안의 유예기간을 거쳐서 지난 해부터 시행이 됐습니다.

그래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첫 국가장으로 치뤄지는 첫 전직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고요, 조금 전에 조문을 왔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무성 지금 새누리당 대표, 또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참 조문을 와서 기자들과 주고받은 말이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앵커>

네, 소개해주시죠.

<기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이렇게 얘기를 했네요, "더 살아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신념의 지도자로서 국민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애증이 분명히 있을 텐데, 마지막 가는 길엔 어쨌든 간에 훌륭한 지도자였다는 점을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다시 한 번 강조를 했고요,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사실 지금은 약간의 미묘한 경쟁관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두사람이 모두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신 상도동계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조문을 와서 기자들에게 "정치적 대부가 돌아가셨다" "정치적 아들로서 앞으로 장례 기간, 그 역할을 꼭 하겠다, 정치적 상주 역할을 하겠다" 이런 얘기까지 김무성 대표가 했네요.

<앵커>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고 또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남긴 인물이라고 보는데 한 번 정치부 오랫동안 출입을 하셨으니까 한 번 소개를 해주시죠.

<기자>

네, 김영삼 전 대통령 사실 저는 퇴임 직후부터 여러 차례 상도동을 가서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만나보면 역시 단답형의 발언들, 단답형의 말을 통해서 어떻게 보면 질게 당연하지만 또 곱씹어보면 상당한 의미가 있는 그런 얘기들을 많이 했는데요, 우리 김수형 기자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한 발언록을 만들어 놓은게 있는데, 준비되면 화면에 한 번 띄어주시고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 군사정권 시절에 했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반드시 온다" 이런 얘기 있지 않습니까? 당시 군사정권 아래에서 민주화를 열망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민주화의 희망처럼 비춰졌던 그런 말이죠.

<앵커>

지금 어록이 나오고 있는데, 김수형 기자가 소개를 해주시죠.

<기자>

네, 이 발언 외에도 아주 주옥같은 어록들이 많이 있는데요, 1993년도에 금융실명제가 전격적으로 시행됐습니다.

여기에서 대통령이 직접 발언을 하면서 "이 시간 이후에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진다" 이게 아주 상징적으로 금융실명제를 설명하는 발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버르장머리' 발언으로 알려진 일본에 대한 발언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1995년에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에 일본 정치인들의 거듭된 망언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이렇게 강경한 발언을 쏟아낸 바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단식과 관련해서도 여러가지 일화들이 많이 있는데요, 2003년도에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단식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단식 현장을 방문하면서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 이 발언을 해서 많은 화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굶으면 죽는다" 발언은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 여정에서 1980년대 했던 23일간의 단식투쟁, 본인 스스로가 대단히 자랑스러워했고 또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라고 하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에 관해서 기자들이 여러차례 질문을 했겠죠,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 "밥 굶어보니까 배가 고프더라. 너무 오래 굶으면 죽는다" 이 얘기를 최병렬 전 대표가 단식할 때, 이기택 전 한나라당 대표가 단식할 때도 같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앵커>

1927년생으로 만 25세의 나이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서 9선의 역대 최다선의원 출신이었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인 연보 다시 한 번 보면서 말씀나누겠습니다.

네, 김수형 기자 소개해주시죠.

<기자>

1927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54년 만 25살의 나이에 최연소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됐습니다.

1963년에는 군정연장반대시위를 하다가 투옥되기도 했고요, 그리고 1979년 신민당 총재 시절에 유신정권에 의해서 국회의원 직위에서 제명되고 가택연금조치를 당했습니다.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된 첫 사례가 되겠고요, 짧았던 80년 서울의 봄 이후 들어선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서 1983년에는 무려 23일동안 아까 말씀해주신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6월 민주화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되자 1987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낙선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1990년에는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3당 합당에 동참했고 이를 기반으로 1992년에는 대한민국 14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93년도에 취임을 했습니다.

이로써 32년간의 군정을 끝내고 문민정부시대를 열게 됐습니다.

<앵커>

또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또 이제 DJ, JP 이른바 3金정치 아니겠습니까? 이 DJ, JP와의 관계, 애증의 관계일텐데요, 주영진 기자 설명해주시죠.

<기자>

네, 우리나라 정치의 거목들이죠.

3김중에 이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2명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고 이제 김종필 전 국무총리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관련해서는 3당 합당을 예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세력을, 평화민주당을 빼놓고 나머지 3당이 합쳤어요.

그러니까 기억나는 것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시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있었는데 이런 야합은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강하게 반발했던 장면이 우리가 기억이 남지 않습니까?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렇게 정치적 목표를 관찰하기 위해선 하나의 승부수를 던지는, 그래서 정치의 승부사라는 이름을, 별명을 갖고 있고요, 반면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천천히 돌아가는 외야하는 정치 스타일로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렇게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연합, 거기에는 바로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의 연합이 있었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그리고 3金의 우리 현대 정치를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얘기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영삼 전 대통령, 향년 88세로 서거 -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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