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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핵 문제

[논설위원칼럼]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핵 문제
최근 북한이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잇달아 언급하면서 북핵 문제가 또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잇딴 미사일 발사에 UN 안보리가 '구두 언론 성명'으로 규탄한 데 대해 북한이 과도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3월 24일과 25일 열린 헤이그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국 정상이 북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방침을 확인하고, 한미일 6자 회담 수석대표가 만나 대책을 논의하는 등 3국간 공조가 진행되는 데 대한 반발일 수도 있습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사회는 6자 회담이라는 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주도로 계속된 6자 회담은 2003년 이래 10년 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교착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94년 미국과 북한 사이에 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 KEDO가 구성돼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역시 별다른 성과 없이 중단됐습니다.

북한은 오히려 북미 기본합의서 합의 이후 NPT를 탈퇴했고(2003.1.10), 6자 회담 중에는 핵실험을 강행하기도 했습니다.(2006.10.9) 북한은 이제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하고, 실체를 인정하라고 국제 사회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도 이제는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핵 문제 해법은 무엇일까요? 최근 핵 문제에 관해 주목할 만한 진전을 이룬 것이 이란 핵 문제입니다. 2013년 11월 이란과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 독일(P5 + 1)은 이란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이란이 IAEA의 핵사찰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고,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제한하는 대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화해 주기로 한 것입니다. 이란은 '핵 주권'을 인정받으면서 경제적 실익도 챙길 수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이란을 고리로 한 핵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환영했습니다.

북핵 문제와 함께 또다른 골치거리였던 이란 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 합의는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북한 핵 해결 방식의 한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관심을 끌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이란이나 리비아 핵 문제를 해결한 방식의 원형이 우크라이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우크라이나 핵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구 소련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집중시켰습니다. 유럽과 가깝다는 측면도 있고, 우라늄 매장량이 풍부한 데다 핵 관련 기술 수준도 높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최악의 원전 사고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전도 우크라이나에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에는 엄청난 양의 핵무기가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우크라이나는 92년 현재 1,080개의 핵탄두를 보유했습니다. 핵과 화학 무기 문제를 다루는 미국의 NTI(The Nuclear Threat Initiative)에 따르면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었습니다. 이런 위협적인 상황이 이어지는 것은 국제 사회는 물론 신생 국가인 우크라이나로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만에 하나 핵무기가 테러 단체에라도 흘러갈 경우 그 결과는 상상 조차 하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러시아를 포함해 국제 사회가 나섰습니다. 94년 12월 이른바 부다페스트 각서가 체결됐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영국은 우크라이나를 비핵 국가로 만드는 대신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 현 상태의 영토를 존중해 준다는 사실을 재확인했습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독립성이나 영토적 통합을 위협하거나 이를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재확인했습니다. 이와 함께 각종 경제적 지원도 병행됐습니다.

각서가 체결된 이후 우크라이나는 자국이 보유했던 각종 핵무기를 러시아로 보내 폐기하도록 했습니다. 폐기 작업은 96년 1월 1일 부로 종료돼 이날 이후 우크라이나는 비핵 국가로 공인됐습니다. 국가의 주권 보장과 군사적 위협 금지, 여기에 경제적 지원, 이것이 우크라이나 방식의 요점입니다. 핵을 포기하는 대신 국가 안보를 보장해 주고, 이에 더해 당근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똑같지는 않지만 이후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적용됐습니다. 리비아 핵 문제도 그렇고 지난 해 이란 핵 합의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꾸준히 이 방식을 원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 하는 '미국의 침략'이 없다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체제 보장을 해 주고, 대신 핵을 제거한다는 제안입니다. 결국 북핵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그것입니다. 러시아도 각서에 서명했는 데, 그 당사국인 러시아에 의해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다른 당사국인 미국은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당시 부다페스트 각서에 서명한 당사국들이 모두 발을 빼거나 오히려 주권을 위협하는 이 상황을 우크라이나로서는 핵도 빼앗기고, 영토도 빼앗기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이란이나 북한도 동병상련의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란의 경우 6개월 동안 이행 상황을 서로 지켜 본 뒤에 다시 논의하자고 했는 데, 당장 5월에 어떤 평가가 나올 지 전망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북한은 더 합니다. 북한은 이미 2011년 3월에 리비아 방식을 거부했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란 바로 안전 담보와 관계 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상대를 얼려 넘겨 무장해제를 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 방식이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연합군의 리비아 공습을 비난했습니다. 이러니 우크라이나 방식으로 가자고 하면 더한 불신감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인기 논설위원 대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사례라고 평가 받던 우크라이나 비핵화가 일거에 불신의 대상이 돼 버렸습니다. 다른 획기적인 방법을 찾지 않는 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래서 한반도에도 직격탄을 쏟아 부은 결과가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 등 당사국들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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