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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다큐] 손끝에서 시작한. -기억하라, 이 권리가 오기까지

기억하라, 이 권리가 오기까지

6월 3일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이를 앞두고 SBS는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 행사를 독려하는 특별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투표권은 누구에게나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권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한 표에는 ‘보통·평등·비밀·직접’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와 땀, 그리고 시간이 깃들어 있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18세 이상의 유권자 누구에게나 한 장의 투표용지가 주어지기까지의 치열했던 역사적 여정을 따라간다. 그 속에서 투표권 확대에 중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며, 우리가 쉽게 지나쳐 온 권리의 무게를 되새긴다.
 

<7번방의 선물> 꼬마 예승이, 생애 첫 투표에 나선다!

천만 관객의 마음을 울렸던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예승이 역, 배우 갈소원. 어느덧 스무 살이 된 그는 이번 선거에서 생애 첫 투표에 참여한다. 공식 선거는 처음이지만, 학창 시절 학급 선거를 통해 한 표의 가치를 앞서 체감했다고 말하는 소원 씨. 꼬마 예승이에서 이제는 한 명의 유권자로 성장한 그의 투표 준비기와 첫 대통령 선거를 앞둔 기대와 설렘을 전한다.
 

‘직접 뽑을 수 있는 권리’...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

군사 정권 아래 간접선거가 이어지며,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이름뿐인 제도로 전락했다. 그 불의를 바꾼 건 바로 1987년 6월, 거리로 나선 시민들이었다. 전국을 뒤흔든 6월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고, 국민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선택하게 했다. 민주화 항쟁에서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는 <진혼곡>을 불렀던 김영남 씨와, 연세대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에 피격된 이한열 열사를 부축했던 이종창 씨의 이야기를 통해 직접 선거권 쟁취를 위해 싸웠던 1987년 그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광복 이후 나라의 기틀이 된 이 문장은 한 독립운동가의 철학에서 출발했다.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장이었던 조소앙 선생이다. 그가 기초한 임시헌장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분명히 기록돼 있다. 더 놀라운 건 선거권과 참정권에 대한 내용이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는 점이다. 그 철학의 깊이와 시대를 앞선 비전을 조소앙 선생의 후손인 조인래 씨를 통해 들어본다.
 
 

SBS 특별기획 <손끝에서 시작한. -기억하라, 이 권리가 오기까지>

저의 주님이시며 심판자이신 그리스도님,
이 표가 하느님 뜻을 헤아려 제가 뽑혀 마땅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행사되나이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을 울렸던 그 영화, 7번 방의 선물에서 예승이 역할을 맡았던 배우 갈소원입니다.
Q. 영화 출연할 때 몇 살이었나요?
- 그 영화 촬영을 할 당시에는 7살이었고요. 개봉할 땐 딱 8살이 되던 시점이었어요. 지금은 20살(만 18세) 됐습니다.
Q. 올해 처음 투표에 참여하나요?
- 네, 맞아요. 제가 이 나라의 시민으로 제대로 인정받게 되는 그런 기점이 되는 것 같아서 그런 게 또 새롭고 좋습니다.


그 꼬마, 예승이. 그 아이가 자라 벌써 한 나라의 미래를 선택하는 유권자가 됐습니다. 소원 씨는 지금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주살이는 조금은 즉흥적인 가족의 선택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이모가 어쩌다가 시골 초등학교에 여행을 가게 됐는데 이 날씨처럼 비가 온 거예요. 그래서 집 옆에 있는 공원에 갔는데 그 공원이 너무 예뻤고, 그 옆에 있는 초등학교가 벚꽃이 막 필 때였는데 그게 너무 예쁜 거예요
 
소원 씨에게 학창 시절의 기억은 모두 이곳, 제주에 쌓여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쭉 지내다가 중고등학교 때 학교생활 쭉 하고 졸업을 하고, 서울에 작품 활동이나, 아니면 다른 일이 있으면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일하고 있어요.
 
원래대로라면, 소원 씨의 인생 첫 선거는 내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탄핵 정국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습니다. 인생 첫 선거가 대통령 선거가 된 겁니다. 돌아보면, 소원 씨에게 선거와 투표는 낯선 일은 아닙니다.
 
제주도에 4학년 때 왔는데, 학교에 반장 선거를 제가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나가볼까? 나 해볼까?
 
그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소원 씨는 학급 임원 선거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고 합니다. 선거에 늘 진심이었던 모양입니다. 초등학생 때 만들었다는 선거 포스터에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Q. 초등학교 5학년 거를 아직 그 팸플릿을 갖고 있다는 거에 사진으로 지금 봤는데 굉장히 놀라웠어요 그거 왜 그렇게 오랫동안 갖고 있었어요?

제가 그만큼 또 진심이었고. 아직도 생각나는 게 있어요. 복도에 걸 건데, 예쁘게 만들고 싶었는데 막 제 마음대로 예쁘게 안 만들어지고 이래서 너무 속상해서 울었던 기억까지 있거든요.
 
그 정성엔, 가족들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새로운 곳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도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원 씨에게 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하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딱 한 번 반장 선거에서 떨어진 적이 있는데 그게 한 표 차이로 떨어졌었거든요. 딱 한 표 지는 거에서 절망했죠, 하하.  이 한 친구, 한 친구가 이렇게 큰 힘이 있구나. 한 학기의 반장을 결정하는 데에 이 친구들이 모이면 그냥 한 반의 학우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표가 중요하구나, 생각했어요.
 
그날, 소원씨는 깨달았다고 합니다. 표는 숫자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걸 말이죠. 그리고 한 사람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 첫 번째 선거를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다고 합니다. 그냥 투표소에 간다고 유권자의 의무를 다하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는 소원씨에게 ‘선거권의 역사’를 정리한 동영상 콘텐츠 하나를 추천했습니다. 소원 씨는 이걸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요?
 
<비디오머그 영상>

여성 선거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조롱거리가 되었고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흑인 선거권을 찬성하는 이들이 테러로 목숨을 잃었고 흑인들의 집과 교회가 불태워졌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65년 천조국의 흑인들은 76년간의 긴 투쟁 끝에 선거권을 쟁취했습니다.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뭐, 인종이 어떻든 투표권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제가 이 짧은 시대에 운 좋게 태어나서 그런 걸 누리고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실 저로서는 오히려 그런 선거권이 없는 시대를 상상할 수도 없고 체감할 수도 없고, 너무 억울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청소년들 역시 한 표를 갖기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응답하라~ 선거권은 인권이다~~
 
18세 선거권이 없던 시절. 간절히 한 표를 원했던 청소년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고3이었던 이은선 양. 성인이 된 은선 씨는 지금도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은선 씨는 그때 왜 거리로 나가 선거권을 달라고 외쳤을까?

청소년으로서 유권자가 아니니까 무시받게 되는 경우도 많고 당장 이거 안 하면 당신은 안 뽑을 거예요 이런 얘기를 못하니까 그런 게 되게 불리하게 또 느껴지면서 좀 청소년들이 정치 참여를 할 수 있을 때 또 바라는 세상을 더 얘기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런 활동을 하게 됐어요

책가방을 내려놓고 삭발을 감행한 청소년들. 그들은 정치의 주체가 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결국 국회의 문을 열었고 2019년 12월,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선거권 연령은 19세에서 18세로 낮춰졌습니다.
 
<뉴스>
- 이번 총선은 만 18살 국민도 유권자로 처음 투표에 참여한 선거였습니다.
- 18살 유권자는 54만 8천986명입니다

 
교복 입은 사람한테 명함 주는 장면을 꽤 선거 기간에 몇 번을 봐서 이제 조금 더 교복을 입은 사람들에게도 본인에 대해서도 홍보를 하고 이런 게 있다고 얘기하는 거 자체가 눈으로 보이는 변화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없었던 시대
 
당연해 보이는 이 권리,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호헌철폐 독재타도
 
♬ 표연히 자욱히 피어오르는 저 언덕 묘지 위에 비에 젖은 흐느낌 울려퍼지어 살아 귓가에 넘실거린다~
 
안녕하세요 방금 들으신 진혼곡을 부른 김영남입니다
Q. 오랜만에 이 노래 들으니까 어떠셨나요?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요 저는 아직도 이 노래는 부를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들으면 좀 울컥하고 소름이 돋습니다

 
1988년, 이 노래를 불렀을 당시 김영남 씨는 고려대 2학년생이었습니다. 군대에서 곡을 썼다며 한 선배가 건넨 곡인데 교내 노래한마당에서 대상을 차지해서, 전국 대학생 무대에까지 초청됐는데 거기서 이 ‘진혼곡’은 대상 곡보다 더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1절이 끝났을 때 사람들이 환호를 하는데 정말 무대에서 전율이 느껴질만큼... 네, 대단했죠

타고난 고음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노래패 공연마다 학생들의 큰 반응을 이끌어냈던 김영남 씨. 진혼곡은 무대 위의 분위기를 바꾸는 노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만큼 부르는 사람은 감정도, 체력도 모두 쏟아내야 했습니다.
 
진혼곡은 굉장히 힘들어요 일단 체력적으로
기자 : 한 곡 부르는 자체가?
네네 한 곡 부르면 이렇게 약간 탈진하는 느낌? 광주잖아요 이 이야기의 노래 배경이.. 그 가사 다 가슴에 닿았어요. 가사 중간에 타올라라 복수, 복수를 위해 사실 노래 중에
그런 가사가 있는 노래는 거의 없잖아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쓰러져 간 이들을 기억하며, 한 소절 한 소절에 마음을 실었습니다.

부르면서 더... 계속 더 감정이 커지는 노래였죠
 
♬ 떨리는 저 몸부림 목 메인 그 함성으로 쓰러져 간 그대 원혼 가슴에 남아 타올라라 복수 복수를 위해 굽이쳐라 해방을 위해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신입생이 꿈꾸던 대학 생활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이제 광주 영상을 본 거였고 광주 동영상을 보고서는 그냥 제 스스로 결정했던 것 같아요. 나도 뭔가 이제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그때는 노래였으니까 노래 공연도 하고 집회장에서 노래도 부르고
 
당시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아니라 ‘선거인단’이 투표하는 간접 선거 방식이었습니다. 국민은 투표권이 없는 관객이었고 민주주의는 허울뿐인 무대 위 각본.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체육관 선거’라고 불렀습니다. 권력은 있지만, 정당성은 없는 시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87년 벽두의 이 사건, 조사관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국민의 분노에 불을 지폈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뜨거웠던 시절? 가장 많이 제가 변했던 한 해였고 제가 첫 가두, 우리가 보통 가두라고 하는 집회를 나갔던 게 5월 23일이거든요? 87년도. 전두환이 그 당시에 다시 또 같은 방식의 대통령 선거를 하겠다고 했고 그것을 반대하는 구호가 호헌철폐였고 그것의 반대라는 건 결국 이제는 직선제를 하겠다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겠다는 거였기 때문에 그 독재 타도만큼이나 굉장히 중요한 구호였죠.
 
대통령 직선제, 그 한 표를 쟁취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끝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987년 6월 항쟁 때한열이 곁을 지켰던 이종창이라고 합니다.
Q. 다시 이곳에 오니 어떠신가요?
매년 올 때마다 한편에는 좀 무거운 마음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 조금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좀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직선제 쟁취하자 쟁취하자 쟁취하자~
 
바로 그날, 당시 연세대 2학년생이었던 이종창 씨는 시위 지도부를 보호하는 사수대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상황은 좀 이상했습니다.

그날은 좀 특이했던 게 이제 그 사복조들이 뛰어들어올 때 이제 최루탄을 쏘고 학생들이 최루가스가 좀 없어지고 학생들이 어느 정도 이제 이동을 한 후에 이제 저기 전경들이 뛰어들어왔는데 그날은 최루탄을 쏨과 동시에 전경들이 뛰어들어오더라고요 그날 또 유난히 최루탄을 많이 쐈어요 그래서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좀 뿌옜어요.
 
그리고 누군가, 교문 앞에 쓰러졌습니다.
 
그때 기억이 생생한데 저 기둥 뒤쪽에서 백골단들이 들어올 듯 말 듯 계속 망설였어요 저는 마음이 급해서 빨리 안쪽으로 끌고 가야 되겠다하고 이제 계속 안쪽으로 끌고 가는 상황이 있었죠.
 
87년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이 한 장의 사진. 쓰러진 이는 경영학과 86학번 이한열이었고 그를 부축한 사람은 그와 일면식도 없었던 도서관학과 86학번 이종창 씨였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이한열 열사를 병원으로 이송 보낸 뒤 이종창 씨는 곧바로 시위대에 다시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닷새 뒤, 그 역시 시위 도중 백골단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는 큰 부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정신을 잃고 눈을 떴는데 이제 중환자실이었고 거기에 이제 저희 어머님하고 이제 한열이 어머님이 들어와서 이제 옆에 한열이, 옆에 있다고 이제 그 얘기를 듣고 이제 옆 병상에 한열이가 누워 있는 걸 알게 됐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일반 병실로 옮겨 퇴원을 앞두고 있던 이종창 씨. 그날이 87년 7월 5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한데 이제 어둠이 걷히는 때였어요. 그 전쟁할 때 보면 막 그 진지전 하면서 기어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이제 전경들이 막 이렇게 몰려오는 걸 보고 이제 한열이가 운명한 걸 알게 됐죠.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청년은 한 달 가까이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실 6월 9일 이전까지만 해도 교내가 그렇게 어떤 집회 참석의 열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6월 10일 날 시청에 나가서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아 달라지고 있구나...
 
이한열 열사의 피격은 6월 항쟁의 불씨를 당겼고, 민주항쟁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국민 직접 투표를 막아 장기집권하려는 전두환 정권은 군 투입까지 고려했습니다.
 
선거제도가 간선제였거든요 그럼으로 장기집권을 해왔고 전두환 정권 하에서도 간선제를 통해서 장기집권을 하려고 하는 그래서 저희는 직선제를 주장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국민의 거센 저항 앞에 전두환 정권은 결국 물러섰고,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6.29 선언.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기자 : 제가 오늘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까 어떤 아버지의 이야기예요. 가족이 무슨 공연을 보러 100주년 기념관에 왔는데 애들 공연이라 엄마랑 애들만 들어가고 아빠는 산책하다가 여길 와보시고 글을 남겼어요. 이렇게 민주화 운동을 한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투표를 하는 거겠지요.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이런 말씀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요즘 잘 울컥 안 하는데 다른 분이 그런 이야기 했다니까 울컥하게 되는데.. 고맙죠 저희가 노력했던 이유 그걸 아주 실감하게 이해해주시고 느껴주셔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당연해 보이는 이 권리,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닙니다.

우리 민주독립을 성공하리다 어른마다 투표하여 정치성 권리를 갖게 하오리다. 우리 조국을 광복하오리다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되면 나의 몸을 불에 태워 죽여주시오. 대한독립만세, 임시정부 만세
 
안녕하세요 지금 들으신 건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기초한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의 음성입니다. 저는 후손 조인래입니다.
Q. 이 육성은 언제 녹음된 건가요?
1946년 해방 이후 첫 3.1절 행사장에서 연설하신 음성입니다.

 
해방된 조국에 대한 애정이 절절하게 담겨 있는 연설. 조소앙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외무부장과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입니다.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직전 단체 사진에서 백범 김구의 바로 뒤에서 서있던 조소앙은 대한민국이 어떤 철학 위에 세워져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깊이 고민했던 인물입니다.
 
조인래 씨가 가문 어르신들을 통해 들었던 큰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이렇습니다.

나라를 만드신 분이다 대한민국을 있게 한 분이다. 또 국호를 만든 분이다 뭐 이 정도 얘기는 알고 있었는데 사실 조금씩 조금씩 어르신들 얘기하는 거 보면 자꾸 삼균주의를 얘기하시더라고요.
 

독립운동의 기본방향이자 임시정부 헌법의 기초 이념이었던 삼균주의를 비롯해 그가 남긴 수많은 메모에는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던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그 철학은 조소앙 선생이 기초한 최초의 근대적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에도 담겼는데 민주공화국으로의 지향과 남녀, 귀천, 빈부를 가리지 않는 보통선거의 원칙이 처음으로 기록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1941년 임시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건국강령 역시 조소앙 선생이 초안을 잡았습니다. 한마디로 선생은 임시정부의 이데올로그였습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마다, 깊은 고심의 흔적이 담겼습니다. 특히 선거에 대한 내용은 놀랄만큼 구체적입니다.
 
보통선거에는 만18세 이상 남녀로 선거권을 행사하되 신앙 교육 거주 연수 사회 출신 재산 상황과 과거 행동으로 차별받지 않는다
 
대한민국 임시헌법과 건국강령의 정신은 1948년 제헌헌법으로 이어졌습니다.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말을 가장 먼저 문서에 담은 사람이 바로 조소앙 선생인 겁니다.

아... 이건 그냥 개인사의 우리 할아버지가 아니구나. 정말 대한민국 정체성을 만들고 이 토대를 정신적인 토대를 만든 (분이구나)
 
그렇다면 선생이 남기고자 했던 민주공화국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공화의 개념을 잘 모르더라고요 공화는 사실은 민주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공동체를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내 개인의 권리보다는 타인의 권리도 인정이 되고 전체 공동체를 생각해야 되고 공공을 이야기하고 공공의 선을 얘기해야 하는 거고 책임과 의무가 따라야 되는 거고...
 
2025년,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는 다시 한번, 그 본질을 묻는 질문 앞에 서게 됐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선언된 바로 그 조항.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헌법 1조 1항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그 문장이 판결의 기준이자 헌법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 된 것입니다. 그 말의 무게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후손 조인래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탄핵 사건 때문에 결국은 헌법 1조에 그 인용할 수밖에 없는 그 아픈 현대사의 또 한 단면이 아닌가 어떤 권력이라도 헌법 1조, 이걸 넘어서는 안 된다. 주권은 넘어서는 안 된다.

손끝에서, 공화국의 미래가 시작된다
 
미래는 결국 우리 손끝에서 결정됩니다.

우리는 이제 곧 이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직접 선택해야 합니다.
 
(뉴스 앵커 오디오)
- 제21대 대통령 선거 날짜가 6월 3일 화요일로 확정됐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말을 다시 한번 손끝으로 증명할 시간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부에서 선거 결과를 놓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우리 사회는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사전투표, QR코드 인식, 투표지 분류기, 투표함 이송 등등.... 선거는 기술적으로 정교해졌지만 이 복잡함이 누군가에는 투명함이 됐고, 누군가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 선관위 조선희 팀장
정치의 양극화라든지 또 확증 편향이 심화되는 그런 사회 현상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좀 맞물려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좀 나오는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 선거 절차에 대해서 좀 이해나 신뢰 이런 것들이 제고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무엇보다 투명성과 공정성이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선관위가 지켜야 할 것은 표의 수만이 아니라 그 한 표에 담긴 국민의 신뢰입니다.
 
# 선관위 조선희
선거 절차에 대해서 국민들이 좀 이해하지 못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공정선거참관단이라는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해서 운영을 합니다.

 
중앙선관위의 의뢰로 한국정당학회와 정치학회에서 공정선거참관단을 구성했습니다. 여기에는 정당 추천인과 시민 단체, 학계 등 외부 인사 38명이 참여해 선거의 전 과정을 지켜본 뒤, 그 결과를 보고서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공정선거참관단에 참여하게 된 대학생 조서현 씨.
 
이제 현장에서 그 공정성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를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 이 공정선거 참관단을 지원하게 됐습니다.
 
대학에서 정치를 가르치며 공정선거참관단에서 한 팀을 이끌게 된 김남규 교수는 사전투표 전 과정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뭐 비율로 보면 절대다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국민들이 이 선거의 공정성에 의문을 갖고 이는 것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선거의 공정성이 정치학자로서는 가장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니까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참관단은 지난 10일에는 대통령 후보 등록 과정부터 현장에서 직접 지켜봤습니다.
 
정당별로 나눠서 기본적으로 심사를 합니다. 뒤에 책상은 행정반입니다.
행정반에서는 한 번 더 재점검을 합니다. 미비 사항이 없도록...

 
참관단에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개혁신당 등 정당에서 추천하는 참관단도 선거의 전 과정을 지켜봅니다.
 
#허지수 대학원생
이제 부정선거가 만약에 없다면 그 부존재를 증명하는 게 사실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 부존재를 어떻게 증명해 나가고 또 다른 정말 정치 견해, 정치 진영과는 상관없이 전 국민적으로 좀 사회적인 합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선관위가 풀어나가고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를 좀 구체적으로 지켜보고 싶습니다.

 
선관위는 지난 10일 후보자등록 신청 첫날부터 참관단에게 투·개표과정의 세부절차와 보안체계, 사전투표용지발급기·투표지분류기 등 주요 선거 장비를 설명했습니다. 공정선거참관단은 사전투표소와 사전투표함 보관소, 우편집중국, 투표함 이송 현장 등 선거의 전 과정을 곳곳에서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이 심사 계수기를 이용해서 확인하기 때문에 이런 뭐 분류기에 조작해서 결과를 바꾼다고 하더라고 그게 이 분류 결과가 최종적인 개표 결과는 심사 집계부에서 저희가 확인을 하기 때문에 그런 그 개표 결과의 어떤 조작이라든가 뭐 바뀌는 사례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선관위는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그동안 위원회별로 구분없이 매시각 공개하던 사전투표자수를 사전투표소별로 매시각마다 관내와 관외로 나눠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사전투표함 보관소의 CCTV도 지난 총선에 이어 24시간 공개하고 투표지 분류기를 돌린 뒤에는 수검표도 계속 실시합니다.
 
하지만 선거는 시스템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퍼즐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맞추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이번 선거는 어떤 의미입니까?

# 갈소원
아직 실감이 안 나요. 저는 마냥, 그냥 지금까지 해 본 투표라고는 반장 선거밖에 없는데. 제가 벌써 이렇게 나라의 일에 참여한다는 게 놀랍기도 하면서도 꼭 나라 일에 참여를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요.
 
# 김영남
이게 얼마나 소중한 권리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는지 알기 때문에 그 얘기는 애들한테도 하는 것 같아요. 이게 그냥 주어진게 아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얻은 거니까 누구를 찍든 투표는 해라, 저도 마찬가지고요
 
# 이종찬
투표 행위는 내가 그런 권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이고 적극적인 행동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해서 투표를 내가 안하면 다른 사람도 안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이제 반드시 투표를 하자 왜 이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희생해 가면서 싸웠을까? 그런 생각을 한 번 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지난 8일, 콘클라베를 통해 새 교황이 선출됐습니다. 추기경들은 전통에 따라 신 앞에서 각자 한 표를 던졌고, 그 한 표가 가톨릭교회를 이끌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다음 달 3일, 우리도 각자의 양심 앞에 섭니다.

누군가는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는 익숙하게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습니다. 당신의 손끝에서 다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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