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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내와 긍정의 힘'…시각장애인 첫 대학 총장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이재서 총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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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진/앵커: 제가 꼭 모시고 싶어서 오늘(3일) 특별히 모신 분이 있습니다. 이재서 총신대 신임 총장님이십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총신대 총장이라고 하는 중요한 자리까지 오르신 분입니다. 총장님, 어서 오십시오.

▶ 이재서/총신대 총장: 안녕하십니까?

▷ 주영진/앵커: 안녕하세요? 저 인사드리겠습니다. 주영진입니다.

▶ 이재서/총신대 총장: 반갑습니다.

▷ 주영진/앵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재서/총신대 총장: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우리 총장님 처음에 총장이 딱 되셨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총장님이 되셨습니다라고 연락받으셨을 때.

▶ 이재서/총신대 총장: 너무 놀라웠고 그냥 기적처럼만 느껴졌습니다.

▷ 주영진/앵커: 왜 기적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셨죠?

▶ 이재서/총신대 총장: 제가 이 총장을 본래부터 꿈꿨던 그런 입장이 아니었고 그냥 저희 대학에서 한 25년 동안 열심히 가르치고 사실은 올해 2월에 제가 은퇴를, 정년퇴임을 하는 그런 시점이었는데.

▷ 주영진/앵커: 아, 정년퇴임을 앞두고 계신 상황이었습니까?

▶ 이재서/총신대 총장: 네,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제가 작년 연말에 지원을, 주변 권유로 지원을 했는데 지원할 때는 그냥 한번 해 보는 것이지 정말 될까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냥 된 겁니다. 그래서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기적같이 느껴졌습니다.

▷ 주영진/앵커: 전공은 뭐 하셨습니까?

▶ 이재서/총신대 총장: 제가 사회복지정책입니다.

▷ 주영진/앵커: 사회복지정책. 사회복지정책을 공부하시게 된 것이 혹시 총장님께서 안고 계신 어떤 이 시각장애와도 연관이 있는지요?

▶ 이재서/총신대 총장: 그렇습니다. 제가 총신대를 졸업을 했는데 총신대 재학 시절이었던 1979년.

▷ 주영진/앵커: 1979년.

▶ 이재서/총신대 총장: 약 40년 전에 밀알선교단이라고 하는 장애를 위한 단체를 설립했는데 그 단체를 운영을 하면서 아무래도 장애인 쪽의 일은 사회복지적인 그런 지식과 어떤 배경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거를 전공하게 됐습니다.

▷ 주영진/앵커: 총장님, 그러면 대단히 죄송스러운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 시각장애는 선천적이십니까? 후천적이십니까?

▶ 이재서/총신대 총장: 제가 초등학교는 아주 정상적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하고 나서 한 1년쯤 지나서 실명이 됐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떤 특별한 어떤 질병을 앓으셨습니까? 아니면 갑자기 특별한 이유 없이.

▶ 이재서/총신대 총장: 아주 어려서 앓았던 열병 후유증으로 당시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주영진/앵커: 초등학교 졸업한 직후라고 한다면.

▶ 이재서/총신대 총장: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1년 정도 집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당시에 가정 형편상 중학교를 진학 못하고 부모님을 도와서 논밭에서 일을 했는데 그러던 중에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더니 약 한 1년 정도 어간에 완전히 시력을 상실하게 됐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떠셨습니까, 그때? 그 어린 나이에.

▶ 이재서/총신대 총장: 참담했죠. 참담했습니다. 절망감이라고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었고 특별히 사춘기 때였기 때문에 제가 그거를 현실로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면 그때 더군다나 중학교 진학도 못하신 상태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아까 말씀하신 거잖아요. 그러면 가정형편도.

▶ 이재서/총신대 총장: 너무 어려웠습니다.

▷ 주영진/앵커: 어려웠고요. 그러면 모든 것이 우울하고 암울하고 나에게 과연 미래는 있을까. 이제 나는 내가 그렇게 보던 세상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이겨내셨을까 저는.

▶ 이재서/총신대 총장: 실명되고 약 한 1년 가까이 집 안에 혼자 있게 됐습니다. 물론 부모님, 형제도 있었지만 농촌이기 때문에 다 일하러 밖에 나가면 그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거를 이겨냈다기보다는 그냥 견디는 겁니다. 그냥 있었던 것이고,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가 가장 저에게는 아팠던 시절이고 이제 그 시절이 지나서 제가 서울에 있는 시각장애인학교, 서울맹학교라고 하는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드디어 이제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또, 같은 처지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만나면서 뭐라 그럴까 삶의 변화가 생겼지, 그전까지는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죽음의 시간이었고요. 그거를 극복했다기보다는 그냥 아직 죽지 않은 상태에서 견뎌냈던 시절로 이렇게 기억을 합니다.

▷ 주영진/앵커: 극복한 것이 아니라 그냥 견뎠던 것이다, 그냥 있었다.

▶ 이재서/총신대 총장: 그렇게 그냥 있었던 겁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면 그냥 있는 것만으로는, 있는 것만으로는 오늘의 총장님이 가능했을까요?

▶ 이재서/총신대 총장: 그래서 어쨌든 저는 사실은 가정이 어려워서 만약에 제가 실명이 안 됐다면 물론 공부, 학력이 다는 절대 아니라는 생각 저도 공감을 하지만, 어쨌든 저의 형편상으로는 정상적으로 중학교를 진학할 수 없었고 실명이 되고 나니까 한 1년 정도 집에 있은 이후에 부모님께서 어쨌든 집에 둘 수 없는 앞 못 보는 아이를 서울에 있는 시각장애인학교에 보내주신 겁니다. 그게 진학의 계기가 됐고 그렇게 해서 진학한 서울맹학교에서 여러 가지 삶의 변화도 생겼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서울맹학교에 진학하신 때가 그게 몇 년이십니까?

▶ 이재서/총신대 총장: 1968년도입니다.

▷ 주영진/앵커: 68년에.

▶ 이재서/총신대 총장: 중학교 1학년입니다.

▷ 주영진/앵커: 1968년에 서울맹학교에 진학을 하신 거고요. 지금 사진이 우리 총장님은 안 보이시는데 아마 사찰에 가서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나갔고요.

▶ 이재서/총신대 총장: 아마 소풍 가서 찍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주영진/앵커: 소풍 가서 찍은 사진. 지금은 대학 졸업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있고요.

▶ 이재서/총신대 총장: 그거는 아마 총신대 졸업할 때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에듀케이션 소셜 어드미스트레이션이라고 쓰여 있는 앞에서 아주 단정한 자세로 찍은 사진이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 이재서/총신대 총장: 그거는 지금 대학원, 제가 미국에 있는 템플 대학을 석사 학위를 했는데 거기 갔습니다.

▷ 주영진/앵커: 총장님께서 시각장애를 이겨내시고 공부를 열심히 하시고 박사 학위 따시고 모교의 교수가 되고 대학 총장까지 왔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시면 그 어린 시절에 갑자기 찾아왔던 시각장애.

▶ 이재서/총신대 총장: 정말 꿈같이만 생각이 들고 그다음에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저는 시각장애 때문에 눈물도 흘리고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시각장애라고 하는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서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각 상실을 했기 때문에 장애인을 돕는 그런 밀알선교단이라고 하는 세계밀알이라고 하는 단체를 설립해서 보람을 느끼는 일도 할 수 있었고 또 그 끝에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해서 또 교수가 되고 교수 끝에 하다 보니까 이렇게 총장까지 됐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저는 실명이 저의 모든 가진 것을 만들어준 관문이었고 행운의 열쇠였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시각장애가 오히려 오늘의 총장님을 있게 해준, 가능하게 해준 신의 선물이 아닐까.

▶ 이재서/총신대 총장: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오히려 그렇게 생각을 하신다.

▶ 이재서/총신대 총장: 그렇게 생각합니다.

▷ 주영진/앵커: 그 말씀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희가 신체적으로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늘 살면서 나는 왜 이럴까? 내 삶은 왜 이렇지? 나에게는 왜 누구처럼 돈이 많은 부모님이 안 계시고 누구처럼 뛰어난 재능이 없고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현실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까? 아마 총장님께 많은 분들이 그런 질문을 할 것 같습니다. 총장님께는 뭔가 대단한 해답이 있지 않을까요? 이런 기대하면서 말이죠.

▶ 이재서/총신대 총장: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실명되고 사실은 절망하고 좌절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앞이 안 보이기 때문에 또 가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만큼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그것이 이유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제가 그게 다가 아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꼭 큰 업적 또 아주 놀라운 결과만 갖는 그런 인생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에 맞도록 그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아름답게 살면 그것도 의미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이 바뀐 이후에 저는 이제 제 스스로에게 남아 있는 것을 찾고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눈이 안 보였기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이 바뀌고 나서는 저에게 남아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소중한 생각도 들고 또 그것을 열심히 활용하고 또 사용해서 열심히 살아보자 이렇게 생각을 했었던 것이 주요했다고 생각이 들고 그렇게 살았더니 어느 날 교수가 되고 또 이렇게 총장까지 됐다고 생각이 들고 그 과정에 제가 그래도 가장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까 이제 실명되고 한 1년 집에 있으면서도 참았던, 그게 의지를 가지고 참은 건 아니었지만 그 인내의 훈련이 제 평생토록 상당히 인내를 잘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좀 만들어준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제가 돌이켜 보면, 제가 좀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던 것은 어떤 경우라도 오래 참습니다.

▷ 주영진/앵커: 오래 참는다.

▶ 이재서/총신대 총장: 그리고 오래 참고 견딥니다.

▷ 주영진/앵커: 견딘다. 참고 견딘다.

▶ 이재서/총신대 총장: 그러고 나면 반드시 또 다른 기회가 있고 오늘이 다가 아니고 내일은 전혀 다른 세계가 이렇게 저에게 주어지기도 하고 그랬던 것을 수없이 경험을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저희가 오늘 총장님 모시면서 많은 분들이 시각장애라고 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취를 이룬 분 하면 헬렌켈러 많이 떠올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워싱턴 특파원 할 때 말이죠. 강영우 박사 혹시 아십니까?

▶ 이재서/총신대 총장: 압니다. 제 8년 선배입니다. 서울맹학교.

▷ 주영진/앵커: 미국에서도 혹시 만나신 적이 있으십니까?

▶ 이재서/총신대 총장: 미국에서는 뵌 적이 없습니다.

▷ 주영진/앵커: 뵌 적이 없으시고요. 그분이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지인들에게 생애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보냈던 이메일이 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이 이상 그대로 장애를 저주로 생각하면 그 사람 삶이 그대로 돼요. 그래서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강영우 박사님도 아마 총장님과 비슷하게 공놀이하다가 공에 맞아서 선천적인 장애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가서 공부하셔서 박사 되시고 두 아들을 또 미국의 고위 관료로 키워내시고. 그런데 그분에게는 사모님 얘기를 참 많이 하셨던 기억이 나요. 오늘의 나는 사실은 우리 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총장님도 오늘의 총장님이 되기까지 고맙고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 이재서/총신대 총장: 저도 뭐 비슷합니다. 그래서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특별히 제가 어린 시절을 겪어오면서 한국에서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때까지 도와준 분은 형님이지만 그러나 결혼한 이후에 제 아내가 저의 손발이 됐고 또 미국에서 공부할 때 어려운 시절에 큰 도움을 줬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 주영진/앵커: 총장님 말씀 들으면서도 저는 오늘의 나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듭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사랑,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본인의 노력과 의지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총장님 와 계시는데 우리 작가팀들이 이걸 하나 갖다 주네요. 총장님 잘 아실 것 같습니다. 온통 멀어져버린 밤이여. 진달래를 꺾으며 양지 쪽 산기슭을 돌아 아, 그곳은 까만 밤이어라. 태양이 식어지는 서쪽 하늘을 향해 가냘픈 마지막 입김이 숨 가쁠 때 이내 검게 타버린 밤이여. 파란 하늘도 어여쁜 화원의 잔디도 나뭇잎 사이 노래하던 아기 새도 모두가 검게 타버린 밤이여. 태산처럼 무거운 밤을 이고 생명을 찾는 영혼, 앙상히 멎어버린 잿더미 속에 영원을 그리워하는 의지. 아, 오늘 밤도 잃어버린 태양을 찾아 외로워야 하는 밤이여.

▶ 이재서/총신대 총장: 제가 실명되고 실명의 좌절을 극복하지 못했던 서울맹학교에 와서 한 1년쯤 지난 이후에 썼던 동시 수준의 어린 시절에 썼던 건데 그 당시에 정말 캄캄해져버린 세상을 생각하면서 제가 뭐 써놓은 그런 것들, 어렸을 때 산천에서 놀고 다녔던 그런 공간도 연상하면서 썼던 시인데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총장님이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 시청자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기회는 또 있고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길이 보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입니다. 제가 잘 하는 건 견디고 참는 것이었습니다. 총장님, 오늘 말씀 정말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재서/총신대 총장: 감사합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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