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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 남짓 공간에 갇힌 7명…절망 순간에도 '독립 노래'

<앵커>

또 이번에는 독립투사들이 많은 고초를 겪었던 항일정신의 상징 서대문 형무소 연결해 보겠습니다.

이세영 기자, 전해주시죠.

<기자>

네,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서대문 형무소, 3·1운동 이후에는 무려 3천 명 정도가 이곳에 갇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15살 어린 학생부터 60대 노인까지 독립을 꿈꿨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서 옥중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지금 제 뒤로 보이는 건물이 3·1운동의 상징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곳인데 제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곳 여옥사에는 모두 8개의 감방이 있습니다.

지금 제 옆에 있는 방이 수감번호 371번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곳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곳은 3.3㎡, 한 평 남짓한 공간입니다. 이 비좁은 공간에 최소 7명의 여성 독립 운동가가 갇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관순 열사 사진을 비롯해서 이렇게 벽면에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여성 운동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이 가운데는 유명한 기생 출신도 있었고 또 만삭의 몸으로 이곳에 들어와 아이와 함께 옥고를 치렀던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3월 1일에도 이곳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 출소를 이틀 앞두고 숨을 거뒀습니다.

다른 방으로도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곳에는 이렇게 벽면 전체에 걸쳐 이곳에 있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수형 기록표가 전시돼있습니다.

현재 기록이 남아 있는 것만 33명의 여성 독립가가 이곳에 있었는데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수많은 이름 없는 유관순들이 이곳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이 절망의 세월 속에서도 희망을 담아 불렀던 노래 가사가 얼마 전에 공개됐었죠.

접시 2개 콩밥 덩이 창문 열고 던져 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100년의 세월을 넘어서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주 범, 영상편집 : 김종태)

<앵커>

저희는 잠시 뒤에 3·1 운동과 관련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소식들 가지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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