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3시 뉴스브리핑] '영혼의 소리꾼' 장사익 "직업 15번 바꿨다"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3시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3시 뉴스브리핑> 월~금 (15:00~16:3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장사익 소리꾼

"장미꽃에 감춰진 찔레꽃에서 아름다움을 느껴"
"있는 듯 없는 듯한 찔레꽃에서 소시민의 모습 봐"
"가수 데뷔 전 가구 납품-차량 정비 등 직업 15번 바꿔"
"1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리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을 것"
"나무도 나이 들면 나이테 생기듯이 자연스레 늙어가고파"
"노래는 즉 이야기…삶의 희노애락에 공감"

--------------------------------------------------------------

▷ 주영진/앵커: 어서 오십시오.
 
▶ 장사익/소리꾼: 네. 안녕하세요.
 
▷ 주영진/앵커: 제가 최근에 오늘 모시기 전에 이런 저런 준비를 하다보니까 노래를 한동안 못하셨다고 해요?
 
▶ 장사익/소리꾼: 네.
 
▷ 주영진/앵커: 어떤 일 때문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 장사익/소리꾼: 글쎄요. 제가 목청 좋다고 그냥 늘 칭찬만 많이 들었었거든요. 근데 금년 초에 1월 달에 목에 이렇게 성대에 이렇게 많은 혹이 나와서 그때 수술을 받고 그 뒤부터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노래를 접고 다음 달부터는 수술을 지금 잘 돼가지고 할 것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면 이제 6개월 정도 쉬셨는데 다음 달부터 공연을 하시고
 
▶ 장사익/소리꾼: 네.
 
▷ 주영진/앵커: 노래하는 데에 소리하는 데에 지장 없다고 병원에서 의사가 확인을 해준 건가요?
 
▶ 장사익/소리꾼: 확인을 해주셨는데 글쎄요. 아직 자신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야 되겠죠.
 
▷ 주영진/앵커: 조금 전에 나온 ‘찔레꽃’ 이 노래도 듣다 보면 마지막 부분에 우리 장사익 선생님이 절규하듯 부를 때 보면 저 목청이 견딜까, 많은 분들이 조마조마하면서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더 올라가는 고음에 사람들의 마음과 눈물이 터지고 이런 모습들을 저도 여러 차례 봤는데요. 이 ‘찔레꽃’이라는 노래가 데뷔곡이죠?
 
▶ 장사익/소리꾼: 네. 맞습니다.
 
▷ 주영진/앵커: 근데 왜 이렇게 슬프죠?
 
▶ 장사익/소리꾼: 글쎄 모르겠어요. 그 노래는 일종에 제 자전적인 얘기거든요. 제가 아주 힘들고 어려울 적에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지경까지 갔을 적에 찔레꽃을 봤어요. 근데 그 찔레꽃은 평소에 눈에 보이지 않던 꽃이었는데 늘 보던 그 빨간 장미꽃 속에 숨겨진 그런 꽃이었거든요. 근데 어느 날 5월 달인가 이렇게 꽃향기가 나서 늘 보던 장미꽃을 이렇게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았더니 안 나더라고요. 향기가.
 
▷ 주영진/앵커: 장미꽃이 아니었군요?
 
▶ 장사익/소리꾼: 네. 그래서 찾아갔더니 거기에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장미꽃 속에 가려져 있던 소박한 찔레꽃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나더라고요. 아 이게 나구나. 아니면 참 세상에 이렇게 으스대지 못하고 뒤에서 쭈뼛쭈뼛하면서 사는 소시민들의 그런 곳에서 진정한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저하고 같이 이렇게 버무려져가지고 뒤에는 제가 한껏 그냥 신나게 울어 제치는 그런 모습이고 그렇게 울고 났더니 개운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마음들이 들으신 분들이 이렇게 같이 공감을 하시고
 
▷ 주영진/앵커: 그러니까 앞부분의 가사도 보면 하얀 꽃 찔레꽃 서러운 꽃 찔레꽃 그러다가 마지막 후렴구 보면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
 
▶ 장사익/소리꾼: 춤췄지 살았지, 하여튼 이런 제 삶의 모습들을 거기다가 다 이렇게 집어넣었죠.
 
▷ 주영진/앵커: 네. 조금 전에 인생이 가장 어려울 때라고 하셨는데 장 선생님이 정말로 15전 16기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까지 15개의 직업을 가졌다,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 장사익/소리꾼: 네.
 
▷ 주영진/앵커: 어떤 어떤 일 하셨어요?
 
▶ 장사익/소리꾼: 좀 창피하죠. 남사스럽고 그런데 제가 상고 출신이거든요. 그래가지고 제일 먼저 보험회사 갔더니 군대 갔다 왔더니 그 회사가 넘어간 거예요. 거기서 또 취직을 못하고 또 무역회사 갔더니 한 1년 있다가 1차에너지파동이 73년도에 나서 그때 또 상고 출신인데 이렇게 하여튼 가는 길마다 늘 그렇게 적응도 못하고 제가 또 부족하고 하여튼 운도 없었고 하여튼 제 길이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참 창피하고 그런데 한 열 댓군데를 전전했었죠.
 
▷ 주영진/앵커: 카센터에 마지막에는 카센터에서도 일하셨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 장사익/소리꾼: 네. 매제가 하는 카센터에 제가 기술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손님들 차 파킹해주고 또 차도 이렇게 따라주고 청소도 하고 손님들 그냥 같이 얘기 상대가 돼주고 하여튼 그렇게 3년을 보냈죠.
 
▷ 주영진/앵커: 그러시다가 1995년 46살 우리 나이로 46살이 되던 해에 첫 1집을 냅니다.
 
▶ 장사익/소리꾼: 네.
 
▷ 주영진/앵커: 그러면 그렇게 고생고생하시는 젊은 시절에 소리는 노래는 늘 장 선생님과 함께 있었던 건가요?
 
▶ 장사익/소리꾼: 그냥 저는 늘 옛날에 한가락은 했습니다. 제가. (하하) 노래도 이제 정식적으로 한 3년 동안 배우고 군대에 있을 때도 제가 노래하는 곳에 있었고
 
▷ 주영진/앵커: 가수의 꿈은 있으셨군요?
 
▶ 장사익/소리꾼: 네. 그때 아주 잠깐 있었죠. 그리고 군대 제대할 적에 나는 여러 가지 성정으로 볼 적에는 안 되겠다 다시 직장생활 하자 다 잊고. 그러면서 하면서 그냥 국악판에 쫓아다니고 국악 하여튼 좀 약간 부잡스럽게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여튼 이렇게 늦게 피는 꽃들처럼 마치 가을에 찬 서리 내릴 적에 피는 국화꽃처럼 저한테도 참 인생에 꽃 피듯이 노래라는 그 길을 찾아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 주영진/앵커: 그렇게 힘든 젊은 시절을 보내셨어요. 미래도 불투명하고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상당히 힘들어 하지 않습니까, 근데 물론 장 선생님이 나 같은 사람도 있어 하고 무조건 힘 내라고 격려해준다고 젊은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요즘 젊은이들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텐데요. 한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 장사익/소리꾼: 세상이 자꾸 이렇게 좀 이렇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문명도 발달되고 행복해져야 하는데 자꾸 더 옛날이 더 그립고 옛날이 좀 행복했던 것 같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음 자세가 요즘에는 막 그냥 컴퓨터 같이 빠르게 가잖아요. 봄여름가을겨울도 없이 그냥 막 뛰어넘고 철이 없는 것 같아요. 요새는. 그런데 옛날에 저희들 아까 그 말씀하셨다 시피 이런 말씀 드려서 좀 거시기 하지만 우리는 식힌 대로 아 이곳에서 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래가지고 하여튼 요즘 우리 친구들은 다 은퇴해가지고 등산 다니고 그러는데 요즘 우리 젊은 친구들은 아무래도 그런 끈기라든가 그런 것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그래서 저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죠. 지금 내가 20살이면 앞으로 1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리면서 그러면 내가 20살인데 30살 됐을 때의 내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됐을까, 지금부터 그 10년 기간을 두고서 열심히 하루 하루 이렇게 노력을 하면 안 되는 게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 주영진/앵커: 장 선생님은 젊은 시절에 미래가 불투명 했을 때 죽을 만큼 힘들다, 이런 생각이 드셨던 적 없습니까?
 
▶ 장사익/소리꾼: 글쎄요. 저는 늘 부족한 게 하도 많아가지고 그래서 툭툭 털고 일어나고 다시 하고 또 그러면서 또 이렇게 넘어지고 근데 마음이 늘 긍정적인 것은 있었어요. 아 내가 좀 부족했어 내가 좀 못났어 나는 재수가 없어, 하면서 다시 어떤 일이든지 하여튼 밥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여튼 참 살기는 살았는데 그렇게 치열하게 산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주영진/앵커: 네. 바로 그런 긍정하고 낙관하는 사고가 46살에 가수의 꿈을 이루는 데에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고요. 이제 노래 얘기로 다시 넘어가야 될 것 같은데 제가 미국 특파원으로 있을 때 장 선생님 와서 공연을 하시는 모습을 가서 뵌 적이 있습니다. 전혀 몰랐던 노래입니다. 그런데 그 노래 듣다가 저 뿐만 아니라 제 주변에 있던 많은 관객들이 한꺼번에 눈물을 흘렸던 노래가 있어요. 그게 아마 ‘꽃구경’이라는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 가사가?
 
▶ 장사익/소리꾼: 엄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혀 꽃구경 가요
 
▷ 주영진/앵커: 네. 그래서 가는 길에 어머니가 자꾸 솔잎을 한움쿰씩 따서 길에다가 버립니다. 그러다가 장 선생님이 갑자기 이렇게 얘기를 해요. 어머니 뭐하신대유? 솔잎은 자꾸 따다가 길에다 버려서 뭐하신대유? 하고 외치고 나면 어머니의 대답이 노래로 나오죠. 한 소절 가볍게 한 번 불러주실 수 있으세요?
 
▶ 장사익/소리꾼: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길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어머님은 아시거든요. 어머님을 버리러 가는 그걸 다 알고 계신데 가시면서까지 부모님들은 자식을 이렇게 걱정하고 그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이렇게 참 이런 거를 주시고 참 한이 없는 것 같아요. 무한한 거 같아요. 부모님들 사랑은.
 
▷ 주영진/앵커: 지금 목 상태가 정상이 아니신데 그 부분을 가볍게 이렇게 음을 낮춰서 한 번 불러주시면 어떨까요? 아들아 내 아들아.
 
▶ 장사익/소리꾼: <노래>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노 혼자 내려갈 길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 주영진/앵커: 네. 감사합니다. 사실 장 선생님 노래를 듣다보면 노래의 힘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데요. 많이 알려진 요즘 아이돌 가수들 노래처럼 많이 알려진 노래는 아닌데 처음 듣는 노래도 장 선생님 노래를 듣다 보면 많은 분들이 울컥울컥 해요. 특히 외국에서 공연하실 때 아마 직접 느끼셨을 거예요.
 
▶ 장사익/소리꾼: 네. 맞습니다.
 
▷ 주영진/앵커: 제가 다른 방송국에서 방송한 거지만 독일, 브라질 이렇게 공연하시는 모습 보더라도 관객들이 이 노래 들으면서 이렇게 눈물을 많이 흘리셨는데
 
▶ 장사익/소리꾼: 네. 맞습니다.
 
▷ 주영진/앵커: 또 하나 이런 가사. 가사도 직접 지으신 것 같은데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런 노래도 있죠?
 
▶ 장사익/소리꾼: 네. 그거는 실은 제가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님 시가 제목이 뭐 하여튼 이랬다지요라는 건데요. 제가 바꿔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살면서 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짜증내고 화를 내면서 하루를 지내잖아요. 그러면서 봄이 와서 꽃은 피고 또 봄이 가고 또 가을이 오고 그러면서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죠. 그런 일상을 담은 그런 얘기입니다. 힘들죠. 사는 자체가.
 
▷ 주영진/앵커: ‘역’이라는 노래 가사도 저희가 한 번 찾아봤어요. 한세월 그냥 버티다 보면 덩달아 뿌리내려 나무될 줄 알았다 기적이 온다 기적이 온다 꿈 속까지 찾아와 서성댄다 세상은 다시 못 올 역일 뿐이다.
 
▶ 장사익/소리꾼: 네. 기막히죠. 그러니까 나무에 이렇게 붙어있는 잎사귀가 자기도 한 번 그 나무처럼 뿌리 내려서 한 번 세상을 한 번 호령하고 싶은데 떨어져서 쉽게 그렇게 뿌리가 내립니까, 마치 우리들이 기차 타고 서울역에서 금의환향 하려고 서울역에 내렸는데 서울이 이렇게 만만치 않고 타관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기차를 타려고 서성대고 또 내릴까 말까 또 좀 실패한 사람들은 역 주변에 서성대면서 우리 부모님 우리 형제들 기다리고 하여튼 이런 모습들로 마치 우리들은 늘 그냥 서성대고 그냥 내릴까 말까 하여튼 그러한 모습들을 그려봤습니다.
 
▷ 주영진/앵커: 장사익 선생님을 가까이서 다시 오랜만에 뵀는데 역시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까요, 이게 자글자글 주름이 져있는 그 얼굴이 트레이드 마크이신 것 같은데 앨범이나 표지에 이런 얼굴 그대로 써 달라, 이런 말씀도 하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 장사익/소리꾼: 네. 그래서 저는 세상은 자연스러워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심지어 막 그냥 익사이팅한 권투 경기장에서도 코치가 선수보고 야 너 자연스럽게 해 부자연스럽게 하지마,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무대에서 노래할 적에 먼저 40대 중반이었지만 지금 60대 후반입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 같이 주변에 있는 사람 같이 세월을 같이 가고 같이 나이 먹고 그렇게 함께 하는 것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우리 손녀가 한 6살 먹은 아이인데 작년에 할아버지 얼굴에는 왜 이렇게 줄이 많아?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야 나무도 나이가 들면 이렇게 줄이 하나씩 이런 나이테라는 게 있단다. 사람도 할아버지도 자꾸 세월이 가니까 1년에 하나씩 이렇게 줄이 하나씩 있단다, 금년부터는 줄을 주름살이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 주영진/앵커: 지금 뵈니까 원래 방송 스튜디오에 출연하시면 분장을 하셔야 되는데 분장을 안 하신 것 같아요. 역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시는 것 같고
 
▶ 장사익/소리꾼: 아닙니다. 화장발이 잘 안 받아요.
 
▷ 주영진/앵커: 저는 이렇게 방송한다고 잔뜩 분칠을 했는데 조금 뭐 부끄러워지기도 하고요. 역시 노래를 잘하려면 삶을 인생을 알아야 한다, 그런 소신을 갖고 계신 거죠?
 
▶ 장사익/소리꾼: 네. 역시 노래라는 것은 제 얘기거든요. 얘기가 얼마큼 많이 있느냐. 희로애락 있잖아요. 근데 아무래도 우리 젊은 분들은 저보다 짧기 때문에 할 얘기가 저보다 적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아무래도 무겁고 좀 애잔하고 슬프고 괴로운 그런 의미의 얘기들을 많이 제가 알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 노래를 하다보니까 들으시는 분들이 저건 내 얘기인데, 이렇게 하면서 공감을 하면서 아무래도 노래의 어떤 생명력이 조금 가는 것이 아닌가 저는.
 
▷ 주영진/앵커: 장사익 선생님이 부르시는 노래는 저희가 특정하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 전통가요라고 하는 트로트도 아니고 트로트도 물론 리베이크해서 많이 부르십니다만 그렇다고 우리 전통 판소리도 아니고 어떻게 불러야 정확할까요?
 
▶ 장사익/소리꾼: 저도 모르겠어요. 저도 정체성도 없고 이것도 기고 이것도 아니고 그래서 물론 예술이라는 것이 꼭 이렇게 좀 규정되어서 이렇게 한다는 것이 조금 모순이지 않나, 백남준 선생님이 하시는 그 행위들이 첫 번에는 저거는 좀 이상한 사람들이 좀 하는 행위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우리들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나중에 비디오아트라든가 행위예술이라든가 그런 쪽으로 많이 학자들이 명명하고 하는데 저는 아직까지 길도 못 찾고 헤매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정말 다행인 게 다시 장사익 선생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목 관리 잘 하셔서 오래 오래 저희 장사익 선생님 노래 좋아하는 팬들에게 그 소리를 들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 장사익/소리꾼: 네.
 
▷ 주영진/앵커: 어렵게 나와 주셨으니까 목 상태도 시험하실 겸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요. 우리 장사익 선생님 노래를 들으시면서 3시 뉴스브리핑을 한 번 마감해볼까 합니다. 여기서 제가 작별 인사 시청자들께 잠깐 드리고요. 장 선생님 모시고 나가서 저도 선 채로 노래 따라 부르겠습니다.
 
▶ 장사익/소리꾼: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3시 뉴스브리핑은 장사익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노래와 함께 마무리 하고요. 저희는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립시오. 장사익 선생님 노래 들으실 수 있습니다. 선생님 일어나시죠.
 
▶ 장사익/소리꾼: 네. 감사합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3시 뉴스브리핑 홈페이지 바로가기

(SBS 뉴미디어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