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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사의 '오락가락' 판결…'사법불신' 불러

<앵커>

법원은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런데 핵심 증거물을 놓고 한 재판부는 가짜로, 다른 재판부는 진짜로 판결한다면 어쩌란 말입니까? 두 재판부에는 같은 판사가 있었습니다.

박세용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경기도 화성의 4,100제곱미터 넓이의 임야입니다.

김 씨와 정 씨가 주인을 가리는 민사소송을 벌였습니다.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김 씨가 정 씨에게 써 준 각서가 결정적 핵심 증거로 떠올랐습니다.

땅 안에 있는 묘지를 이장하겠단 각서입니다.

국과수 감정까지 받아 법원에 제출됐습니다.

소송 3년 만에 법원은 김 씨의 각서가 위조됐다고 판결했습니다.

땅 주인은 정 씨로 확정됐습니다.

재판에서 진 김 씨는 억울하다고 반발했습니다.

[김봉걸/민사소송 패소 : 절대로 아니죠.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그런데 동일한 시기에 형사 소송이 동시에 진행됐습니다.

민사에서 진 김 씨가 정 씨를 무고죄로 형사 고소한 겁니다.

여기서도 김 씨가 정 씨에게 써준 각서가 핵심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형사소송에선 이 동일한 각서를 놓고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법원이 각서를 진본이라고 판결한 겁니다.

국과수 감정 결과가 바뀐 것도 아닌데, 동일한 각서를 놓고 민사 재판부는 가짜라고, 형사 재판부는 진짜라고 판결한 결과입니다.

더구나 민사와 형사 합의 재판부에는 동일한 판사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 판사는 민사소송에선 각서를 위조본으로, 형사소송에선 진본이라고 스스로 모순된 판결을 내렸습니다.

민사에서 이겨 땅 주인으로 확정됐던 정 씨는 형사에서 져서 전과자가 됐습니다.

[김형기/형사소송 패소(정 씨 가족) : 저희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는 거죠. 어떻게 그런 판결을 내렸는지.]

소송은 대법원까지 모두 끝났지만 진실은 끝내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일한 증거에 대한 오락가락 판결 때문에 소송 당사자들의 불신만 커졌습니다.




대법원은 위 기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민사 재판부는 방송에서 거론된 각서(을9호)가 위조됐다고 판결한 바 없습니다. 민사 재판부는 해당 각서를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하기 어렵다는 뜻에서, "진정성립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진정성립 인정이 곤란한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으므로, 이를 이유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것이 곧 '위조되었다'고 판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사 판결문을 보면, "피고가 정OO에게 각서(갑8호)를 작성해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정△△으로부터 (방송된) 을9호 각서를 교부받았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돼 있습니다. 즉 을9호가 갑8호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받은 각서가 아니므로, 갑8호의 해석에 관한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위 두 각서의 일체성 여부가 문제될 뿐, 각서의 위조 여부는 실질적 판단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재판부가 설령 진정성립이 인정된다 해도 정△△ 명의로 된 을9호 각서만으로는 원고들이 위 각서의 내용에 따른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편 형사 재판부는 각서가 진본이라는 국과수 감정 결과를 받아들여, 각서가 위조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정 모 씨에 대한 무고죄를 확정했습니다. 정씨는 앞서 소송 상대방이 각서를 위조했다는 이유로 고소한 바 있습니다. 대법원은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이 각서에 대해 판단한 취지가 이렇게 서로 다르므로, 모순된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민사와 형사 합의부에 동일한 판사가 배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전심관여금지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므로, 해당 사건은 재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소송 당사자가 판결에 불복해 상소할 경우, 같은 판사가 같은 사건을 다시 재판하면 안 되는데 이를 전심관여금지규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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