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조선 왕조와 대한민국의 얼굴인 광화문은, 6백년이 넘게 숱한 고난의 세월을 견디면서, 우리 역사의 아픔과 영광을 함께 했습니다.
광화문의 615년, 영욕의 역사를 하대석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기자>
조선왕조 경복궁의 정문으로 태조 4년인 1395년 건립된 광화문.
최초 이름은 정문이었으나, 세종 7년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의 '광화문'으로 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그 뒤 조선의 얼굴, 광화문은 우리 질곡의 역사와 아픔을 함께 해야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광화문은 270여 년 만인 1865년, 흥선대원군이 벌인 경복궁 재건사업의 일환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김봉건/문화재청 문화재위원 : 조선 후기의 문루건축의 대표적인 그런 양식을 가지고 있고, 굉장히 뛰어난 미술사적인 정수가 모여있는 그런 건축물이 되겠습니다.]
광화문의 수난은 일제 시대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정기를 꺾기 위해 일제가 경복궁 앞에 조선 총독부를 지으면서 광화문을 통째로 동쪽 건춘문 옆으로 옮긴 겁니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는 목조로 된 문루 부분이 소실되고 맙니다.
이후 광화문은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다시 정문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소실된 문루 전체가 콘크리트 구조물로 복원된데다,
이후 광화문 앞은 줄곧 권력의 변천과 민주화, 서민들의 애환을 웅변하는 우리 근현대사의 표상이었습니다.
[강홍빈/서울역사박물관장 : 광화문 거리의 아래에는 우리 근현대사 굴곡진 역사가 다 들어가있는 거에요. 살짝 그 뒤로 가면은 일상생활이 펼쳐지는 또 그런 서민의 자리이기도 했어요.]
광화문의 6백 15년 영욕의 역사는 영국 찰스 왕세자 재단에 의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고 있을 만큼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워드 레이드/영국 다큐멘터리 감독 : 광화문은 한민족의 힘과 굴하지 않는 정신,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함축하고 있는 실체입니다.]그리고 오늘(15일), 광화문은 한세기 반
만에 1865년 중건 당시 제자리에 온전히 복원돼 또 다른 역사를 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영상취재 : 이원식, 영상편집 : 남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