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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신한 대령, "호국영령 가족품으로"

<8뉴스>

<앵커>

앞에서 59년 만에 가족에게 돌아간 국군 장병 유해 소식을 보셨는데요. 하지만 6.25 때 전사한 국군 장병 가운데 유해가 발견된 경우는 겨우 2%에 불과합니다. 오늘(6일) 주말 인터뷰에서는 국방부 유해발굴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박신한 대령을 만났습니다.

이주형 기자입니다.

<기자>

나랏일 중 으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유가족 품에 되돌려주는 일입니다.

[박신한 대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단장 : 국민의 자식을 빌린 것 아닙니까. 그러면 원상복귀로 되돌려준다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 대령은 지난 2000년 육군본부 재직 시절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에 몸담았습니다.

재작년에는 국방부가 유해발굴감식단을 창설하면서 단장을 맡았습니다.

[박신한 대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단장 : 그 전에는 제대로 된 발굴이 거의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지금도 전사자의 많은 수가 전사 일자를 모르는, 상징적으로 6월 25일로 기록된 사람도 적지 않고, 전사 위치도 막연하게 중부지방.]

국군 전사자 13만여 명 가운데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는 고작 2% 남짓.

6.25 당시는 모든 것이 낙후한 시절이라 기록보다는 그저 생존이 먼저였습니다.

[박신한 대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단장 : 국군 전사자 2,800여 구를 발굴했는데 인식표가 있는 유해가 7구 내외입니다. 초기전에서는 인식표를 만들어줄 여력이 없었어요. 국가가.]

10년 가까이 유해발굴사업을 하면서 가슴 찡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박신한 대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단장 : 학도병 집단 유해를 발굴한 적이 있었어요. M1 소총의 클립에 들어간 탄알, 10발들이 8발들이 가슴에 띠가 둘러져 있었어요. 총 한 발도 쏘지 못한 채 전사한 걸 봤었어요. 16~17세 어린 나이. 한창 공부를 해야 될 나이.]

발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온 유품은 탄피, 그 다음은.

[박신한 대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단장 : 군복 우측이나 좌측 상의에 넣고 다니는 숟가락, 일반인들이 쓰는 숟가락을 잘랐거나 구부려서 넣고 다니는 군용 숟가락이 있었지만 제대로 보급이 없었죠.]

박 대령은 가끔 현충원에 있는 위패 봉안관을 찾습니다.

그리운 부모 형제, 아내와 자식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 어딘가 묻혀있을 10만 명이 넘는 전사자들이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곳입니다.

[박신한 대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단장 : 마지막 한 분이 될 때까지 지워나가는 것이 저희들의 목표인데. 그 시기는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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