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서방의 러시아 관측통들이 일제히 했던 말이다. 푸틴은 그동안 교활하고 냉철한 체스 선수처럼 국제 관계를 다루어 왔는데, 이런 무모한 전쟁을 실제로 일으킨 건 예상 밖이었다는 얘기다.
푸틴을 규탄하는 세계 각지의 시위에는 '푸틀러'라고 비난하는 이미지도 많이 등장했다. 과대망상적 역사관에 사로잡혀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히틀러에 빗댄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블라디미르 푸틴'을 합쳐 '블라돌프 푸틀러'라 부르기도 한다.

"똑바로 말해!!"…호통을 TV로 방영하는 최고권력자
러시아 군대와 정보당국에도 전문가 엘리트들이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전쟁이 무모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푸틴을 말리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아래 사진을 보자.

나르쉬킨: ….서방의 파트너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수 있을 겁니다. 키이우를 압박해서 타협안을 받아들이도록….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가 오늘 논의하는 결정을 해야 할 겁니다.
푸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최악의 경우'라니, 무슨 소리야? 지금 협상이라도 시작하자는건가?
나르쉬킨: (당황해서) 아니요, 저…저는….
푸틴: 말해, 말해! 분명하게 말하라고!
나르쉬킨: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자는 제안을 지지하겠습니다.
푸틴: '지지하겠습니다'야, '지지하고 있습니다'야? 똑바로 말해!
나르쉬킨: (바짝 얼어서 눈치를 보며)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크렘린에서 영상으로도 공개했다. 캡처한 뒤 연속장면으로 엮어 보았다.

영상을 보면, 푸틴은 나르쉬킨에 대해 불쾌감, 경멸 등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파워엘리트 최상층부 인사인 나르쉬킨은 마치 답이 틀리면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 학생처럼 안절부절한다. 북한에서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이후 김정은이 군과 당의 간부들을 모아놓고 회의하는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다.
고위인사를 이렇게 쥐잡듯 하는 영상을 그대로 공개한다는 것도 최고권력자와 참모들과의 관계의 성격을 보여준다. 푸틴의 러시아에서 이런 식의 권력행사 이미지 공개는 꽤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9년 6월의 피칼료보 사건이다. 푸틴은 당시 측근인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앉혀놓고 총리로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인구 2만의 작은 도시 피칼료보를 전격 방문했다. 그 마을에는 총 자산 35조원이 넘는 재벌이 운영하는 시멘트-알루미늄 공장이 있었다. 경제난을 이유로 공장이 문을 닫고 3개월치 임금을 체불해 주민들이 생활고를 겪다 시위에 나섰다. 푸틴이 사태를 해결하겠다며 직접 현장에 출동한 것이다. 대책회의에는 문제의 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가 불려와 있었고, TV카메라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장면이 전국에 방영됐고, 푸틴은 경제난에 시달리던 서민들의 영웅이 됐다. 실제로 그 재벌이 한 짓은 바퀴벌레같다는 욕설을 들어도 싸다고 할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법과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나라에선 이런 악덕기업주는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져 법정에서 처벌받고 필요한 배상을 한다. 러시아에서는 회의를 사전에 준비하고 문제의 재벌을 불러다 대령시켜놓고, 합의각서도 미리 준비해 놓고, 국영 TV의 카메라도 준비시켜놓고, 호통치는 푸틴의 모습을 연출했다. 정의를 구현하는 차르(황제)의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주어 백성들이 차르를 칭송하게 한 것이다.
그때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 푸틴의 권력은 더욱 강해졌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전쟁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직언이 가능한 사람이 남아있기 어려운 구조다.
유형의 거리로 표현된 무형의 권력, 그리고 코로나19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런 모습은 코로나19에 대한 푸틴의 과민증 때문에 더 심해졌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푸틴을 만날 사람은 호텔에서 2주간 격리를 한 뒤 소독제가 분사되는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즈는 미국 정보 당국자들을 인용해, 코로나19를 극도로 조심하는 푸틴이 지난 2년간 각료 또는 참모들과 대부분 화상회의 또는 전화통화를 했다고 보도했다.
물리적 거리는 소통의 질에 영향을 준다.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속닥거릴 수 있도록 가까이 붙어앉으면 보다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하다. 멀리 떨어지면 내밀하고 솔직한 소통도 어려워진다. 20년 넘게 국가원수 자리에 군림하는 푸틴에게, 참모들이 반대의견을 내고 생산적인 토론을 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푸틴이 KGB에서 성장하면서 편집증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고, 뉴욕타임즈는 전했다. 온갖 공작과 권력 암투를 때로는 실행하고 때로는 지켜보며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대면접촉의 부재와 고립생활의 장기화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미국 정보당국자들은 푸틴이 자충수를 뒀을 때 그의 편집증적 성향이 더욱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나 핵위협 등을 지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 전망은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런데, 푸틴이 사람들을 만난 최근의 사진 중 의외의 모습이 있다.
푸틴은 '자애로운' 마초?

푸틴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범접할 수 없는 절대권력자' 이면서 동시에 '자애로운 마초'이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푸틴은 강한 남성성 -그것이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보일지라도-을 자랑하는 걸 좋아한다. 푸틴은 1952년생인데, 웃통을 벗고 나이에 비해 근육질인 상체를 드러낸 채 스포츠를 즐기거나 말을 타는 등의 모습을 자주 홍보한다.

배신감에 몸을 떠는 마초의 잔혹성
알자지라 영문판의 정치분석가 마르완 비샤라는 최근 푸틴의 마초 심리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분석하는 칼럼을 썼다. 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푸틴의 방송연설에서는 분노와 씁쓸함, 강한 '배신감'이 날것으로 표출됐다. 자꾸 서방에 다가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실망과 질투를 넘어, 배신만은 용서 못하겠다는 심리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돈도 주고 땅도 줘서 만들어준 나라가 우크라이나인데, 너희들이 러시아의 적의 품에 안기겠다고?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누구의 것도 될 수 없어!' 이것이 그의 눈에 비친 푸틴의 속내다.

국제문제를 다루는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피터 딕슨은, 푸틴의 야망은 이념을 공유하는 연방으로서의 소련 재건이 아니라 국수주의적인 '러시아 제국'의 재건이며, 그 과정에서 제노사이드(특정 인종이나 민족의 말살)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 역시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갖는 '배신감'에 주목한다. 러시아 제국의 품을 떠나 서유럽-대서양세력에게 안기려고 수년째 몸부림치는 데 대해 푸틴이 느끼는 분노는 일종의 배신감이라는 것이다.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에서 푸틴이 배운 것


이 과정에서 푸틴은 민주화 혁명의 연쇄고리를 러시아의 무력개입으로 끊을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서방세계는 자신의 시도를 진지하게 무력으로 저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킴 가타스는 분석한다. 푸틴이 진정으로 '간이 커진' 것은 시리아를 통해서였으며,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디까지 밀어붙일지도 시리아에서 푸틴이 벌인 전쟁범죄들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히틀러와 푸틴…피해망상적 국수주의의 폭력
푸틴은 서유럽-대서양 세력에 맞서 유라시아 대륙의 힘을 끌어모아 웅대한 루스족의 제국을 재건하자는 사상에 물들어 있다. 그에게 미국과 나토는 소련의 붕괴라는 치욕을 안겨주었던 궁극의 적이고, 러시아는 피해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서유럽-대서양 세력을 유럽대륙에서 말살할 수는 없고, 대신 러시아의 앞마당은 청소하여 완충지대로 두겠다는 것이 푸틴의 지정학적 사고다.

전쟁상대국의 인명피해는 물론, 자국 병사들의 목숨 또한 아깝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히틀러는 겨울 소련으로 쳐들어갔다가 얼어죽고 굶어죽고 소련군 반격에 당하는 장병들에게 퇴각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 후퇴해서 재정비 후 다시 진격해야 한다는 군 간부들에게 정신이 썩었다고 호통쳤고, '현 위치 사수'를 광적으로 고집했다. 그 결과 독일군은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졌다.
2022년의 러시아군은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우크라이나에 보내졌다. 훈련 가는 줄 알고 차량에 탔다가 우크라이나에 내려진 앳된 징집병들은 배가 고파 탈영을 한다. 진흙밭에 빠진 탱크를 버려두고 도망치거나 저항군의 휴대용 미사일에 맞아 목숨을 잃는 러시아 병사도 부지기수다. 푸틴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가 먼저 두 손 드는지 보자며 인원과 장비를 갈아넣는 중이다. 침공 대상보다 숫적으로 우위에 있으며 강력한 연합군과 맞서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푸틴의 처지는 히틀러와 다르다.

히틀러는 미국의 참전과 소련군의 반격으로 결국 저지되었다. 독일군 내에서 암살이 여러차례 시도되기도 했지만, 결국 히틀러는 소련군이 코앞까지 진격해오자 1945년 4월30일 베를린의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푸틴의 경우는 히틀러와 달리, 그의 군대를 패퇴시키며 본진을 밀고 들어오는 강한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가 그토록 원하는 전투기 제공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에겐 미안하지만, 전쟁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대할 것은 러시아 내부에서 푸틴 제거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일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푸틴, 어떤 종말을 맞을까.
흥미롭게도, 푸틴 자신이 이 문제에 관해 미국 미디어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 2017년 미국 CBS 방송이 자신에 대해 방영한 다큐멘터리에 인터뷰를 했는데, 암살 위협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 것이다.

질문자: 다섯 번의 암살 위기를 넘겼다면서요? 그런데 쿠바의 카스트로보다는 적군요. 그는 50번이라던데.
푸틴: 아, 카스트로와 회담할 때 그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가 묻더군요. "내가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줄 아시오?" 어떻게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내 자신의 안전 문제는 내가 직접 챙기기 때문이지."
나도 내가 할 일을 하고, 경호실은 그들의 할 일을 합니다. 여전히 일을 꽤 잘 하더군요. (그러니까 자신이 살아있다는 뜻)
푸틴: 러시아엔 이런 말이 있다는 거 압니까? '교수형을 당할 자는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
질문자: 아…허허… 당신이 어떤 운명을 맞을 지 알고 있나요?
푸틴: 신만이 우리의 운명을 알겠죠. 당신이나 나나.
질문자: ....저는 그냥 침대에서 조용히 죽고 싶은데요.
푸틴: 죽음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문제는, 이 덧없는 세상에 살면서 그때까지 무엇을 이루느냐,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누리고 가느냐겠죠.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고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푸틴은 '교수형을 당할 자'의 운명일까, '물에 빠져 죽을 자'의 운명일까. 답은 신만이 알고 있고, 그가 죽기전에 이루려는 것을 저지할 세력이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아 보인다.
(구성: 이현식 선임기자/D콘텐츠 제작위원, 콘텐츠디자인: 옥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