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30일 방송된 '잊혀진 사람들 - 태풍 루사'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김정민과 산다라박, 배우 박정화가 출연했습니다. (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태풍 속 결혼
때는 2002년 9월 1일 일요일. 26살 박나영 씨에게 이 날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날이야. 바로 나영 씨의 결혼식 날이야.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난 나영 씨와 예비신랑은 금세 서로에게 푹 빠져버렸어. 그리고 어느 날 놀러 간 바다에서 예비신랑이 나영 씨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나영 씨는 받아들였어. 그렇게 둘은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어.
모든 신부가 그렇듯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 흔히 말하는 '스.드.메'부터 결혼식장, 그리고 결혼식 날짜까지 아주 신중하게 골랐어. 그렇게 정한 날짜가 2002년 9월 1일이었어. 그날은 정말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을 만큼 날씨가 화창했어. 이른 아침 식장에 온 나영 씨는 예쁘게 신부 화장을 하고 꿈에 그리던 웨딩드레스를 입었어.
그런데 나영 씨의 표정이 좀 이상해. 어딘지 모르게 좀 초조해 보이고 왠지 모르게 좀 불안해 보여. 누군가를 기다리듯 식장 입구만 계속 쳐다보고 있어.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아. 결혼식 당일날 예비 신랑이 갑자기 사라진 거야. 지금 결혼식까지 겨우 한 시간 남았어. 어느새 나영 씨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자, 결혼식 하루 전날인 2002년 8월 31일로 돌아가 볼게. 그날 나영 씨는 예비 신랑과 함께 시댁에 가기로 했어. 식구들이 다 모여서 잔치를 열기로 했거든. 나영 씨의 시댁은 경상북도 김천이야. 출발 직전에 나영 씨가 시댁에 전화를 걸었어. 전화를 받은 건 예비 신랑의 형님, 그러니까 아주버님이었어.
"아주버님, 저희 지금 가려고요"
"제수씨, 안 돼! 여기 절대 오지 마!"
그러더니 전화가 뚝 끊겨버린 거야.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나영 씨, 불안한 마음에 TV를 켜봤어.
"태풍 루사가 오늘 오후 남해안에 상륙하면서 우리나라 전체가 태풍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섰습니다."
"높은 파도에 강풍으로 방파제 위로 넘쳐난 바닷물이 도로 위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강풍의 높이 2m, 길이 10여m의 담장이 붕괴되고 그 옆의 승용차 6개도 파손됐습니다."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했어. 그날 전국에는 엄청난 강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졌어. 그리고 나영 씨의 시댁도 태풍 때문에 난리가 났던 거야.
"산사태가 나고 침수가 된 지역에 시부모님이 계시고. 걱정이 되니까 연락은 안 되고 상황을 알 수는 없고. 그때부터 계속 재난대책본부 전화하고 파출소 전화하고 동네 어르신들 집에 전화하고. 전화를 못 잡고 진짜 수십 통, 수백 통을 했어요. 하나도 통화가 안 되는 거야. 그 어떤 곳도."
-박나영
나영 씨와 예비신랑은 시댁 식구 걱정에 뜬 눈으로 밤을 새웠어. 결국 예비신랑이 나영 씨에게 이렇게 말을 했어.
"안 되겠다. 내가 가서 부모님 모셔올 테니까 너 먼저 식장에 가 있어."
결혼식 직전 예비신랑은 시댁으로 향했고 나영 씨 혼자 결혼식장에 가게 됐던 거지. 그렇게 화장까지 다 마쳤는데 예비신랑마저 연락이 두절된 거야. 메이크업하는 사람이 나영 씨에게 "신부님 제발 그만 좀 우세요. 지금 화장을 몇 번째 고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해.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벌써 화장을 스무 번 가까이 고쳤어.
"결혼식장에서는 '신랑님이 결혼식 시작하기 10분 전까지 도착을 안 하시면 결혼식을 진행을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얘기하니까 '아 이걸 못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박나영
어느덧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 단 30분이야. 식을 취소해야 하나, 하던 그 순간!
"나영아, 나영아! 정말 미안해! 나 왔어!"
예비신랑 목소리야. 그런데 예비신랑의 모습을 본 나영 씨가 깜짝 놀라. 머리는 다 헝클어져 있고 옷은 다 젖어있는 거야.
"근데 그 지역들 다리가 그 교량만 남겨놓고 주변이 다 떠내려가거나 교량 전체가 떠내려가거나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였었거든요. 아예 김천 진입을 못하게 하니까. 들어가는 입구부터 다 침수가 돼가지고. 그냥 차를 세워놓고 걸어갔었대요. 갈 수 있는 데까지를. 그러니까 세워놓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다고 자기가 걸어갔었다 하더라고요. 근데 얼마 못 가고 되돌아오긴 했대요. 옷도 다 젖었고. 아주 폐인 돼서 왔더라고요."
-박나영
아예 진입조차 못하고 돌아온거야. 다행히 극적으로 예비 신랑이 도착해 결혼식을 올릴 준비를 했어. 그런데 아직 시부모님이 오지 못했어. 게다가 지금 생사도 모르잖아. 어쩌면 결혼식 날이 시댁 식구들의 장례식 날이 될 수도 있는 거야.
그렇게 결혼식이 마무리되고 신랑 신부가 퇴장하던 그 순간. 나영 씨가 비명을 지르며 버진 로드에 그대로 넘어졌어. 일어나서 보니까 시부모님과 아주버님이 쫄딱 젖은 채 버진 로드 끝에 서 있는 거야.
"귀신 본 줄 알았어요. 저는 정말로. 그래서 드레스 자락을 다 밟고 넘어졌어요. 너무 놀라서. 생사를 몰랐잖아요. 그때까지는. 그러니까 계시니까 막 울고 넘어져서 울고 불고 난리가 났죠."
-박나영
어떻게든 그 결혼식에 참석을 하시겠다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시면서 산비탈을 오르고 개울을 건너서 오셨다고 해. 무려 4시간이 넘게 말이야. 그야말로 목숨을 건 여정이었던 거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찍은 결혼식 사진이야.
원래 하객이 300명 가까이 오기로 했지만 이날 온 하객은 단 30명이었어. 생애 단 한 번뿐인 결혼식 날이 평생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의 날이 됐다고 해. 결혼한 지 24년이 지났잖아. 그동안 이 결혼식 사진을 단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대. 그리고 결혼기념일도 챙긴 적이 없대.
누구보다 가장 행복해야 할 그날을 눈물의 결혼식으로 만들었던 비바람의 정체, 태풍 루사. 혹시 태풍 루사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어? 2002년 8월 31일 엄청난 비바람을 몰고 대한민국에 상륙한 태풍 루사는 전무후무한 기록들을 남겼어. 전국에 실종자 8명, 사망자 238명으로, 21세기에 발생한 태풍 중에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태풍이야. 그리고 재산 피해액은 5조 1479억 원. 역대 태풍 재산 피해액 중 1위를 차지했어.
오늘은 그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했던 바로 그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거야.
▲ 수마에 삼켜진 강릉시
2002년 8월 30일 밤. 이 엄청난 위력의 태풍 루사는 우리나라 제주 해상으로 접근해.
"제15호 태풍 루사가 빠른 속도로 북상하면서 제주 지역에는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기상청은 오늘 밤과 내일 오전 사이가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태풍 루사 반경이 최대 500km거든.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는 약 320km래. 그러니까 지금 이 반경 500km라는 건, 우리나라를 전부 덮고도 남을 대형 태풍인 거야. 그 말은 전국이 태풍의 영향권이 된다는 거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루사의 공격을 직격탄으로 맞은 곳이 있었어. 강원도 강릉시야.
그날 밤 강릉에 살던 20살 김진호 씨는 뉴스로 태풍 소식을 들었어. 그때만 해도 진호 씨는 사실 별일 없겠지 싶었대. 그전에도 강릉에 몇 번의 태풍이 불었지만 큰일 없이 지나갔거든. 그런데 그날따라 왠지 기분이 이상했던 진호 씨는 잠들기 전 이걸 꺼내 들었어.
무전기. 진호 씨는 아마추어 무선기사였어. 무선기사들은 자연재해 혹은 비상사태로 통신이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무전으로 통신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거야. 그날 밤 진호 씨는 이 무전기를 켜놓고 자기로 했어. 태풍이 불 때 혹시라도 통신이 필요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
"그날은 켜고 잤어요. 늦은 밤에는 끄고 자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혹시나 문제가 되면 통신이 또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집에 있는 무전기 건전지들을 좀 찾아서 충전을 시켜놨었던 기억이 나요."
-김진호, 당시 강릉시 거주 아마추어 무선 기사
그리고 다음 날인 2002년 8월 31일 아침.
"메이데이, 메이데이! 현재 수신되는 분 계십니까?"
갑자기 울리는 무전 소리에 진호 씨가 잠에서 깨. '메이데이' 조난자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거야. 아주 다급한 상황이라는 거지.
"현재 신호 수신되고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오버."
"아, 예. 지금 강물이 범람해서 차들이 고립됐습니다. 물이 턱까지 차올랐어요. 빨리 신고 부탁드립니다."
이 무전기 속에 대화를 들은 진호 씨.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 시각 강릉의 대동마을에 사는 42살 연규태 씨는 가족과 집에 있었어. 그의 가족이야.
6년 전 규태 씨는 지인이 소개해 준 아내 박경숙 씨와 결혼했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 첫째 딸 7살 은미와 둘째 딸 4살 은희까지. 보기만 해도 그냥 웃음이 나는 화목한 가정이야. 아내와 막내 은희는 몸이 조금 불편했지만, 네 식구는 서로를 의지하며 오순도순 함께 살고 있었어.
그날 아침 규태 씨의 가족들은 다 같이 거실에 모여 있었어. 8월 31일 그날이 막내 은희의 네 번째 생일이었어. 규태 씨는 은희의 생일을 기념해서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어. 바로 가족 여행. 은희가 며칠 전부터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거든.
온 가족이 설레는 마음으로 바다에 갈 채비를 하던 그때! 갑자기 집 안으로 물이 막 들어오더니, 발 밑으로 차 오르기 시작하는 거야. 규태 씨가 무슨 일인가 싶어 급히 밖으로 나갔어. 그리고 그의 눈엔 이런 광경이 펼쳐져.
강릉시 전체가 물바다야. 거리엔 버려진 차들이 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어. 허리까지 불어난 물에 사람들은 겨우 몸을 움직여.
"태풍 온다고 했는데 그렇게 크게 올 줄 몰랐죠. 와봐야 조금 오고 말겠지 이랬는데, 갑자기 내려서 비가 그리 오기는 처음이라고. 갑자기 쏟아지는 건 그때 처음이라고."
-염규태, 당시 강릉 대동 마을 주민
깜짝 놀란 규태 씨는 가족들에게 소리쳤어.
"다 나오라고 그랬죠. 물이 찼으니까. 일단 대피를 하고 봐야 되니까 다 나오라 그랬죠. 건너마을에는 조금 지대가 높으니까 가려고 했어요."
-염규태, 당시 강릉 대동 마을 주민
일단 규태 씨가 가족을 차에 태워서 고지대 쪽으로 대피하기 시작해. 아까 강릉이 루사의 공격을 직격탄으로 맞았다고 했잖아. 그 이유를 알려줄게.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우리나라 장마철의 평균 강수량 약 356.7mm라고 해. 사람 종아리까지 올 정도야. 그런데 이날 강릉에 하루 동안 쏟아진 비는 870.5mm야. 이건 사람 허리까지 차오르는 양이야. 이 기록은 우리나라 일일 강수량 1위였다고 해. 우리나라에서 기상관측을 처음 시작한 게 1904년이었대. 그러니까 올해 기준으로 122년 동안 역대 최고 일일 강수량인 거야. 그러면 왜 유독 강릉에만 비가 많이 온 걸까?
보통 태풍은 편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세력이 약해져. 그런데 그해엔 이례적으로 우리나라 동쪽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장벽을 이루고 있었어. 이 태풍이 이 장벽에 막혀버린 거지. 그래서 루사는 완전히 빠져나가기까지 무려 22시간이 걸린 거야.
이때 루사 때문에 강릉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게 돼. 그런데 이 따뜻한 공기가 태백산맥에 부딪혀. 이 따뜻한 공기가 태백산맥을 타고 올라가면서 위에 있는 찬 공기랑 만나는 거야. 그럼 어떻게 된다? 엄청난 수증기, 곧 거대한 비구름이 만들어지는 거야. 그리고 이 태백산맥 아래에 바로 강릉시가 있었어.
그래서 강릉에 폭발적인 비가 쏟아졌던 거지. 이날 쏟아지는 비에 강릉 곳곳이 침수되고 있었어.
산사태가 일어나고 도로가 무너져 내리기까지 했어. 강릉시 전체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 거야.
그 시각. 아침부터 또 쉬지 않고 전화가 울리는 이곳. 바로 강릉 소방서야. 얼마나 많은 신고 전화가 왔는지 이거 다 받지도 못할 정도였대. 당시 경력 7년에 열정 가득했던 권영각 소방대원도 현장으로 나갔어. 그가 향한 곳은 장현마을이라는 곳이야. 거센 비를 뚫고 마침내 권영각 대원이 현장에 도착해. 그런데 마을 입구에 들어선 순간 권 대원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대.
"현장 상황을 보니까 주택지가 거의 수몰이 돼있는 상황이었어요. 계속 물 수량은 많아지고 물살도 세지는데 주택을 찾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진입할 당시는 저희 한 배 이상 정도 허리춤 이상의 물이 있었는데 저희가 진입하는 과정에 잠깐 넘어지면 그냥 쓸려서 내려가는 정도. 내리는 비에 눈이 따가워서 시야가 확보가 안 될 지경이었어요. 구조 현장에서 눈으로 물체도 보고 해야 되는데 고개를 못 듭니다. 따가워서. 비가 그 정도로 많이 왔습니다."
-권영각, 당시 현장 출동 소방대원
쏟아지는 폭우가 순식간에 장현마을을 통째로 집어삼킨 거야. 그 안에서 권영각 대원이 목숨을 걸고 구조작업을 벌이기 시작해. 그리고 곧바로 시청엔 비상대책본부가 세워져. 그런데 그때.
"비상사태입니다. 지금 오봉댐 수문이 안 열린답니다."
오봉댐. 강릉에 홍수가 나면 저지대의 피해를 막는 역할을 하는 곳이야. 그런데 이 오봉댐의 수문이 안 열린다는 거야. 쏟아지는 비 때문에 강릉 일대가 정전이 됐거든. 이 오봉댐은 강릉 시민들의 식수를 제공하는 댐이야. 무려 물 1,400만 톤을 저장하고 있어.
오봉댐의 만수위는 121m야. 지금 수위가 118.5m야. 그러면 만수위까지 고작 2.5m 남은 거야. 여의도 면적을 1m 깊이로 채우는데 약 290만 톤이 필요하대. 그런데 이 오봉 저수지의 용량이 1,400만 톤이야. 1,400만 톤이면 여의도 전체 면적의 5배가 차는 양이야. 이런 양의 물이 쏟아진다고 생각해 봐.
"오봉댐이 범람해서 터졌다 그러면 강릉시 전체가 없어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문을 열 수밖에 없죠. 수문이 지금 작동이 안 된다고 해서, 그러면 '다이너마이트로 밑을 터뜨려라' 그렇게 해서라도 물을 빼라 할 정도였어요."
-김오경, 당시 강릉 부시장
이 오봉댐이 터지면 강릉시 전체가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그러니까 지금 강릉시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는 거야.
▲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강릉시
그 시각 아마추어 무선기사 진호 씨는 강릉 시내로 가고 있었어. 아까 강릉 일대가 정전이 됐다고 했잖아. TV나 라디오가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전화까지 안 터지는 상태야. 그래서 진호 씨가 무선기사로서 도움이 될 게 없을까 직접 나선 거야. 시내에 도착해 보니까 이건 뭐 그냥 전쟁터나 마찬가지였어.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게 '저거 차 지붕 아니야?' 였어요. 나무가 이렇게 있으면 차가 쓸려 내려와서 거기 부딪혀 있고, 차 지붕만 물에 찰랑찰랑 보일락 말락 할 정도. 그 차 위에 한 대가 더 엎어져 있는 상황. 그러니까 두 대가 포개져 있는 거죠. 우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김진호, 당시 강릉시 거주 아마추어 무선 기사
진호 씨는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헤쳐가면서 수재민들을 돕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때. 웬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안내 방송이 들려왔어. 그런데 시내가 난리통이라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 진호 씨는 무전기로 상황을 물었어.
"여기는 강릉 시내, 강릉 시내입니다. 방금 사이렌이 울렸는데 무슨 일입니까?"
"여기는 강릉시청 상황실. 지금 오봉댐이 붕괴될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대피하십시오."
그 순간 진호 씨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 그리고는 소리쳤어. "여러분 지금 대피해야 합니다! 다들 고지대로 올라가세요!"라고.
"정말 바로 뒤돌아서 전력 질주를 하면서 뛰는데. 물이 이만큼 오니까 뛰어지질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나와 계신 분들한테 '대피하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었던 기억이 나요. 정말 그때 당시는 진짜. 다시는 겪어보고 싶지 않은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무서웠어요."
-김진호, 당시 강릉시 거주 아마추어 무선 기사
그리고 진호 씨는 사람들과 함께 전력을 다해 대피하기 시작했어. 규태 씨 역시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고지대로 대피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저쪽에서 도랑이 터지면서 물이 쓸려가는 바람에 차가 갑자기 팍 밀렸거든요. 갑자기 물이 확 불으니까. 차가 뜨면서 좀 이따 보니까 컨테이너도 떠내려오고. 물이 허리만큼 오니까 사람 막 밀어내는 것처럼. 그냥 세게 미는 것처럼. 더군다나 제가 이 오른쪽을 못 써요. 장애가 있다 보니까 좀 힘도 부치더라고요."
-염규태, 당시 강릉 대동 마을 주민
차가 물살에 휩쓸리자 규태 씨가 차 밖으로 나가려 문을 열었어. 그런데 물살 때문에 문도 열리지가 않아. 창문을 통해 먼저 벗어난 규태 씨가 두 딸과 아내를 차 밖으로 간신히 꺼냈어. 그리고 한쪽 팔엔 두 아이를, 다른 쪽 팔엔 아내를 안은 채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해. 물은 허리춤까지 차오른 데다 물살이 너무 세서 발을 내딛기도 힘든 상황이야. 안간힘을 써서 앞으로 나가는데 아내의 손에서 힘이 점점 풀리는 게 느껴지더래.
"여보 얼마 안 남았어. 여기만 벗어나면 되니까 조금만 기운 내."
그런데 그때 규태 씨가 발을 내딛는 순간, 땅이 푹 꺼지면서 그대로 중심을 잃으면서 팔에 힘이 풀렸대. 다행히 두 딸은 규태 씨 품에 안겨 있었어. 하지만 안고 있던 아내가 보이지 않아.
"도랑과 도랑 사이에, 물이 갑자기 깊어지거든요. 물이 제 키만큼 되더라고. 그래서 훅 다 들어가니까 나도 눈을 떠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사이 애 엄마는 떠내려가는 거죠."
-염규태, 당시 강릉 대동 마을 주민
고개를 돌려보니 저 멀리 아내가 급류에 휩쓸려가고 있어. 규태 씨는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밖에 없었어.
"여보. 은미 엄마!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아내를 구할 새도 없이, 양팔에 두 딸을 다시 꼭 안고 이렇게 외쳤어.
"은미야 은희야! 아빠 꽉 잡고 있어야 돼. 절대 놓치면 안 돼."
규태 씨가 퍼붓는 비를 맞으면서 물길을 간신히 헤쳐 나오고 있었어. 정신없이 걷던 그때. 규태 씨가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둘째 딸 은미가 보이질 않아. 언제 어디서 놓친 건지도 모르겠어. 첫째 딸 은미를 꼭 안은 채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회오리 치는 물속에서 은미까지 놓치고 말아.
망연자실한 규태 씨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져 버렸어. 급기야 규태 씨도 거센 물살에 떠내려가고 말았어. 그렇게 얼마나 떠내려갔을까. 규태 씨가 정신을 차렸을 땐,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양식장이었어. 규태 씨는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아내와 두 딸의 생사는 알 수 없어. 그때부터 그는 가족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어.
그 시각, 강릉엔 비가 쏟아지다 못해 들이붓고 있었대. 강릉시청 대책본부 직원들 전부 발로 뛰면서 오봉댐 수문을 열 방법을 찾는 중이야. 그런데 그때. 댐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오더니 얼굴이 사색이 된 채 소리쳐.
"오봉댐 수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열렸잖아.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거야.
"다행히 수문이 열리고. 그런데 하루에 비가 오는 양이 875mm라면, 우리가 상상을 초월한 비예요. 이거는 물동이로 물을 이렇게 붓는 거예요. 오봉댐의 물이 차고 있는 거죠. 그러니 건설과장님이 들어와서 '최대 수위까지 1m 정도 남았습니다'"
-김오경, 당시 강릉 부시장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수문으로 빠져나가는 물보다 댐으로 밀려 들어오는 물이 훨씬 더 많은 거야. 그래서 지금 오봉댐의 수위가 119.6m나 찼어. 만수위가 1.4m밖에 안 남은 상황이야. 그때 직원 한 명이 뛰어오더니 이걸 내밀었어.
바로 대피명령서야. 살면서 시 전체 대피령, 들은 적 있어? 이건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생길 만한 상황이야. 그야말로 전례 없는 사상 초유의 사태인 거야. 지금 이 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 바로 강릉시장이야. 하지만 섣불리 사인을 하지 못해. 지금 강릉시 상황이 어떻다고 했지? 물바다가 됐잖아. 비가 엄청나게 계속 오는 데다가 물살도 너무나 세서 젊은 사람도 그냥 서 있기는 힘들어. 게다가 정전까지 돼서 시내가 온통 깜깜하단 말이야. 이 상황에서 시민 전체가 대피한다고 생각해 봐. 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직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어. 긴 시간 심사숙고하던 그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어.
"오늘 안에 태풍 지나갑니다. 기다립시다."
과연 이날 강릉시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 남편과의 마지막 통화
그 시각 30살 이윤정 씨는 32개월 된 딸과 함께 경남 삼천포에 있었어. 그때 윤정 씨가 있던 곳도 엄청난 바람이 불었지만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았대. 그런데 문제는 윤정 씨의 남편이었어.
윤정 씨의 남편. 그는 강릉 23보병사단 철벽부대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는 김영곤 대위야. 23사단 철벽부대는 복잡한 동해안의 경계를 책임지는 부대야. 게다가 이 부대는 아주 큰 일을 겪은 뒤 새로 창설된 곳이었어. 1996년 26명의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침투했던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그 뒤로 생긴 곳이기 때문에 그만큼 아주 중대한 임무를 맡는 부대인 거지.
김영곤 대위, 그런 부대의 중대장인 거야. 그는 장병들과 상관으로부터 큰 신임을 받았다고 해. 이 얘기까지 들었을 때 이분 어떤 분인 것 같아? 김 대위는 평소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할 만큼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었대. 그리고 나라에선 훌륭한 군인이자 집안에선 듬직한 남편. 그리고 또 엄청난 딸바보였어.
김영곤 대위는 8개월 전인 2002년 1월, 강릉 철벽부대로 발령이 났어. 그런데 가족이 함께 살 사택이 아직 나오질 않은 거야. 그래서 아내인 윤정 씨는 딸과 함께 고향인 경남 삼천포로 내려가서 사택이 나올 날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는 거야.
태풍이 오던 2002년 8월 31일 밤. 윤정 씨는 온통 남편 걱정뿐이야. 매일 저녁만 되면 전화를 하던 남편이었는데 오늘따라 연락이 없어. 걱정되는 마음에 잠도 못 이루던 그때, 윤정 씨의 휴대전화가 울려.
"윤정아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여기 지금 장난 아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의 전화야.
"'여기 장난이 아니다' 할 때는 밤 10시 정도 됐었던 것 같고. 여기 물이 많이 잠겨서 사병들 다 안전한 데로 피신했다, 다 피신하고 돌아가는 길이다…근데 그때 저는 강원도가 그 정도인 줄 몰랐거든요. 그때 정전이 돼서 TV를 못 봤어요. 그 전화를 받고 그래도 제가 엎드려서 기도를 했던 것 같아요. 별일 없게 해 달라고."
-이윤정, 김영곤 대위 아내
김대위는 사병들을 전부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돌아가고 있다는 거야. 그 얘기를 들은 윤정 씨는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어.
윤정 씨가 남편과 전화를 끊은 그 무렵, 오봉댐 수위는 어느새 120.2m까지 차올랐어. 오봉댐의 만수위가 121m잖아. 범람까지 고작 80cm 남은 거야. 0.8m. 그러니까 대책본부에는 숨 막히는 침묵만이 흐르고 있어. 그때 댐 담당자가 거친 숨을 내쉬며 들어와.
"시장님! 오봉댐의 수위가 내려가고 있습니다. 비가 멈추고 있다고요."
창밖을 보니까 비가 점점 잦아들고 있어. 이대로라면 금세 물이 빠질 거야. 그때가 밤 12시를 넘긴 시각이야.
"이제 살아났다. 강릉시가 이거 하느님이 보우했다. '비가 줄고 오봉댐 수위가 좀 내려가고 있습니다.' 강릉시의 경우는 비가 딱 그치면 물이 금방 바다로 쭉 빠집니다."
-김오경, 당시 강릉 부시장
무려 22시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었던 루사는 전라남도 고흥을 시작으로 전북 남원, 무주, 경북 상주, 충북 제천을 거쳐 동해 앞바다 부근에서 소멸했어.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아침인 2002년 9월 1일. 강릉의 하늘은 거짓말같이 맑았어. 하지만 하늘 아래 상황은 180도 달랐어.
빗물이 빠져나간 강릉 일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쑥대밭이 됐어. 콘크리트, 아스팔트도 다 갈라지고. 침수된 차나 가구들이 도로 곳곳에 처박혀 있고, 집이고 뭐고 전부 쓸려가서 폐허가 됐어.
"제가 시내를 나가서 다니면서 본 풍경은 모든 게 진흙 펄밭이었어요. 완전히 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 하얗게 펄이 묻어있었고. 집에서 꺼낸 어떤 집기류들, 가구들 하나도 쓸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로. 그 정도로 많은 물이 밀고 들어오면서 그 흙을 몰고 왔으니까. 거의 뭐 도로가 펄밭 그 자체였죠."
-김진호, 당시 강릉시 거주 아마추어 무선 기사
"할아버지는 밖으로 밀려 나가서, 저쪽 바깥에 감나무 밑에 목이 걸려서. 그래도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이 꺼내셨거든요. 근데 할머니는 여기 그냥 묻혀서 119 구조대도 못 오고 사람들이 와서 굴착기 한 대 끌고 와서 시신 찾았어요."
-동네 주민
이날 강릉에서 집과 재산을 잃은 수재민만 2만 3천여 명이었대. 그리고 전날 새벽까지 구조작업을 했던 권영각 소방대원은 아침부터 펄밭이 된 강릉 일대에서 여전히 수색작업을 하고 있어. 실종자를 찾는 거야. 이날 강릉에서만 5명이 실종이 됐고 48명이 사망을 했어.
"산사태로 인한 주택을 덮쳐서 주택 내에서 시신도 나오고 이런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바다까지 떠내려가서 바다에서도 찾지도 못하고, 차량 내에서 발견되신 분들도 있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권영각, 당시 현장 출동 소방대원
피해가 많이 발생한 건 오전 출근 시간대였어. 그래서 생업을 위해 출근하던 직장인, 학교를 향하던 학생들이 순식간에 들이닥친 수마에 휩쓸려 행방불명되거나 목숨을 잃었어.
그리고 그날 아침, 다급한 전화벨 소리가 울린 건 윤정 씨의 휴대전화였어.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온 거야.
"아침에 어머니한테 휴대전화로 전화가 와서 '영곤이가 연락이 안 된단다' 이렇게 다급한 소리 듣고. 이게 무슨 소리지? 갑자기 뭐지? 그때부터 저는 사실 강원도까지는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이윤정, 김영곤 대위 아내
윤정 씨가 강릉으로 도착하자 부대 관계자들이 다 나와 있어. 참담한 표정으로 윤정 씨에게 말해.
"죄송합니다. 중대장님이 어젯밤 실종되셨습니다."
어제 분명히 다 대피시키고 잘 돌아간다고 했잖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전화를 끊고 김영곤 대위는 다른 사병과 함께 교통통제를 하러 가고 있었어. 그런데 그때, 대피하던 마을 주민이 김영곤 대위를 붙잡더니 마을회관에 몸이 불편한 노부부가 고립돼 있으니까 구출을 좀 해달라고 한 거야.
김 대위가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서 살피는데, 보니까 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마을회관이 하나 있어. 잘 들어보니까 희미하게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 소리가 들려. 김영곤 대위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구조 장비를 챙기기 시작해. 그때 함께 있던 병사들이 "중대장님, 저희가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어. 그러자 김 대위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해. "아니다. 위험하니까 내가 먼저 들어가서 상황을 보고 신호한다."
"본인은 그건 전혀 계산이 안 했던 것 같아. 남편은 분명히 그분들이 살려달라고 했을 때 자기 부모님을 먼저 생각했을 거예요. 항상 내 부모님이면 어떨까? 내 동생이면 어떨까? 내 자녀면 어떨까? 이런 마음으로 항상 먼저 나서고 일을 하니까."
-이윤정, 김영곤 대위 아내
김 대위는 가슴 높이까지 차오르는 물살을 헤쳐가며 난간을 잡고 마을회관으로 이동했어. 얼마나 지났을까? 대기하던 병사들 눈에 어둠 속에서 무언가 보여. 다행히 마을회관에서 구조된 노부부가 물살을 헤치며 나오고 있어. 그리고 병사들이 달려가서 노부부를 부축했어. 근데, 김영곤 대위는 보이지 않아. 김 대위는 마을회관에서 그 노부부를 구조하던 중에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과 밀려오는 물 때문에 중심을 잃고 휩쓸려가고 말았던 거야. 윤정 씨와 통화를 끝낸 직후 벌어진 일이었어.
"사실 그때는 아무것도 안 들렸어요. 모든 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죠. 그때는 이게 현실이 진짜 맞나? 안 와닿았죠.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는 생각밖에 없고.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디 다쳐서 부끄러워서 못 나오나. 내가 싫어서 가나. 이런 생각도 들고. 만약에 차라리 어디라도 살아있어서 나중에라도 왔으면 좋겠다."
-이윤정, 김영곤 대위 아내
부대 사람들이 총동원돼서 김영곤 대위를 찾고 있었어. 그렇게 윤정 씨가 남편을 찾아 헤맨 지 벌써 나흘째. 어디에도 김 대위는 보이지 않았어.
"9월 1일 날 올라가서 2일, 3일, 4일을 그때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이 안 나요. 그냥 바다를 보면서 나도 뛰어 들어갈까. 내가 뛰어 들어가야 나타날 거냐고. 왜 안 나타나냐고… 사람들 다 지쳐갈 때, 그때 마지막 4일 날. 그때에서 저 멀리서 찾았다고, 영곤이 찾았다고. 아빠 친구가 뛰어와서…"
-이윤정, 김영곤 대위 아내
"고인을 떠나보내는 영결식장에선 내내 통곡이 이어졌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부대 장병도 모두 울었습니다. 부인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사랑했고 믿었던 남편인데 고인의 죽음이 끝내 믿기질 않습니다. 아빠의 죽음을 이해 못 하는 4살배기 외동딸, 영결식 내내 천진한 모습이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시신을 보고도 안 믿어졌어요. 진짜 이 사람이 내 남편 맞나? 애 아빠 맞나? 영정사진 앞에서 우리 아빠라고. 우리 애도 아빠의 죽음을 안 받아들였고. 미안하다는 소리밖에 못했어요. 나를, 우리를 왜 두고 가냐고."
-이윤정, 김영곤 대위 아내
김영곤 대위는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나 국립현충원에 안장됐어.
이 두 사람, 여느 부부보다 각별한 사이였다고 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0년 전, 고3 때야. 그날은 윤정 씨의 생일이었어. 학교가 끝나고 동네 냇가에서 조촐하게 생일 파티를 하는데, 옆에 있던 남학생들이 오더니 윤정 씨의 생일을 축하해 준 거야. 그중 한 명이 바로 영곤 씨였던 거지.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생일 때 그렇게 만난 인연이 되어서. 생일 선물처럼 다가온 것 같아요. 첫인상이 개구졌지만 잘 생겼었어요. 잘생기고 굉장히 따뜻하고. 남편은 시내에 사시는 분이고 저는 시골 사람이고. 촌 애를 데리고 와서 돈가스도 사주고 할 정도로, 너무 잘하다 보니까…"
-이윤정, 김영곤 대위 아내
그 뒤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친구에서 연인이, 그리고 부부가 됐어.
"저는 사귀면 결혼하는 줄 알았어요. 친구로 만났지만 연인으로 지냈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을 생각했고.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문 열고 들어올 것 같고, 전화 오면 '정아'하고 이름 부를 것 같고. 타이머신이 있으면 진짜 돌아가고 싶어요. 헤어지지 않았으면, 떨어져 살지 않았으면…"
-이윤정, 김영곤 대위 아내
사택이 나와 함께 사는 날만을 기다리던 윤정 씨가 남편을 마지막으로 본 건, 태풍 루사가 닥치기 보름 전인 8월 15일. 그때가 남편과 무려 8개월 만의 만남이었다고 해. 오랜만에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기 전, 영곤 씨가 윤정 씨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해.
"윤정아 우리 조금만 참자. 조금만 참으면 우리 금방 같이 살 수 있을 거야."
이 말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지.
▲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
그리고 사라진 가족을 찾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어. 두 딸과 아내를 잃어버린 규태 씨. 물살에 떠내려간 가족들을 찾으러 강릉 바닷가를 전부 돌아다녔지만 보이질 않아. 그때 규태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와.
"여기 강릉 경찰서입니다. 아내분 성함이 박경숙 씨 맞으시죠? 아내분 찾았습니다."
"그다음 날 바로 찾았더라고. 바닷가에서 파도에 밀려 나온 걸 보고. 혹시 맞나 사진을 보냈더라고. 내가 먼저 보고 동생이 보고는 맞다고 그래서 갔죠. 동해의 병원으로 갔죠. 잠자는 것처럼 가만히 있더라고요."
-염규태, 당시 강릉 대동 마을 주민
규태 씨 아내는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왔어. 규태 씨는 그 뒤에도 강릉 바닷가와 하천을 떠돌며 아이들을 찾아 헤맸어. 제발 어디에라도 살아있어 달라는 마음으로. 두 딸 은미와 은희는 무사했을까?
"태풍 루사가 닥쳤을 때 실종됐던 염은미 양이 37일 만에 마을 주민의 논에서 발견됐다. 마을 주민은 이날 논바닥에 누운 채 숨져있는 염 양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뉴스 보도 중
"제정신이 아니다고 봐야죠. 제정신이면 이상하지. 내가 손을 놓친 게 있기 때문에, 그 당시 물살이 세 가지고 나가는 걸 내가 봤기 때문에. 손만 조금만 뻗어서는 살 수 있었는데…"
-염규태, 당시 강릉 대동 마을 주민
첫째 딸 은미는 근처 논에서 발견이 됐어. 그리고 한 달이 더 지나서 막내 은희도 발견이 돼. 한순간에 눈앞에서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규태 씨. 그의 곁엔 수마로 얼룩진 가족들의 유품만이 남았어.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 8월 31일은 둘째 은희의 생일이었잖아. 꿈꿨던 바다 여행도 가지 못하고, 그렇게 그날은 4살 은희의 마지막 생일이 됐어. 규태 씨는 아내와 아이들의 유골을 집 근처에 뿌렸다고 해. 그리고 지금까지도 매일 지니고 다니는 게 있대. 딸들의 사진이야.
"항상 보고 있으니까요. 항상 마음이 있으니까 보지. 마음이 없으면 보겠어요. 지금 딸이 자랐으면 성년이 돼서 같이 다닐 수 있을 텐데. 가끔 문뜩 생각날 때 있어요. 생각날 때는 (아내와 딸을 안장한 곳) 그쪽으로 한 바퀴 돌고 들어오고. 잘 지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죠. 잘 지내라고…"
-염규태, 당시 강릉 대동 마을 주민
보통 큰 피해를 입힌 태풍은 그 이름을 제명한다고 해. 이름을 없애버린다는 거야. 태풍의 이름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할 피해자를 존중하기 위해서야. 그래서 태풍 '루사' 이 이름도 영구적으로 사라졌어.
그런데 혹시 우리나라에 불었던 태풍 중에 기억나는 이름이 있어? 태풍 '매미'. 대부분 태풍 하면 떠올리는 이름이 루사가 있고 1년 후에 발생했던 태풍 매미야. 루사 역시 많은 기록을 남길 만큼 큰 피해를 입혔지만, 24년이 지난 지금 루사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어.
규태 씨는 24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족과 함께 지내던 그 집에서 살고 있어. 김영곤 대위의 영결식 날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놀던 4살의 어린 딸은 어느덧 성인이 돼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해. 아빠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는 딸의 말에, 윤정 씨는 용기를 내서 카메라 앞에 섰다고 해.
단 하루 만에 무자비한 태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가족을 잃었어. 누군가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 때문에 비가 오는 날 운전대를 잡지 못한다고 해. 그리고 또 누군가는 지금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 루사라는 이름은 지워도 피해를 입으신 분들은 지우면 안 되겠지.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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