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압승도, 국민의힘에 참패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는 평가다. 그런데 이 분석은 너무 상투적이다. 선거의 단면만 잘라낸 과거 회귀적 시각이기도 하다. 2028년 총선과 2030년 대선이라는 미래의 시간표 위에 이번 선거의 표심을 올려놓으면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잘못된 노선임을 알았을 때 핸들을 꺾을 수 있는 정당이 어디냐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를 통해 '윤 어게인'이라는 낡은 노선에서 벗어날 내부 투쟁의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 개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 당 전체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양당의 대응이 2028년 총선, 2030년 대선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얻은 것: '윤 어게인'과 싸울 수 있는 동력
국민의힘은 최악의 조건에서 선거를 치렀다. '윤 어게인'이라는 구시대적 프레임에 발이 묶인 채 중도층 공략에 이보다 나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장동혁 대표와 각을 세워온 대안 인물들이 대거 당선되는 반전을 이뤄냈다. 오세훈, 한동훈, 유의동이 그들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한 민주당 의원은 보수 유권자들의 심리를 이렇게 읽었다.
"'윤 어게인'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조용한 보수 유권자들이 '그래도 오세훈은, 그래도 유의동은, 그래도 한동훈은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투표하러 나가신 게 아닐까. 기본적으로 보수 유권자들이 보수 진영의 개혁에 거는 기대감이 담긴 선거였다고 본다." (민주당 수도권 A 의원)
이 비주류 세력의 생환은 국민의힘 내부에 본격적인 노선 투쟁의 불씨를 당길 것이다. A 의원이 특히 주목한 인물은 3연임에 성공한 오세훈 시장이다. 이제 더 이상 서울시장 선거에 나올 수 없어 당내 눈치를 볼 이유가 완전히 사라진 그가, 한동훈 등과 연대해 주류와 정면으로 맞서 싸울 명분과 동력을 확보했다는 이유에서다.
"오세훈 시장은 이번 당선으로 더 이상 서울시장 선거에 나올 수 없다. 이젠 정말 국민의힘을 향해서 소신껏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거다." (민주당 수도권 A 의원)
당장 있을지도 모르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현재 당 주류의 벽을 넘지 못해도 상관없다. '윤 어게인'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당의 노선을 놓고 공개적으로 싸우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침묵하던 중도 보수 유권자들에게 변화의 신호를 보낼 것이다. 이 과정이 시끄럽고 요란스러워도 투쟁 과정은 당의 체질을 서서히 바꾸는 약이 될 것이다.
민주당의 표면적 위기: 비전 없이 치른 선거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서울시장 선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남, 용인, 의왕, 과천 등 서울과 출퇴근으로 연결된 경기 남부의 고소득 중도층 밀집 지역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선거 전까지 당내에서는 서울시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가 지배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격 강도는 더 크다.
"많이 좁혀졌다지만 서울시장 선거에서 1~2%포인트 차이로 이길 것으로 당내에서는 예측을 했다. 그런데 저렇게 져버렸으니…" (민주당 수도권 B 의원)
패인의 핵심은 부동산과 조작기소 특검법 추진이라는 게 민주당 내 지배적 평가다.
"부동산 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했고, 그 다음에 조작기소 특검법 등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민주당 수도권 B 의원)
그런데 문제는 정책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 현장을 직접 뛴 한 의원은 이 지역 유권자들의 정서 변화를 이렇게 전했다.
"내란 청산의 바람은 이미 사그라들고 있었고, 그걸 넘어설 만한 새로운 바람이 없었던 거다. '서울의 비전이 뭐지, 이재명 정부 들어서 경기 남부의 비전이 뭐지?'라고 유권자들은 물었는데 비전이 없었다. 경기 남부는 반도체 시행령 문제로 불안감이 커졌고, 부동산 토지거래허가제까지 겹치면서 오히려 정부·여당에 '경고 시그널을 줘야 되겠다'는 쪽으로 민심이 굳어진 거다." (민주당 수도권 C 의원)
그리고 중도층은 이미 민주당을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윤석열 감옥 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내란 청산 이야기를 하고 있어? 언제 비전 제시할 거야? 너네 여당 아니냐?' 현장은 그런 분위기였다." (민주당 수도권 C 의원)
유권자들이 원한 것은 내란 청산 프레임이 아니라 지역 맞춤형 민생 비전이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정책을 무조건 따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소신 있게 문제를 제기하고, 서울 등에서의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후보를 만들어내고 선거 캠페인으로 지원할 지도부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이건 맞는 거지만 부족함이 있다. 서울에는 맞지 않다. 내가 되면 이렇게 하겠다. 반드시 관철시키겠다' — 이게 있었어야 되는 거다. 그런 걸 지도부가 고민해서 만들어냈어야 했고, 그렇게 안 하면 어차피 안 되는 싸움이었다." (민주당 수도권 C 의원)
민주당의 진짜 위기: 정청래와 다른 노선을 제시할 수 있나
당 대표로서 선거를 총괄 지휘한 정청래 대표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정 대표의 책임을 추궁하는 쪽에서는 "탄핵 소추단장과 3대 특검법 등을 통과시킬 이재명 정부 첫 당 대표로서 '내란 청산' 국면을 이끌었던 정청래 대표의 역할과 사명은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동안 초접전지였던 경기 평택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현장을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것을 두고도 비판이 있다. " 당이 공천을 해놓고 무슨 의붓자식 보듯이, 콩쥐 보듯이 내팽개쳐 놓은 게 아닌가."(송영길 의원)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8월 전당 대회에서 민주당 당원이지만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지지했던 전통적인 당원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 눈치를 봤던 게 아닌가라는 의심도 따라붙는다.
그런데 민주당의 미래를 위해 제기되어야 할 질문이 이것이다. 정청래와 다른 노선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민주당 내에는 있는가.
지금 민주당은 전 당원 1인 1표제 도입 이후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가 당의 의사를 사실상 결정하고 있다. 다음 전당대회에서 누가 대표가 되든, 그 사람 역시 같은 구조 안에 놓이게 된다. 아니,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강성 당원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앞서의 A 의원은 이런 구조의 함정을 짚었다.
"당권 주자 중에 '우리가 오만했다, 공소취소 같은 건 왜 하냐'고 말하면서 현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경쟁할 사람이 있겠나. 십중팔구 나와서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 사법 개혁을 더 신속하게 밀어붙이겠다'며 강성 당원들 표를 받으려고 할 것이다." (민주당 수도권 A 의원)
이번 선거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했다는 경고등이 켜졌음에도 노선을 바꿔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민주당 내에 있을 것인가. A 의원의 이야기는 현재 민주당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것이다. 정청래가 아닌 김민석이 당 대표가 됐든, 송영길이나 다른 누가 당 대표가 됐든 당 노선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민주당의 진짜 뼈아픈 미래일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도부가 잘못한 건 분명히 있다. 그런데 (노선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당권 주자가 없다면 비판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민주당 수도권 A 의원)
국민의힘에는 지금 오세훈·한동훈·유의동이라는 이름들이 '윤 어게인'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싸울 수 있는 판이 열렸다. 싸움이 있어야 당이 변한다. 반면 민주당에는 강경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도층을 향해 "우리가 틀렸다"고 외칠 수 있는 세력도, 그 목소리가 먹혀들 구조도 미약하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 구조를 바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향후 누가 민주당 대표가 되더라도 실패의 길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궤도 수정의 능력이 미래를 결정한다
이번 지방선거가 양당에 남긴 진짜 숙제는 '경로 수정 능력'이다. 잘못된 길임을 알았을 때 핸들을 꺾을 수 있는 정당과 뻔히 절벽이 보이는데도 지지층의 환호에 등 떠밀려 직진할 수밖에 없는 정당의 차이다.
국민의힘은 유권자들이 강제로 쥐여 준 비주류라는 브레이크를 통해 과거 노선과 결별하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기회를 살린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내란 정당'이란 꼬리표가 붙어 국민의 기대치가 그 어느 때 보다 낮은 만큼 조그마한 변화에도 국민들은 더욱 크게 반응할 것이다. '30대 0선 당 대표' 등 변화를 통해 탄핵 대통령을 배출했던 정당이지만 불과 5년 만에 다시 정권을 되찾았던 게 국민의힘이다.
민주당은 선거 패배라는 경고를 받았지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문제는 누가 더 이재명 대통령을 배신하지 않고 잘 지킬 것이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 더 강성 당원들의 눈치만 보지 않고 중도층의 지지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노선 변화를 이끌어 내느냐가 되어야 한다. 노선을 스스로 수정할 자정 능력을 민주당이 증명하지 못한다면 2028년 총선과 2030년 대선 승리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두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충성심이 있는 당 대표와 대권주자라고 하더라도 이재명 대통령을 지키기는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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