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잠들지 못하는 도시의 비명…한국판 타임스퀘어 정책의 그늘

서울 성수동의 한 지식산업센터 건물 창가. 시계 바늘은 이미 저녁 7시를 넘겼지만, 사무실 안은 기묘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해가 진 지 오래인데 창밖에서는 '제2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맞은편 건물 외벽에 설치된 초대형 LED 전광판이다. 가로 10미터, 세로 20미터가 넘는 이 거대한 스크린은 패션 플랫폼 기업이 사옥을 지으며 야심 차게 내건 상징이다. 하지만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들에게 그것은 '세련된 랜드마크'가 아니라 '시각적 폭력'이었다.

맞은편 건물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평소같이 일하다가 갑작스럽게 통보도 없이 휘황찬란한 전광판에서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신기했죠. 하지만 여기 상주하는 사람들은 화면이 바뀔 때마다 계속 신경이 쓰이고, 눈이 너무 아파요."

통유리 사무실의 비극은 밤에 더 심각해진다. "낮에는 그래도 버틸 만한데, 밤에 야근할 때는 가림막으로 가려도 빛이 퍼져서 상당히 피로합니다. 동료들도 '눈이 훨씬 더 피로한데 이게 언제 정리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고 있어요." 

직원들은 사무실의 풍경이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했다. "가을이나 겨울에 트인 느낌을 받고 싶은데, 빛이 산란되고 눈이 아프다 보니 통유리 건물인데도, 창문이 창문의 구실을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어요." 

특히 초반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빨간색, 파란색 같은 원색에 눈을 확 휘어잡는 광고가 나왔어요. 모니터를 보고 있어도 근처에서 빛이 산란되다 보니 업무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신경이 쓰입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한국판 타임스퀘어'를 표방하며 규제의 빗장을 푼 이후, 서울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해졌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서, 시민들의 민원은 급증하고 있다.

화려함 뒤의 그림자: '빛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

빛공해의 피해는 건물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로 위 운전자들도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광화문에서 모범택시를 운전하는 최상규 기사를 만났다. "눈에 반사가 많이 돼요. 너무 밝으니까." 그는 오랜 운전 경력에도 불구하고 요즘 전광판이 특히 힘들다고 토로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움직이는 영상이다. "전광판이 막 움직이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불편하죠. 처음보다는 나아졌는데, 습관이 돼서. 그래도 힘들 때가 많아요." 가장 위험한 순간은 교차로에서 벌어진다. "신호등하고 같이 있을 때는 정말 힘들어요. 녹색 신호인데 전광판도 녹색이 들어온단 말이에요. 그럴 때는 '아유,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싶습니다."

총천연색으로 나오는 전광판이 신호등과 헷갈리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안전 문제다.

원치 않는 빛에 강제로 노출되는 일상

취조실의 강렬한 조명처럼, 시민들은 원하지 않는 빛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강제적 시각 공해'를 겪고 있다. 수면 전문가들은 이러한 야간 조명 노출이 생체 리듬을 교란해 수면 박탈과 만성 피로를 유발한다고 경고한다.

성수동 사건은 지난 7월 시작됐다. 해당 기업은 젊음과 트렌드를 상징하는 영상을 하루 종일 송출했다. 하지만 정작 그 영상을 강제로 봐야 하는 앞 건물 입주민들에게 트렌드는 고통이었다.

민원 제기 후 성동구청의 중재로 운영사 측은 전광판 밝기를 여러 단계에 걸쳐 조정했다. 2025년 7월 성동구청 중재 개시, 같은 달 운영사 측 1차 조정(화면 밝기 20% 감축), 9월 2차·3차 조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이 적용됐다. 이러한 조치로 전광판의 실제 측정값은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이 규정한 상업지역(4종 구역)의 야간 허용 휘도인 1,500cd/m²를 크게 밑돌았다. 
빛공해

다른 지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키엘연구원 빛환경센터팀과 실제 광화문 전광판 밝기를 측정한 결과, 빛공해 방지법 기준이 일몰~자정 1,000cd/m²인 데 비해 평균 349.4cd/m²로 나타나 법적 기준을 충족하고 있었다.
빛공해 광화문

법이 측정하지 못하는 고통

문제의 핵심은 기준의 차이다. 현행법은 화면 자체의 밝기인 '휘도(Luminance, cd/m²)'만 규제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실제로 고통을 호소하는 건 빛의 번짐, 깜빡임, 급격한 색상 변화가 만드는 '눈부심(Glare)'이다.

쉽게 말해, 휘도는 '전광판이 얼마나 밝은가'를 측정하지만, 눈부심은 '사람이 얼마나 불쾌하고 자극을 받는가'를 의미한다. 밝기만 보는 규제는 화면 전환 속도와 색 대비라는 가장 중요한 변수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소음 규제를 하는데 "데시벨은 낮으니 괜찮다"고 하면서, 칠판 긁는 소리를 계속 들려주는 것과 같다. 수치는 합법일지 몰라도, 고통은 실재한다.

현행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환경부, 2012년 제정·2013년 시행)의 기준을 보면, 발광표면 휘도만을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화면의 색상 변화, 깜빡임, 움직이는 영상의 패턴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빛공해

한국판 타임스퀘어...급증하는 빛공해 민원

이 같은 갈등의 배경에는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가 있다. 정부는 2016년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 및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전광판의 크기와 형태 규제를 대폭 완화한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삼성동 코엑스 일대가 1호로 지정되며 초대형 전광판 확산의 신호탄이 됐다. 이후 정부는 디지털 사이니지를 ‘규제 대상’이 아닌 ‘신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기조 아래, 2023년 말 명동·광화문·해운대 등으로 자유표시구역을 확대했다. 규제 완화가 도심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성수동처럼 자유표시구역이 아닌 지역에서도 지자체 건축·광고 심의를 통해 대형 전광판 설치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한 피해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빛공해 민원이 이전 5년에 비해 26.3%나 급증했다. 도심의 야경이 화려해질수록, 그 이면에서 고통받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빛공해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

미국 의학협회(AMA)는 2016년 6월, LED 가로등과 전광판의 청색광(Blue Light)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식 경고 성명을 발표했다. AMA 보고서는 "야간의 과도한 LED 노출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고 지적했다. 멜라토닌은 수면을 유도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며,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중요한 호르몬이다. 

의학계는 과도한 인공조명을 '잠재적 발암 위험 요인'으로 지목한다. 밤에 빛을 많이 쐬는 야간 근무자들의 유방암 및 전립선암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됐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7년 야간 교대근무를 '발암 가능 요인'으로 분류했다.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 연구팀이 전 세계 147개 커뮤니티를 조사한 결과(Journal of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 2008)에 따르면, 야간 조명이 강한 지역일수록 여성의 유방암 발생률이 최대 73% 높게 나타났다.

생체 리듬 교란이 면역 체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의학계의 우려다. 기술은 빛의 속도로 발전해 8K 초고화질 전광판을 만들어냈지만, 수백만 년간 '해지면 자는' 리듬에 맞춰 진화해 온 인류의 생체 시계는 이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잠들지 못하는 나무, 사라지는 곤충

인간만이 피해자가 아니다. 도심의 가로수들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12월이 되었는데도 가로등이나 전광판 바로 밑의 은행나무는 여전히 잎이 파랗게 달려 있는 경우가 있다.

식물학자들은 이를 '계절 착각'이라고 부른다. 빛 때문에 아직 가을이 오지 않았다고 착각한 나무는, 겨울을 날 준비(낙엽을 떨구고 수분을 줄이는 것)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한파가 닥치면, 준비되지 않은 나무의 조직은 그대로 얼어 터져 죽고 만다(동해).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빛 공해에 의한 생태계 교란'이라고 점잖게 표현하지만, 실상은 나무를 잠재우지 않고 얼어 죽이는 학대다.

독일의 연구진은 최근 '곤충의 묵시록(Insect Apocalypse)'이라는 논문을 통해, 급격한 곤충 개체 수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빛 공해를 지목했다. 밤을 밝히는 인공조명은 나방과 같은 야행성 곤충들을 죽음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이는 결국 새들의 먹이 부족으로 이어져 생태계 전체를 흔든다.
 

프랑스는 왜 새벽 1시에 상점 불을 끄나

"빛의 도시(Ville Lumière)"라 불리는 파리.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는 빛을 끄는 데 가장 적극적인 나라다.

프랑스 정부는 2013년 7월부터 '상업용 조명 규제법(Arrêté du 25 janvier 2013)'을 시행했다. 새벽 1시부터 아침 7시까지 모든 상점과 사무실의 쇼윈도 조명, 간판 소등을 의무화했다. 이를 어기면 최대 750유로(약 11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에펠탑조차 새벽 1시면 화려한 조명을 끈다.

이유는 명확하다. 에너지 절약은 물론이고, "어둠도 보존해야 할 자연 유산"이라는 철학 때문이다. 프랑스는 밤의 어둠을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한다.

미국은 화면 정지 시간까지 규제한다. 미국 옥외광고협회(OAAA, Out of Home Advertising Association of America)의 '전광판 기술 주법 편람(2023년판)'에 따르면, 미국 각 주는 한국보다 훨씬 세밀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빛공해
이들 주는 '다크 스카이(Dark Sky)' 조례를 제정해, 빛이 하늘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명 갓을 씌우고 색 온도를 엄격히 제한한다. 전광판의 화면 전환 속도를 늦추고, 주변이 어두워지면 전광판 밝기도 자동으로 줄어들게 강제한다.

기술은 진화하는데 법은 13년 전

키엘연구소의 공효주 책임연구원은 현재 빛공해 규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전광판 광고물은 동영상 변화가 크고 휘도 밝기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시민들이 시각적으로 자극을 받습니다. 시야가 집중되다 보니 불편감을 겪는 거죠." 문제는 법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법적 기준은 조도와 휘도 같은 물리적 기준만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다 보니 영상 전환 속도, 색 변화, 주변 밝기와의 대비 같은 기준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공 연구원은 LED 전광판의 기술적 특성을 설명했다. "기존 전광판은 피치 간격, 즉 조명과 조명 사이 간격이 넓었습니다. 하지만 LED 전광판은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간격이 좁아졌죠. 선명감은 높아졌지만, 밝기도 크게 높아지고 색 변환도 급격해져서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줍니다."

특히 LED의 청색광(블루라이트)이 문제다. "백색의 선명도가 높아지면 블루라이트 파장이 높아져 피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밝기를 줄이면 블루라이트 파장도 감소하지만, LED 전광판 자체가 기존 전광판보다 불편함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는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연구라고 강조한다. "정지 시간을 3초 했냐 5초 했냐에 따라 시민의 불편함이 얼마나 감소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 모두 부족합니다. 야간 옥외 조명이 인체에 어느 정도 위해한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합니다."

특히 한국 상황에 맞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눈의 구조가 백인과 우리나라 사람이 다릅니다. 무조건 해외 기준을 따라오기보다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발전하는 기술, 정체된 규제  

한국의 LED 전광판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다. 크기 제한 없이 무한정 크게 만들 수 있고, 평면뿐 아니라 곡선 형태도 가능하며, 8K 초고화질의 선명한 영상을 구현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 발전과 달리, 빛공해를 규제하는 법적 기준은 13년 전 제정 당시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행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은 2012년 제정되어 2013년부터 시행되었다. 당시 전광판은 지금보다 훨씬 낮은 해상도에 느린 화면 전환 속도를 가졌다. 그러나 2025년 현재, LED 기술은 급속도로 진화했다. 피치 간격(LED 픽셀 간 거리)은 수 밀리미터 단위로 줄어들어 선명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초당 60프레임의 부드러운 동영상 재생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법이 이러한 기술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은 여전히 '평균 밝기(휘도)'만을 측정한다. 화면 전환 속도, 색상 대비, 움직이는 패턴이 유발하는 시각적 자극에 대한 기준은 전무하다. 마치 1990년대 브라운관 TV 시대의 규제로 2025년의 OLED 디스플레이를 규제하려는 격이다.

공 연구원은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밝기 기준은 계속 유지하되, 정지 시간 운영이 필요합니다. 특히 주거지역은 자정 이후 소등하는 강력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LED 전광판의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시민들이 느끼는 불편함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방지 대책과 기준, 대처 방안이 시급합니다."

'밝은 도시'가 선진국이라는 착각

우리는 오랫동안 "불 꺼지지 않는 창"을 근면의 상징으로, "대낮처럼 밝은 밤거리"를 번영의 척도로 여겨왔다. 하지만 이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24시간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초대형 전광판이 과연 선진국의 상징일까?

미국의 신경과학자 매튜 워커는 저서 《우리는 왜 자야하는 걸까》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면은 사치가 아니라, 생물학적 필수품이다. 그리고 어둠은 수면을 위한 초대장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기본적인 생체 리듬을 공격하고, 이웃의 고통을 담보로 화려함을 뽐내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다. 성수동의 전광판 사태는 단순한 이웃 간의 다툼이 아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도시가 '빛나는 도시'인지, 아니면 '살기 좋은 도시'인지 묻는 묵직한 질문이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