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간 방산 수출액은 2022년 170억 달러 최고 기록 경신 후, 2023년 135억 달러, 2024년 95억 달러로 줄어들었습니다. 올해 2025년은 200억 달러를 목표로 삼았지만 작년보다 크게 나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우리 돈으로 치면 한때 20조 원을 찍었다가 10조 원대로 반토막 날 판입니다.
한국의 모든 방산업체들의 연간 수출액 전체를 합쳐본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한 달 매출액에 못 미칩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특혜나 다름없는 수출금융에, 대통령 특사 파견까지 최상급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마치 방산이 한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인 것처럼….
사상 최대 규모의 대출을 약속하고 대통령 특사까지 보냈지만 폴란드가 스웨덴 잠수함을 선택해 방산업계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K-방산 신드롬을 일으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머잖아 끝날 분위기입니다. 안보적으로 불안한 개발도상국에 대출·현지생산·기술이전 3대 패키지를 앞세우는 K-방산 수출 방정식이 언제까지 통할지 의문입니다. '세계 방산 빅4' 같은 정치적 흥행을 노린 구호는 접어놓고 방산의 체질 개선을 좇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대출·현지생산·기술이전에 의존?
수입국 현지생산과 이에 따른 기술이전도 K-방산 수출의 기본 패키지입니다. 수출을 하면 한국 방산업체의 일자리와 수익이 늘어나야 하는데 현지생산 조건이라서 실제로는 수입국이 일자리와 임금, 세금, 설비 등을 챙깁니다. 국방과학자들이 피땀 흘려 개발한 고급 기술들도 수입국에 덤으로 무상 제공됩니다. 방산 수출해서 수입국에 국부 나눠주는 꼴입니다.
K-방산 신화의 배경에는 이렇게 대출·현지생산·기술이전 패키지가 있습니다. 눈 번쩍 뜨이게 하는 대출·현지생산·기술이전 패키지에 힘입어 폴란드,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 군부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사우디, UAE 등 돈 많은 중동 국가들은 대출 대신 기술이전 듬뿍 안기며 수출했습니다.
100%에 가까운 대출에 현지생산과 기술이전을 내걸었지만 K-방산은 폴란드 잠수함 사업에서 패했습니다. "대출·현지생산·기술이전 패키지에 의존하는 수출에 경종이 울렸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방산업계에서 들립니다. "기존 수출품들은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새로운 수출 주자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대안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한 임원은 "전차, 자주포, 소총 등 기존 수출품들은 무기 중진국들도 만든다", "하늘과 바다의 무기, 무인화된 다영역의 무기 등으로 K-방산의 첨단화, 고급화,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방사청 대신 방'산'청?…"방사청의 생명은 획득과 질서"
이용철 신임 방사청장은 지난달 17일 취임식에서 "정부의 전략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청의 이름을 방위'산업'청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마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용철 청장의 취임사와 달리 방사청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 즉 수출 진흥이 아닙니다. 첫째도 '획득', 둘째도 '획득'입니다.
방사청 개혁은 획득 절차를 간소화해서 획득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방사청의 한 고위직 인사는 "획득을 탈 안 나게 빨리 하면 군은 좋은 무기를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고, 방산업체는 국내 실적을 확보해 무기의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획득이 잘 돼야 수출도 잘 되는 것입니다.
방산 생태계의 질서 확립도 방사청의 목표가 돼야 합니다. 방사청만 제 역할 똑바로 해도 방산업계의 질서는 잡히고, K-방산의 경쟁력은 높아질 터. K-방산의 짐이 되고 있는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KDDX 사업 과정을 살펴보면 방사청의 질서 확립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뇌물 사건으로 정부 사업 입찰 자격을 잃은 업체가 무더기 기밀 절도까지 저질렀는데 방사청은 2019년 9월 9일 제안서 평가 지침을 고쳐 KDDX 기밀 절도 업체에 KDDX 기본설계 참여의 길을 터줬습니다. 또, 방사청은 2024년 2월 27일 KDDX 기밀 절도에 대해 청렴 서약 위반이 아니라는 황당한 결정을 함으로써 해당 업체에 KDDX 상세설계 사업 참여 기회를 줬습니다. 방사청이 법과 원칙을 무시한 탓에 KDDX 사업은 일찌감치 공정성을 잃어 K-방산 혼탁, 무질서의 원흉이 됐음을 방사청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합니다.
'방산 정치' 대신 '방산 체질 개선'을…
진보, 보수 막론하고 권력과 정치는 방산을 참 좋아합니다. 무기 수출은 이른바 '국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집권 세력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방산 수출을 어떻게든 활용하려고 애씁니다. 대통령실의 페루 K2 총괄합의 발표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됩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국방홍보원이 한국방위산업진흥회를 내세워 업체들 돈으로 K-방산 다큐를 제작한 일도 있습니다. 총선 겨냥용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통령 해외 순방에 맞춰 방산 수출 계약 해내라는 압박에 업체들 등골 휜 사례도 여럿입니다.
지난 7일 이재명 정부 6개월 성과 보고 기자간담회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실 중심의 방산 컨트롤타워를 출범시켜 K-방산의 글로벌 4대 강국 도약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어떻게든 방산을 도와주려는 마음은 고맙습니다. 그런데 잘 도와줘야 합니다. 컨트롤타워 '옥상옥' 세우면 업체와 방사청 성가시게 할 공산이 큽니다. 지금 급선무는 해외 무기 시장 동향 잘 읽고 방산 체질 개선에 머리 모으는 것으로 보입니다. 의지만 있다면 기존 조직으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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