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지법·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피고인은 선지급한 돈을 받는 게 관행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게 법에서 허용한 행위라든가 입주자 대표 회의가 허용해 준 건 아니잖아요? 아주 나쁜 관행인 거죠. 누가 그렇게 회계 처리를 하나요?"
수년간 13억 원에 이르는 관리비를 빼돌려 개인 빚 상환과 해외여행, 생활비에 쓴 일로 5일 항소심 법정에 선 A(57) 씨를 향해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이은혜 부장판사가 "규모가 큰 아파트에서 나쁜 관행에 따라, 오랜 기간 회계를 엉망으로 해왔다"고 질타했습니다.
2016년 3월부터 원주시 한 아파트 경리과장으로 근무한 A 씨는 2017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14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조사 결과 그는 지출 서류 결재 등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은 점을 이용해 관리비를 횡령한 뒤 채무 변제와 해외여행, 신용카드 대금 납부와 생활비 등에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A 씨는 165차례에 걸쳐 자신 또는 아들 명의 계좌로 이체하는 수법으로 13억 원이 넘는 돈을 빼돌렸습니다.
지난해 초 자체 회계감사를 진행한 관리사무소 측은 횡령 의심 정황을 발견하고는 A 씨를 고발했고, 수사기관은 관리사무소 측이 제출한 거래 명세 등을 분석해 A 씨의 횡령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피해 대부분이 회복되지 않았고 아파트 입주민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9천여만 원은 무죄로 판단하고 나머지 13억 원은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1심 재판을 받던 중 구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보석으로 풀려났던 A 씨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습니다.
양측의 항소로 이날 다시 법정에 선 A 씨는 원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아파트를 위해 선지출한 돈을 다시 받는 건 일종의 '관행'이고, 돈을 운영비로 썼으므로 불법으로 가로챌 의사가 없었다며 억울해했습니다.
또 1심의 판결에서 유무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무죄 입증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써낸 것만 보더라도 회계 관리가 엉망이다. 이 행위는 피고인의 독단적인 행위고 아주 나쁜 관행"이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또 주먹구구식으로 회계 처리를 한 부분에 대해 무죄를 주장한다면 입증 책임은 피고인에게 있다는 법리를 주지 시키기도 했습니다.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구속으로 자료 접근이 제한적인 부분도 이해하지만, 검사가 공소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본인이 입증을 못 했다고 유죄라고 판단했냐고 하면 안 되는 거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피해 아파트 주민들은 A 씨를 상대로 14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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