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납치 감금 피해자들의 절박한 구조 요청에도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는 점, 어제(15일) 전해드렸습니다. 대사관이 피해자들에게 전달한 '신고 가이드라인'을 입수해서 분석해 봤더니, 황당한 내용이 가득했습니다.
김보미 기자가 전하겠습니다.
<기자>
지난 8월,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놓고 일자리를 찾던 23살 A 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식품영양사로 일하면 월 500만 원을 주겠다는 말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현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범죄단지로 납치됐습니다.
[A 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 한국인을 전기 고문하는 영상을 틀어서 저한테 보여줬습니다. 그러면서 '너가 일을 안 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라고 협박을….]
같이 감금됐던 한국인 신고로 3주 만에 가까스로 구출됐지만, 현지 경찰은 A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습니다.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는데도 귀국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A 씨는 다급히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돌아온 건 "어쩔 수 없다"는 답변과 도움이 되지 않는 '가이드라인'이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허위 신고 시 피해자가 현지 경찰에 처벌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대사관에선 현지 사법기관이 진행하는 조치에 대해선 어떠한 관여도 할 수 없음을 미리 알려드린다"며 빨리 꺼내달란 요청을 하지 말란 취지의 예시까지 직접 들었습니다.
심지어 "가능한 경우 자력 탈출을 권유한다"고 쓰여 있었는데, 현지 경찰들은 단순 피해자가 아닌 범죄 가담자로 보고 유치장에 가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사관 관계자는 A 씨에게 "우리는 중간다리 역할이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며 "알아서 변호사나 로펌을 선임하라"고 안내했습니다.
[A 씨/캄보디아 감금 피해자 :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기다리란 말밖에 없었고 '변호사 선임해라' 이런 말밖에 못 들었으니 좀 많이 답답하고 피의자로 진행되는 것도 억울한데 대사관에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비행기 티켓을 구매할 돈을 빌릴 수 있는지 묻자 "정부에 대출 시스템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예산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며 알아서 해결하란 말만 돌아왔습니다.
대사관으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던 A 씨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한 달이 지나서야 귀국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영상취재 : 김현상, 영상편집 : 최혜란, 디자인 : 박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