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범죄단지에서 구출된 한국인 A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복도에서 '전기 지지미' 소리가 '찌직'하고 나면 '아…또 우리를 고문하러 오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캄보디아 시하누크빌주 지방경찰청 내 이민국에서 20대 A 씨와 30대 B 씨 등 한국인 2명은 악몽 같던 범죄 단지 생활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6개월 전 '고수익 취업' 광고 글을 온라인에서 보고 남서부 시하누크빌을 찾은 A 씨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일을 해야 하는 사실을 알고는 "그만두겠다"고 했다가 태국 국경과 가까운 북서부 포이펫으로 끌려갔습니다.
범죄 단지인 이른바 '웬치' 내 고문실 천장에는 수갑이 설치돼 있었고, A 씨도 곧바로 거기에 매달렸습니다.
곧이어 문을 열고 들어온 중국인 3명의 고문이 시작됐습니다.
"전기 지지미(전기 충격기)로 온몸을 지지고 쇠 파이프로 무차별하게 때렸습니다. 기절한 건지 힘이 없어 쓰러진 건지 모르겠는데 비명도 안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후 중국인들은 쓰러진 A 씨 얼굴에 물을 뿌렸고, '전기 충격기 고문'은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 고문실에 한 달 동안 갇힌 그가 할 수 있는 건 쌀을 조금 먹는 것뿐이었습니다.
중국인 관리자들은 제대로 된 식사도 주지 않았고,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감금 시설에 끌려온 다른 중국인들은 그나마 같은 국적이라고 대우가 달랐습니다.
비슷한 고문을 당했지만, 밥은 세끼를 다 먹을 수 있었고 담배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동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중국인)들은 사람 취급은 해주더라고요."
짐승 같은 감금 생활을 하는 동안 또 다른 한국인이 고문실로 끌려들어 왔습니다.

B 씨였습니다.
B 씨는 "4번째 탈출을 시도했다가 또 걸렸을 때는 (중국인 관리자들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차량에 태워 포이펫으로 보냈다"며 "7시간 걸렸다"고 기억했습니다.
포이펫에 있는 그 범죄 단지에 한국인은 A 씨와 B 씨 둘 뿐이었습니다.
중국인 관리자들은 이들을 이름 대신 "한궈('한국' 글자의 중국어 발음) 씁니다(습니다)"라고 불렀습니다.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비하하며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A 씨와 B 씨 모두 버틸 힘이 떨어졌을 무렵 끔찍한 장면을 코앞에서 목격했습니다.
같은 고문실에 있던 중국인이 탈출하려다가 경비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맞아 죽는 모습이었습니다.
B 씨는 "그 중국인은 배에 왕(王)자가 있고 몸도 좋았다"며 "나사못으로 경비 직원 눈 주위를 찔러 쓰러뜨렸는데 다른 한 명한테 제압됐고, 무전을 받은 다른 경비 직원 10명이 우르르 몰려와 몽둥이로 때려죽였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중국인 관리자가) 양동이에 든 물과 수건 한 장을 주면서 벽과 바닥에 튄 (숨진 중국인) 혈흔을 다 닦으라고 했다"며 "피비린내가 1주일 동안 손에 남아 있었다"고 떠올렸습니다.
그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끔찍한 생활을 스스로 끝내야겠다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양 손목에 계속 채워진 수갑 때문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도 탈출할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A 씨는 지난 8월 11일 평소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캄보디아인 경비 직원에게 "휴대전화를 조금 쓰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습니다.
"오늘이 여자친구 생일인데 축하 문자 메시지 하나만 보내고 싶다고 했어요. 텔레그램을 한 번만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해서 휴대전화를 받아 (평소 알고 있던 현지) 식당 텔레그램으로 저희 사진과 위치를 보냈습니다."
분명히 텔레그램 대화 흔적을 지웠었지만 2시간 30분 뒤 평소 자주 폭행하는 무서운 중국인 관리자가 갑자기 감금실로 들어와 "누가 (밖에) 신고했느냐"고 소리쳤습니다.
"알고 보니 (그 웬치 건물에 설치된) 와이파이(WiFi) 시스템 검출기로 전송된 사진을 관리자가 모두 볼 수 있었어요. 너무 놀랐습니다. 잡힐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3시간도 채 안 돼서…."
다시 고문당한 A 씨와 B 씨는 포이펫에 있는 또 다른 시설로 끌려갔고, 다시 한 달 동안 수갑을 찬 채 생활했습니다.
이후 둘이 합쳐 '10억 매출'을 찍으면 한국에 보내 주는 조건으로 시하누크빌 범죄 단지로 복귀해 또다시 일을 했습니다.
눈앞에서 중국인이 맞아 죽는 상황을 지켜본 이들은 경비 직원들을 때려서 탈출하는 방법은 이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달 A 씨는 다시 일을 하게 되면서 받은 PC를 이용해 포털사이트 메일에 접속한 뒤 '내게 쓴 메일함'에 자신의 위치 사진과 상황을 저장해뒀습니다.
A 씨는 이후 친형과 박찬대 국회의원실 관계자 등에게 자신의 메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온라인으로 어렵게 전달했고, 결국 지난달 29일 현지 경찰에 구조됐습니다.
감금생활을 한 지 160여 일 만이었습니다.
이들의 사연은 지난 11일 박찬대 의원실을 취재한 언론 보도로 처음 알려졌습니다.
A 씨와 B 씨는 15일 현재 시하누크빌주 지방경찰청 내 이민국 유치장에 머물면서 추가 조사를 받고 있으며 귀국 절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