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정상의 발레단 중 하나인 영국 로열발레단이 다음 달 20년 만의 내한공연을 하게 되는데요, 이 발레단의 퍼스트 솔리스트인 발레리노 전준혁을 만나봅니다. 전준혁은 로열발레단에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로 입단한 이후 초고속 승급을 거듭했습니다. 그는 '슬럼프로 낭비할 시간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해 왔는데요, 힘들고 외로울 때는 '퇴근길 딱 5분만 울었다'고 하죠. 화려한 무대에 서지만, 땀과 눈물로 가득한 예술가의 삶을 진솔한 이야기와 함께 들여다봅니다.
김수현 기자 : 솔리스트로는 얼마나 활동하신 거예요?
전준혁 발레리노 : 1년 했죠.
김수현 기자 : 딱 1년만 하신 거네요.
전준혁 발레리노 : 네. 승급 시작하고 나서는 계속 1년마다 승급을 했으니까.
김수현 기자 : 코로나가 없었다면 좀 더 빠를 수도 있었을 텐데.
전준혁 발레리노 : 그랬을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돌아보면 '이때 정말 힘들었다', 앞으로 가실 길이 멀지만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이때는 좀 슬럼프였나?' 이럴 때가 있었나요?
전준혁 발레리노 : 슬럼프는 없었던 것 같고, 모르겠어요. 항상 슬럼프였나 싶기도 하고. (웃음) 항상 더 나아지려고 노력했었기 때문에 슬럼프로 낭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그런 걸 걱정하면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전준혁 발레리노 : 네. 슬럼프여서 '이 동작이 왜 안 되지?' 생각하기보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서. 실제로 그렇기도 했고요.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꽤 많았는데 슬럼프로 주저앉아서 연습을 못 했던 경험은 전혀 없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전준혁 발레리노 : 못 이겨내고요. (웃음) 이번 시즌에 굉장히 힘들었는데, 솔리스트 승급하고 발레단에서도 저를 굉장히 응원하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들보다 배역도 잘 받고 이러다 보니, 혼자 생각하는 걸 수도 있는데 주변에서 '쟤가 왜 이런 배역을 받았을까? 잘하나 볼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김수현 기자 : 다들 더 주목하게 되니까.
전준혁 발레리노 : 조금 주목받았다고 생각해요. 저를 응원해 주는 친구들도 너무 많고, 지금 생각해 보면 다들 기쁘게 축하해 주고 응원해 준 것 같은데 스스로 정신적으로 몰려 있다 보니까. 몸이 아픈데도 계속 춤을 춰야 된다든지, 좋아하지 않는 작품인데 행복하게 춤을 춰야 된다든지. 제 생일인 2월 21일에 정말 힘들었어요. 생일이라 어머니랑 통화를 하는데 그날 리허설이 5개 정도 있었고.
김수현 기자 : 다섯 작품 리허설이라고요? 하루에?
전준혁 발레리노 : 작품은 3개였던 걸로 기억해요. 근데 배역이 5개였으니까. 그날 하는 공연은 리허설에 포함이 안 돼 있고요. 작품이 시작되면 다른 작품 리허설을 하니까. 9시 반에 시작해서 클래스 하고 리허설 계속하다가 시간이 없으니까 점심도 대충 쑤셔 넣고, 15분 휴식 시간에 어머니랑 5분 정도 전화를 하는데, 허리는 너무 아프고 발목도 아프고 오늘 춰야 되는 공연은 너무 하기가 싫고, 정말 진저리가 쳐지더라고요.
그날 일어나기가 싫었어요. 근데 공연해야 되고 저를 대신할 사람은 한 명도 없고, 현대 작품인데 20분 동안 숨 고를 틈이 없어요. 계속 숨이 차 있어야 하는 걸 이미 알고 있고, 공연 그때 세 번째인가 네 번째여서. 전화를 했는데 부모님한테는 얘기를 드릴 수가 없죠. 울 수도 없고. 전화를 끊고 복도에서 막 울었어요. 제가 발레단 7년 다니면서 그때 처음으로 울었어요.

김수현 기자 : 생일날.
전준혁 발레리노 : 생일날. 전화 끊고 저랑 같이 사는 친구가 '무슨 일이야' 물어보는데 '진짜 너무 힘들다. 난 이 공연 하기 싫고 발레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고, 먼 타지에서 고생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내가 춤춘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보는 것도 아니고, 일반 관객을 위해서 얼마나 내가 힘들어야 하는가'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서. '엄마한테는 이런 얘기를 할 수도 없고 정말 힘들다'
공연 다 마치고 스테이지 앞에 관객분들이 조금씩 기다리고 계시는데 무대에서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에 자기도 행복했다면서 말을 건네주시는데, 그것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거짓된 마음으로 춤을 춰야만 할까?'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행복하게 봐주시니까 행복하게 춤출 수 있는 것 같고, 무대에서는 행복하게 추다가도 무대 내려오면 힘이 다 빠져버리는 느낌. 그때가 발레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병희 아나운서 : 듣고 있으니까 내가 막 눈물이... 눈 감아줘. (웃음) 근데 그걸 어떻게...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준 건가요?
전준혁 발레리노 : 제가 출퇴근이 걸어서 5분 정도 돼요. 힘드니까 근처에 집을 잡아서 사는데, 이번 시즌에는 집에 갈 때 안 운 날이 더 적지 않을까. 눈물 흘리면서 집에 가서 자고 다시 출근하고. 제가 '내 사랑 내 곁에'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 노래 부르면서 가고. 제가 '퇴근길에만 울자', 그런데 (퇴근길이) 다행히 짧아서. (웃음) 그리고 또 가서 밥 해 먹고.
김수현 기자 : 지금은 좀 나아지신 거죠?
전준혁 발레리노 : 지금은 좋아요. 그때 배역도 좋게 나오지 않아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김수현 기자 : 무슨 배역이었는데요?
전준혁 발레리노 : 현대, 새로 안무하는 작품으로 아프리카 전통 춤에서 영감을 받은 춤이어서 굉장히 빠른 리듬과 행복한 에너지가 안무의 주 포인트였어요. (웃음) 옷도 거의 벗고 나오고요. 행복하게 추는 춤이었는데 저는 너무 불행해서.
김수현 기자 : 어떡해. 그래도 그 춤을 추시는 걸 보고 관객들은 행복한 에너지를 받은 거니까.
전준혁 발레리노 : 그래서 '아, 진짜 다행이다' 그랬죠.
김수현 기자 : 제대로 잘 추신 거네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