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에 빡 박히는 이슈 맛집 '귀에 빡!종원'. SBS 최고의 스토리텔러 김종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SK하이닉스의 실적이 또 기록을 세웠습니다. 1분기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겁니다. 영업이익률이 42%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TSMC에 맞먹고, 영업이익은 7조 4천억 원을 기록하면서 시장의 전망을 1조 원이나 뛰어넘었습니다. 바야흐로 SK하이닉스 전성시대인데, 정작 이런 실적이 발표된 당일 하이닉스의 주가는 떨어졌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한국의 가장 강력한 전략 자산은? 아마 현시점 기준 HBM이라는 반도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 세계 AI 시장에서 HBM은 반드시 필요한 필수 반도체입니다. 이걸 한국의 SK하이닉스가 반독점 형태로 공급하고 있거든요. SK하이닉스가 HBM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독점적으로 공급했던 게 한미반도체입니다. 독점과 독점 업체의 만남,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우군이었죠. 그런데 이 관계가 급격하게 틀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HBM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짝 설명하면, D램이라는 메모리 반도체를 아파트처럼 위로 차곡차곡 쌓는 겁니다. 이게 제조 기술이 상당히 필요해서 아직 삼성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잖아요. 이러다 보니까 이걸 만드는 장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장비를 TC본더라고 부르는데, 붙이는 장비라는 뜻이죠. D램을 위로 쌓아주고, 이걸 열이나 압력을 가해서 붙여주고, 이 과정에서 나노미터 정도의 흐트러짐조차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걸 잡아주는 역할까지 하는 장비입니다.

SK하이닉스가 2016년경에 HBM을 처음 연구 개발하고 생산을 하는 모든 과정을 한미반도체가 개발한 TC본더와 함께 했어요. 사실상 전 세계 HBM의 대부분은 한미반도체 장비로 생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사실상 전 세계 HBM의 장비 시장의 65%를 지금도 한미반도체가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SK하이닉스의 한미반도체가 단독으로 장비를 납품하던 이 시스템이 올들어 깨지게 됩니다.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 TC본더를 공급받으면서부터예요.
영원한 건 절대 없어...'독점' 같은 소린 집어 쳐(?)
지난 3월에는 210억 원씩 2번 계약을 (추가로) 하거든요. 불과 2주 차이를 두고 연달아서 계약이 두 번 이루어집니다. 이건 누가 봐도 SK하이닉스가 앞으로는 한화세미텍에 더 무게를 실어주겠다고 해석을 할 수 있겠죠. 지난달에 나온 한미반도체의 보도 자료를 한번 볼까요.
"후발주자인 한화세미텍과는 상당한 기술력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
"SK하이닉스로부터 수주 받은 한화세미텍도 결국에는 유야무야, 흐지부지하게 소량의 수주만 받아가는 형국이 될 것"
"SK하이닉스로부터 수주 받은 한화세미텍도 결국에는 유야무야, 흐지부지하게 소량의 수주만 받아가는 형국이 될 것"
'너희는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악담, 독설을 보도 자료로 낸 겁니다. 저는 사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기업이 이런 식의 보도자료를 낸 사례를 거의 본 적이 없는데, 1차 계약이 됐을 때까지도 참았던 한미반도체가 2차 계약이 딱 되고 나니까 지금까지 후발 주자였던 한화로 향했던 분노의 화살이 곧바로 자신의 우군이었던 SK하이닉스로 옮겨가면서 "25% 장비 비용을 올리겠다"라고 통보를 했고요.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TC본더라는 장비를 유지하고 보수하고 AS 해주던 CS팀을 전원 철수시켜 버렸습니다. 지난해 9월에 나온 한미반도체 보도 자료만 보더라도 'VVIP 고객사 하이닉스 전담 AS팀 만들었다' 이런 내용이 있거든요. 근데 1년도 안 돼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얼마나 심각하고 이례적인 일인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한미반도체의 예상치 못했던 강경 대응에 SK하이닉스도 상당히 놀라는 모양새예요. 왜냐하면 곧바로 한미 반도체를 찾아가서 물밑 협상에 들어갔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지금 AI 업체의 활황으로 HBM 반도체에 대한 주문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장비라는 게 워낙 섬세하고 예민해서 계속 손을 봐줘야 되기 때문에 CS 인력이 전원 철수를 하게 되면 지금 당장 생산 라인이 멈출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이러다 보니 물량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게 SK하이닉스가 직면한 첫 번째 문제고요. 한미반도체 매출의 60%가 SK하이닉스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사태가 장기화되는 건 한미반도체에도 결코 좋은 게 아니에요.
이렇게 양사 모두에게 좋을 게 없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례적인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이 사실은 SK하이닉스가 또 다른 공급처를 찾으면서잖아요. 근데 사실 SK하이닉스 정도 규모의 반도체 회사는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라도 장비 업체도 여러 군데로 넓혀가는 게 굉장히 통상적입니다. 한미반도체도 TC본더를 SK하이닉스에만 납품하고 있지 않아요. 미국의 경쟁사인 마이크론에도 납품하기 시작을 했거든요.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아니, 한미반도체는 마이크론에 납품하는데 우리는 다른 벤더사 거래하면 안 돼?' 이런 볼멘소리도 나오는데, 왜 이렇게 한미반도체는 이번 SK하이닉스의 행보에 분노를 하고 있는 걸까요?
한미반도체 주식은 개미들이 많이 몰려있는 대표적인 중소형 기술주로 꼽힙니다. 그런데 SK하이닉스의 행보는 한미반도체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지난해 6월에 한미반도체 주가가 올라가면서 시가총액이 16조 원을 넘어서 피크를 찍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3월에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에서도 장비를 납품받기 시작을 했다고 했잖아요. 이 이후에 한때 6조 원대까지 떨어졌어요. 1년도 안 돼서 시총이 10조 원이 빠진 겁니다.

주가가 이렇게 쭉 빠진 게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이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반도체 전반의 업황 등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어요. 하지만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이런 행보가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움직임에 따라 주가가 출렁거리는, 어떻게 보면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는 것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죠.
실제로 한미반도체가 주가 방어를 위해서 굉장히 긴밀하게 뛴 사례들이 있는데 올해 3월에 한국 주식시장의 공매도가 재개되기 이전에 실적 공시가 아니라 실적 전망을 공시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인 적이 있었어요. 이때 공시에 가장 주된 내용이 "해외 고객사 비중이 90%였다"라는 거였거든요. 하이닉스 아니어도 우리는 끄떡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계속해서 던진 거예요. 이 무렵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이 자기 돈 30억 원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기도 했습니다. '내돈내산' 할 만큼 우리 주식 끄떡없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내보인 행보로 해석이 됐었어요.
그런데 사실은 한미반도체에게는 주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은 이게 본론인데요.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얘기가 나와요. 기술 유출 문제입니다. 2011년에 한미반도체가 당시 자신들의 장비를 납품하고 있던 삼성전자를 상대로 '기술 탈취' 소송을 제기합니다. 이 소송에서 한미반도체가 다 이겼어요. 인정이 된 거죠. 삼성전자가 이때만 하더라도 공급처에게 소송당한 일이 거의 없는 일이다 보니까 굉장히 분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성전자가 한미반도체와의 거래를 거의 다 끊었거든요. 이러다 보니까 한미반도체의 창업주가 극대노를 했다고 합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삼성전자와 거래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라는 유훈을 남겼다는 '썰'도 굉장히 유명하죠. 그런데 최근에 한미반도체 장비를 쓰지 않고 있는 삼성전자만 아직 HBM 분야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굉장히 헤매고 있잖아요. 이러다 보니까 한미반도체가 통쾌하게 복수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만큼 한미반도체가 자사 기술 보완에 굉장히 예민한 기업인데 지금 한화세미텍하고 기술 유출 건을 놓고 또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어요. 2021년에 한미반도체의 직원이 한화세미텍으로 이적한 후에 한미반도체 측에서는 "우리 기술을 유출했다"고 2개의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 중에서 부정경쟁행위 금지 소송은 지금 1심, 2심 모두 한미반도체가 이겼어요.
이런 상황에서 하필이면 그 한화세미텍의 장비를 영원한 우군일 줄 알았던 SK하이닉스가 수주를 했다? 거기다 물량을 계속해서 늘려간다? 게다가 신설 공정에는 한화세미텍의 TC본더로만 채울 수도 있다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거든요. 이러다 보니까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는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중견 기업이 대기업에게 기술을 탈취당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 나갈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자존심의 문제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공급망 다변화한 게 그렇게 나쁩니까?"
사실 SK 하이닉스는 일찌감치부터 한미반도체와 헤어질 결심을 했던 것으로 보여요. 지금 나오고 있는 HBM의 가장 최선단 버전이 HBM3E입니다. 올해 연말쯤부터 이다음 단계인 HBM4를 양산할 거라고 각 회사들이 계획을 내놓고 있거든요. HBM4는 D램을 쌓아서 붙이는 방식이 지금과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이라고 하는데, 이 새로운 공정을 하려면 장비도 새로운 장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차세대 HBM4를 만들기 위한 장비를 각 사들이 개발하고 있는데 SK하이닉스가 지난해 한화세미텍을 차세대 공정 장비 연구 파트너로 선정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한미반도체는 대충 눈치챘을 거예요. SK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근데 마침 이때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의 기술을 다 따라오면서 엔비디아에 본격적으로 납품하기 시작을 했거든요. 한미반도체 장비를 구매해 줄 기업이 나타난 거예요. 이러다 보니까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도 마이크론과 파트너십을 더 공고히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얘기까지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게 궁금했어요. '지금까지 정말 손발이 잘 맞았던 한미 반도체를 제외하고 굳이 차세대 기술까지도 다른 회사랑 해야 할까? 한화가 그렇게 기술력이 뛰어난가?' 그래서 물어봤는데 'SK하이닉스의 구매팀이 한미반도체 실적을 보고 화가 났다. 이 돈 다 우리한테 벌어가는 거 아니야? 이참에 벤더사를 늘려야겠다라는 결정을 했다' 이런 얘기도 나온다는 얘기를 업계 관계자에게 들었습니다.
Q. SK하이닉스는 본인들도 최고 실적을 낸 마당에 한미반도체 실적이 좋은 게 왜 화가 날 일인가?
물론 화가 날 일은 아니죠. 아니, 남 돈 잘 버는 게 뭐 화가 날 일이야? 그런데 어떻게 해석해 볼 수 있냐 하면, 무조건 사 오는 단가를 낮추는 임무를 부여받는 곳이 구매팀입니다. 경쟁을 붙여서 가격을 깎아보겠다는 의도가 굉장히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다가 이것도 업계에서 나오는 얘기인데 한미반도체는 앞서 삼성과의 갈등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슈퍼 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회사거든요. 대체 장비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슈퍼 을'에 너무 휘둘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SK하이닉스 내부에서 나왔던 것 같아요.
Q. 한미반도체가 8년 동안 SK하이닉스에 제공하는 TC 본더 가격을 동결했다고 들었거든요. 납품업체는 그냥 ‘을’이라서 “네네”하고 따라주기만 해야 한다는 건지..
이게 그래서 어떻게 풀려 나갈지가 굉장히 업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부분이에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이 주도해 오던 HBM의 기술력이 미국으로 분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라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차세대 HBM4 공정 장비를 한미반도체는 스스로 연구 개발하고 있는데 파트너사가 필요할 거 아니에요? 아직까지는 공식화되고 있지 않지만 아마 마이크론하고 파트너십을 맺지 않겠냐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SK하이닉스와 한화세미텍, 그리고 한미반도체와 미국의 마이크론, 이렇게 양강 구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일이 불거진 후에 한미반도체 주가가 갑자기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틀어지면 한미반도체가 정말 오랜만에 삼성하고 다시 손잡는 거 아니야'라는 기대가 나왔거든요. 여기서 삼성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삼성은 사실 지금 이 판에 끼지도 못하고 있어요. 제가 삼성에 전화해서 물어봤습니다. "혹시 한미반도체랑 다시 일할 생각 있는지" 물어봤더니 "TC본더는 우리도 만들고 신카와(일본) 것도 쓰고 있어서 굳이 그럴 일은 없다"고 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 모르는 거죠. 삼성이 제대로 된 HBM 납품을 못 하고 있는 상황에서 TC본더라는 장비 기술력 세계 최고로 인정받은 한미반도체 제품을 납품받을 수만 있다면 나쁠 거 없어요. 나쁠 거 없는 게 아니라 천군만마를 얻는 셈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이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굉장히 궁금한 상황입니다.
한미반도체는 지금까지 이른바 극약 처방이라고 보이는 일까지 하면서 기업을 지켜온 강력한 중견 기업입니다. 이번에 SK 반도체와의 이 일이 또 한 번 신의 한 수가 될 것인지 아니면 자충수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쏠리고 있거든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