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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만 '아동 성착취물 만화' 처벌한다고? [사실은 A/S]

SBS 8뉴스의 팩트체크 코너 <사실은>을 통해 보도한 이슈와 방송 이후 달린 댓글 등을 통해 추가 제기된 의문점들을 다시 짚어보는 ‘사실은 A/S’입니다.
 
최근 <사실은>에서는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이른바 ‘아청법’은 게임물과 영상물을 중심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만화나 그림으로 표현된 아동 성착취물을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과 이를 개선하려는 법 개정 노력이 과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에 대해 해외 사례와 비교해 따져봤습니다.*
 
▶ "여기가 중국이냐" 아청법 개정안 철회…따져보니 반전? [사실은]
 
하지만, 보도 이후에도 의문점들이 추가 제기됐는데요. 어떤 반론들이 제기됐고, 이와 관련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Q1. 미국에서 정말 ‘아동 성착취물 만화’를 처벌한다는 판례가 있나?

미국 연법 제18편 1466A는 미성년자를 이용한 아동성착취물을 고의로 제작하거나 유포, 수령, 소지하는 자에 대한 처벌 규정입니다. 특히, 이 법조항에서는 미성년자가 성적으로 노골적인 행위를 하는 모습을 외설적으로 묘사한 그림과 만화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Section 1466A of Title 18, United State Code, makes it illegal for any person to knowingly produce, distribute, receive, or possess with intent to transfer or distribute visual representations, such as drawings, cartoons, or paintings that appear to depict minors engaged in sexually explicit conduct and are deemed obscene.
출처 : 미 법무부(U.S Department of Justice)

 


그럼에도 댓글 등을 통해 ‘법 내용은 이렇지만 실제 피해자가 있어야 처벌로 이어진다.’, ‘가상의 만화도 처벌한다는 판례가 있냐?’와 같은 주장들이 제기됐습니다.
 

취재파일 사실은AS

하지만, United States v. Whorley 사건을 보면, 이런 주장들이 근거가 없음이 또 드러납니다. Whorley는 지난 2004년 버지니아 주정부의 고용위원회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일본 아동 포르노그라피 만화 등을 주고받았다가 기소됐습니다. 그는 지난 2006년 지방법원에서 20년 형을 선고받자 항소했는데 실제 피해자가 없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실제 피해자가 없으니 처벌 대상도 아니란 겁니다.
 
그러나 미국 항소법원은 이런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이미 같은 법에서 아동 성착취물에 묘사된 미성년자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는 범죄 사실의 필수 요건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처 : 18. U.S.C 1466A-c) 연방대법원도 사실상 이 판결을 인정함으로써 만화로 표현됐든, 글로써 표현됐든 가상의 아동 성착취물도 형사처벌 대상임을 재확인했습니다.
 

Q2. 독일은 아동 성착취물 만화를 처벌하지 않는다?

댓글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의문점 중 하나는 독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만화로 된 아동 성착취물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댓글들이었습니다.

취재파일 사실은AS2

 이런 주장이 나오는 배경은 무엇일까. 독일에서는 만화나 그림으로 된 아동 성착취물에 대해 법원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허구적이라고 판단하면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처 :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그러나 이런 이유로 만화로 된 모든 아동 성착취물이 면죄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 형법에서는 아동 음란물이 실제와 가깝게 재현한 경우(‘Wirklichkeitsnah’)에는 처벌 대상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처 : 독일 형법 제184조) 이에 따라 만화나 그림으로 표현된 가상의 성착취물이라고 하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이 사실적이라고 판단한다면 처벌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출처 : 국제 아동 성착취 근절 단체 ECPAT, 2021)
 
따라서 독일에서는 만화로 된 아동 음란물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만화로 표현했든, 3D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든, AI를 이용했든 아동 성착취물이 실제와 가깝게 재현된 경우라면 처벌 대상이 됩니다.

독일 변호사 사샤 뵈트너

사샤 뵈트너 / 독일 변호사(형사법 전문가)
만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허구적인 묘사도 독일 형법 184조에 따라 아동 음란물에 해당하는 문서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허구적인 묘사라고 해도 (실제와 가깝게 재현해) 일반인 관점에서 현실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 ‘현실성(wirklichkeitsnähe)’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현실성이 처벌 대상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 배경은 무엇일까. 베를린 샤리테의 성 과학 및 성의학 연구소는 소아성애자가 AI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제작된 아동 포르노에 접근할 경우 성인과 미성년자간의 성적 접촉이 가능하고, 더 나아가 미성년자가 그런 접촉을 원한다고 믿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니까, 가상의 성착취물이라고 할지라도 실제와 가깝다면 진짜 아동 성착취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처벌 대상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는 독일은 물론,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 가상의 성착취물을 처벌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3. 일본은 만화로 된 아동 성착취물을 처벌하지 않는다?

앞서, <사실은> 보도에서는 미국, 독일 사례에 이어 일본 역시 만화로 표현된 가상의 성착취물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근거는 국회입법조사처의 검토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의 검토 보고서는 일본의 <아동매춘‧포르노법>을 근거로 “만화 등 실존인물이 포함되지 않은 창작물에 대해서도 규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아동매춘‧포르노법> 제2조(정의)
⓵ 이 법률에서 ‘아동’이란 18세 미만의 자를 말한다.

⓷ "아동 포르노"라 함은 사진, 전자기적 기록 등의 매체에 의해, 다음 중 하나에 해당하는 아동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인식 가능한 방법으로 묘사한 것을 말한다.
1. 아동이 상대방이거나 아동에 의해 행해지는 성교 또는 이에 유사한 행위.
2. 타인이 아동의 성기를 만지거나 아동이 타인의 성기를 만지는 장면으로 성욕을 자극하거나 흥분시키는 것.
3. 의복을 전부 또는 일부 착용하지 않은 아동의 신체 중 성적인 부위(성기, 항문, 엉덩이, 가슴 등)가 노출되거나 강조되어 성욕을 자극하는 것.

이때 ‘전자기적 기록 등의 매체에 의해 시각적으로 인식 가능한 묘사물’에는 당연히 CG, 애니메이션, 3D 렌더링, 디지털 드로잉 등에 의한 창작물도 포함됩니다. 즉, 이 법 조항만 보면 만화로 된 가상의 창작물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법 적용은 달랐습니다. 지난 2014년 법 개정을 통해 아동 음란물을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됐지만, 당시 일본 의회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CG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취재파일 사실은AS 4
국제 사회는 즉각 일본이 “아동 음란물의 허브가 될 것”이라며 비판적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UN 아동 보호 특사 또한 아동 음란물에 해당하는 만화 콘텐츠는 반드시 금지돼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당국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9년 UN에 ‘아동 음란물의 범위가 실재하지 않는 아동을 대상으로까지 확대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실재하는 아동을 표현하는 경우에 한하여” 아동 음란물로 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Q4. 일본은 왜 가상의 아동 성착취물에 대해 처벌하지 않는가?

SBS 보도 내용과 달리, 일본 정부가 가상의 성착취물을 아동 음란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현행 ‘아청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일본과 무관하게 미국과 독일, 스위스 등 주요 국가들은 가상의 성착취물도 아동 음란물로 보고 처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왜 일본이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가상의 성착취물에 대해서 관대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인지를 추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일본의 <아동매춘·포르노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는데, 이를 통해 그 배경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아동매춘‧포르노법> 제3조(적용상 주의)
이 법률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학술 연구, 문화예술 활동, 보도 등과 관련된 국민의 권리 및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하며, 아동에 대한 성적 착취 및 성적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고 그 권리를 옹호한다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이를 다른 목적을 위해 남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즉,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사생활 등의 권리는 물론, 아동 음란물과 서브 컬쳐 사이 어딘가에 애매하게 자리 잡은 일본의 로리콘* 문화와 산업을 고려한 결정이었단 점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로리타 콤플렉스의 일본식 줄임말로 어린(혹은 어려 보이는) 소녀 캐릭터를 이용한 외설적인 창작물 장르.
 
실제로 영국의 BBC는 <왜 일본은 아동 포르노 만화를 금지하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에서는 아동 음란물을 연상케 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사회 일부 구성원의 독특한 취미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라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입법으로 수많은 종사자와 소비자 전부를 범죄자로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평가했습니다.

취재파일 사실은 AS 5

Q5. 우리가 보호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미국과 독일은 아동 보호에 초점을 맞췄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피해자가 없는 가상의 아동 성착취물도 처벌 및 규제가 가능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표현의 자유와 로리콘 문화 및 산업에 더 무게를 뒀기 때문에 가상의 아동 성착취물을 처벌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무엇을 우선적으로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답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이미 아청법 도입을 통해 아동 보호라는 가치를 우선하고 있습니다. 이런 입법 취지에 맞춰 우리 법원은 가상의 성착취물이라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일본 음란만화를 스캔한 이미지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유포했다가 아청법을 적용한 판례도 쌓이고 있습니다. 다만, 처벌 대상을 게임물 또는 통신 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한정하고 있어 입법 미비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의 법 개정안은 이런 기형적인 입법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한 만화인 동호회에서 ‘어린이 런치세트’라는 제목으로 아동 성착취물을 연상케하는 창작물을 전시하고 판매했음에도 현행 법체계에서는 아청법을 적용할 수 없어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것입니다. 기형적인 입법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지, 새로운 영역으로 처벌과 규제의 칼날을 확대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럼에도 이에 반대한다면 이제는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어린이 런치세트’와 같은 아동 성착취물이 과연 서브 컬쳐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로서 온전히 보호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이런 질문들에 과연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작가 : 김효진 / 인턴 : 조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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