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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 임명이 이재명 전 대표 재판의 변수가 될까? [취재파일]

한덕수-헌법재판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지명했습니다. 전례 없는 일입니다. 위헌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헌재가 판단하겠지만 헌정질서에 큰 충격을 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제시한 개념을 활용하자면,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적 자제 (institutional forbearance)'를 무시하고 모호한 범위에 있는 권한까지 최대치로 행사하는 '헌법적 강경 태도(constitutional hardball)'를 취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한덕수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이재명 전 대표 재판에 영향 줄까? 

하지만 당장 더 논란이 되는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헌법재판관 임명이 대선과 관련된 정치적 현안에 미칠 영향입니다. 그중에서도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 형사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할 경우 이재명 전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 진행에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이재명 전 대표의 형사재판 진행과 관련된 최대 쟁점은 헌법 84조 해석 문제입니다. 헌법 84조는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여기에서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기소(起訴) 뿐만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형사재판의 진행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기소만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해석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넓게 해석하면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형사재판이 정지될 것이고, 좁게 해석한다면 이미 시작된 형사재판은 대통령 임기와 관계없이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명확한 기준이나 선례는 없습니다. 만약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헌법 해석을 통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누가' 헌법 해석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입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관은 두 곳입니다. 법령의 위헌 여부 등을 심사할 권한을 가지고 있는 헌법재판소, 그리고 법령 적용에 대한 최종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자 이재명 전 대표의 사건을 재판하고 있는 곳인 대법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판단에 따라 헌재 개입 가능성 달라져

일각에서는 헌법 해석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헌재가 최종 권한을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단계를 건너뛴 이야기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헌재가 최종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행사하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헌재가 헌법 해석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 문제와 관련해 헌법소송이 제기될지 여부가 대법원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재는 아무 조건 없이 헌법에 대한 해석이나 지침을 선제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닙니다. 헌법재판을 통해서만 의견을 밝힐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에는 5가지 종류가 잇습니다. 즉 법원의 제청에 의해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위헌법률심판', 고위 공직자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탄핵심판',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판단해 정당 해산 여부를 결정하는 '정당해산심판',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사이에 발생하는 권한 다툼을 판단하는 '권한쟁의심판', 그리고 국가 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입니다. (헌법재판소법 제2조 등 참조) 이 중 어느 한 가지 형식으로 헌법소송이 제기된 경우에만 헌재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재명 전 대표의 형사재판과 관련해 제기된 헌법소송은 없습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헌재가 이재명 전 대표의 형사재판과 관련된 헌법적 쟁점에 대한 판단을 밝힐 수 없습니다. 반면 대법원은 이재명 전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재판을 계속 진행할지 아니면 정지할지는 1차적으로 대법원 재판부가 판단할 문제가 됩니다. 헌재가 개입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은 대법원이 형사재판 진행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린 이후입니다. 일단 대법원이 형사재판 진행과 관련한 판단을 내린 후, 대법원의 판단과 관련해 헌법소송이 제기되는 경우에만 헌재가 헌법 해석에 대한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법원의 판단과 헌재의 권한 행사 사이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만약 대법원이 대통령 임기와 관계없이 재판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헌법소송이 제기되면서 헌재가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대법원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헌법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헌재가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작아집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법원

① 대법원이 재판을 계속 진행할 경우 - 헌법재판이 변수로 작용할 듯

먼저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대법원 재판부가 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3심) 절차를 계속 진행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대법원이 이미 시작된 형사재판의 진행과 관련해서는 헌법 84조에 규정된 불소추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 대법원이 재판을 계속 진행하다면 헌법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황희 교수는 "(이재명 전 대표 측 입장에서는) 대법원이 헌법 84조의 불소추특권을 잘못 해석해서 국가기관인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권한쟁의심판을 대통령이 청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만약 대통령으로 취임한다면 '이재명'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국가기관의 자격으로 또 다른 국가기관인 대법원을 상대로 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권한쟁의심판이 제기된다면 헌재는 대법원이 형사재판을 계속 진행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는 과정에서 헌법 해석의 기준을 밝힐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형사소송법의 "공판절차 정지" 조항과 관련해 헌법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입니다. 이황희 교수는 "(만약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대법원이 형사재판을 계속 진행한다면 이 전 대표가 형사소송법 306조의 입법 부작위(不作爲)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라고 말합니다. 

형소법 306조는 "공판절차의 정지"에 대한 규정입니다. 법원이 공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는 사유로 "피고인이 사물의 변별 또는 의사의 결정을 할 능력이 없는 상태"거나 "피고인이 질병으로 인하여 출정할 수 없"는 경우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소법 306조가 "피고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경우"를 공판절차 정지 사유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명시한 헌법 84조의 취지를 반영하지 않은 부작위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헌재가 헌법불합치 판단을 해도 해당 법률의 효력이 정지될 뿐 이재명 전 대표의 재판이 곧바로 정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

공판절차 정지 사유 규정한 형소법 306조 개정하면?

하지만 거꾸로 국회 다수당이 선제적으로 형소법 306조를 개정해 "피고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경우" 등을 공판절차 정지 사유로 추가하는 방안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형소법은 헌법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에서 통과된 후 대통령이 거부하지 않으면 개정할 수 있습니다. 국회 다수당이 헌법 84조의 취지를 법률에 명확히 반영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피고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경우"를 공판절차 정지 사유로 추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법 시행 시 재판 중인 사건에도 적용한다'는 부칙을 병기할 경우 소급 적용 논란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만약 형소법이 이런 방향으로 개정된다면 대법원 판단과 무관하게 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은 정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정 법률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헌법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헌법소원입니다. 다만 원고 자격을 갖춘 당사자가 누구인지 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법률 개정으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이 헌법소원의 원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권한쟁의심판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형사재판의 당사자인 검사 또는 대검찰청이나 법무부가 법률을 개정한 국회를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도 이론적으로는 상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부 수반인 현직 대통령에게 유리한 방향의 법 개정에 대해 행정부 소속인 검찰 등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재명 전 대표 관련 형사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 중 어느 한 곳이 위헌법률심판을 헌재에 제청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된다면 법률의 위헌성 심사과정에서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범위에 대해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2가지 헌법재판, 탄핵심판이나 정당해산심판은 관련성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전망에 대한 반론도 가능합니다. 현직 대통령이 법원에 대한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전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헌법재판소법이 금지하고 있는 '재판소원(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에 해당하기 때문에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헌재가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각하하지 않고 대법원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결정하더라도, 대법원이 헌재 결정을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도 헌재가 법원 재판을 취소한 사례가 3번 있는데, 당시 대법원은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공판절차 정지와 관련된 형소법 306조 개정도 가상의 시나리오일 뿐이고 현실성이 부족한 이야기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했던 이유 등에 비춰볼 때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경우에도 대법원이 형사재판을 계속 진행한다면 헌법소송이 제기되면서 헌재가 최종적 헌법 해석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은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2명 임명은 전체 헌법재판 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이재명

② 대법원이 재판을 정지할 경우 - 헌법재판이 변수 될 가능성 낮아

다음으로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대법원이 형사재판을 정지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헌법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헌재에서 헌법재판을 통해 최종적 헌법 해석 권한을 행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재판소원)은 헌법재판소법이 금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법원 재판부가 헌법 84조 해석에 따라 현직 대통령에 형사재판은 정지된다고 판단했다고 해도, 이 판단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법률이 금지하고 있는 재판소원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헌재는 과거에 재판소원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법률에 대한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의 효력(기속력)을 법원이 무시하고 결정을 선고하자, 헌재가 해당 법원 재판을 취소한 사례가 3건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후 대법원은 헌재의 재판 취소 결정을 또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헌재가 법률에 대해 위헌이라고 결정했음에도 법원이 헌재 결정을 무시하고 판결한 경우에 대한 재판 취소이었습니다. 헌재의 위헌 여부 판단이 없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소송 진행 절차에 대해 지휘한 사실에 대해 헌재가 재판권을 행사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대법원이 형사재판을 정지하겠다고 판단할 경우 '법원의 결정'이라는 형식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단순히 재판 진행을 멈추면 되는 것이지, '지금부터 재판 진행을 정지하겠다.'라는 법률적 의미의 '결정'을 선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엄청난 사회적 관심이 쏠릴 것이 예상되니 대법원이 재판을 정지하겠다는 입장문 등을 발표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는 대외적 입장 표명에 불과한 것이지 법원의 결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을 법원이 무시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법원 결정에 대해 헌재가 판단한 사례도 없는데, 법률적 의미의 '결정'이 아닌 소송지휘권 행사에 대해서까지 헌재가 심사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복수의 법률가들 의견입니다.

나아가 설사 소송지휘권 행사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하겠다고 헌재가 뛰어든다고 가정하더라도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한 형사재판이 중지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 즉 대법원 판단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원고 자격을 갖춘 사람이 존재할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임의의 국민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이나 예상하지 못 한 기발한 법 논리가 개발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설사 헌재가 '결정'이 아닌 대법원 판단에 대해 심판하겠다고 나서더라도 당사자로서의 자격을 갖춘 헌법소원 원고를 규정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국 대법원이 이재명 전 대표 형사재판을 정지하겠다고 판단한다면 이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될 가능성은 낮은 셈입니다.

대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재판소원)이 불가하다면 다른 형식의 헌법재판이 청구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우선 권한쟁의심판 가능성은 낮습니다. 대법원이 재판을 정지할 경우 피고인인 이재명 전 대표에게 아무런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권한쟁의심판 청구 이유가 없습니다. 재판의 반대편 당사자인 검사나 대검찰청 또는 법무부가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할 가능성은 이론적으로는 상정해 볼 수 있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행정부 수반인 현직 대통령에게 유리한 법원 판단에 대해 행정부 소속인 검사나 대검찰청 등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 밖의 3가지 헌법재판,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은 이 문제와 직접 관련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결국 대법원이 형사재판을 정지한다면 이와 관련해 헌법소송이 헌재에 제기될 가능성이 낮습니다. 헌법재판을 통해서만 견해를 밝힐 수 있는 헌재가 최종적 해석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법원이 형사재판을 정지한다면,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더라도 이재명 전 대표 재판과 관련한 변수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모스 마이오룸'의 붕괴와 공화정의 몰락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새로운 헌법재판관 임명은 이재명 전 대표의 형사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대법원이 형사재판을 계속 진행한다면 헌법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새로 임명된 헌법재판관 2명은 결론을 좌우할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대법원이 형사재판 절차를 정지한다면 헌법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낮아서 헌법재판관 임명이 변수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전례 없는 방식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에 가할 충격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이 헌법을 위배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도적 자제 (institutional forbearance)'를 무시한 행위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법률이 모든 행위를 명시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으니 헌법적 관례에 따라 과도한 권한 행사를 절제해야 한다는 원칙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제도적 자제 없이 민주주의와 공화정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고대 로마 정치를 다룬 책인 《독재의 탄생》(에드워드 와츠 지음)이나 《폭풍 전의 폭풍》(마이크 덩컨 지음)에서는 '모스 마이오룸(mos maiorum)' 붕괴가 로마 공화정이 몰락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모스 마이오룸은 법률로 규정되진 않았지만 로마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존중되어 왔던 관례를 가리킵니다. 호민관이 원로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회를 통해 법률을 제정하거나, 다른 호민관의 권한을 민회 의결로 박탈한 사건 등이 모스 마이오룸이 무시된 사례로 제시됩니다. 이런 행위가 명백한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모스 마이오룸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았고, 내란과 내전이 이어졌으며, 결국 공화정의 몰락과 아우구스투스의 원수정(元首政,  principatus)이라는 독재로 귀결됐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모스 마이오룸을 먼저 훼손한 것이 어느 쪽인지 따져보자는 정치적 논쟁은 가능할 것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도 그런 논쟁이 전개됐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선을 넘었는지를 따지는 일이 아니라, 누가 먼저 서로를 파괴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민주주의와 헌정질서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인지입니다. 로마에서 모스 마이오룸 붕괴는 내란과 내전, 독재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 초입에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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