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내가 낸 산불 기부금, 얼마나 피해 지원에 쓰일까 [사실은 A/S]

기부금에 대한 불신은 무엇을 먹고 가짜뉴스가 됐나

[취재파일] 내가 낸 산불 기부금, 얼마나 피해 지원에 쓰일까 [사실은 A/S]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뒤 사회 곳곳에서 기부의 손길이 이어지면서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해 특별 모금한 사례 중 사상 최대 금액인 1,159억 원의 기부금이 모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장 큰 아픔을, 가장 큰 나눔으로 치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최근 기부에 대한 가짜 뉴스가 무분별하게 퍼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낸 '기부금 대부분이 기부단체 운영비 등으로 쓰이면서 피해 주민에게 돌아가는 건 정작 1/10 수준'이란 내용입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은 지난 7일 이런 억측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검증해 보도했습니다.

▶관련기사 : 10%만 이재민에게? '산불 기부금' 따져보니 (4/7 8뉴스)

하지만, 보도 이후에도 댓글 등을 통해 기부금에 대한 가짜 뉴스는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됐습니다. 사회 한편에서는 성숙한 기부 문화가 조성돼 피해 지원에 힘을 보태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부에 대한 불신이 피해 회복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은 이런 불신의 이면에서 어떤 질문이 반복해서 제기되고 있고, 어떻게 가짜뉴스로 이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 질문들에 대한 올바른 답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따져봤습니다.
 

윤미향 전 의원 사건이 생각나서…기부해도 될까요?


윤미향 전 국회의원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으로 활동한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입니다. 지난 21대 총선에선 비례대표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선 직후인 2020년 5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에서 기부금 횡령 의혹이 제기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검찰 수사로도 이어져 지난해 11월 횡령 등 일부 혐의에 대한 유죄가 최종 확정됐습니다. 그 결과 기부금 유용 가능성을 논할 때 윤 전 의원의 사례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번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해 모인 기부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윤 전 의원의 모금 활동은 관할 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윤미향 전 의원 법정 출석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윤 전 의원 측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기부금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소속된 후원회원으로부터 가입금과 회비 등을 받은 것이므로 기부금품법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이번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해 특별 모금에 나선 대표 기부단체 3곳(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대한적십자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은 관계 당국에 모금 활동 일체를 등록한 '기부단체'들입니다. 이에 따라 기부금 모집부터 사용 내역까지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물론,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당국으로부터 철저하게 검사받고 있습니다(사용내역 공개·회계감사 의무).

미등록 상태에서 모금 활동을 하고, 이 중 일부를 횡령해 유죄가 인정된 윤 전 의원과 이번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해 특별 모금을 진행하고 있는 기부단체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윤 전 의원의 사례는 성숙한 기부 문화를 위해선 적법 절차를 준수하고 있는 단체들에 기부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
법원은 후원 회원으로부터 받은 가입금과 회비 등은 '소속원'에게 받은 것이기에 불특정 다수로부터 모금 받은 기부금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검찰이 기소한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무죄로 판단.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후원금을 납득할만한 설명과 객관적 자료 없이 사용한 경우에는 횡령 혐의 인정.
 

기부금으로 단란주점 갔던 단체 아니야?

그렇다면, 당국 등록을 마쳤다고 해서 제대로 된 기부단체일까? 이런 불신은 사실 기부단체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대한 정기 감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단란주점과 유흥주점, 노래방에서 업무용 법인카드를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워크숍 비용을 집행한다면서 정작 워크숍 목적에 맞지 않게 스키장, 레프팅, 바다낚시에 부당하게 사용한 점 등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취재파일] 내가 낸 산불 기부금, 얼마나 피해 지원에 쓰일까 [사실은 A/S]_3

벌써 1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이 뉴스는 여전히 시민들의 뇌리에 박혀 내가 낸 기부금이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것 아니냔 불안과 의심을 낳고 있습니다.

하지만 15년 전 벌어진 일들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2010년 이후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국정감사 등 외부 감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기부자와 기부를 받는 대상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시민참여위원회를 통해 모든 기부 사업의 지출 내역도 분기마다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후속조치로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청렴도 평가를 받기 시작했는데요. 꾸준히 자정 노력을 한 덕분에 평가 4년 만인 지난 2015년 청렴도 점수는 8.6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당시 전체 공공기관의 평균 점수인 7.78점을 크게 상회했습니다.
 

기부금의 9할은 기부단체 운영비, 인건비로 다 빠져나간다?


기부금을 잘 집행한다고 해도 불필요한 비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부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모집과 집행 과정에서 드는 인건비 등 부대비용도 커지면서 실제 피해 이재민에게 전달되는 건 기부금 중 1할에 불과할 것이란 내용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부금 대부분이 부대비용으로 빠져나갈 일은 없습니다.

산불 피해 현장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산불 피해 지원 특별 모금'처럼 사전에 기부 목적을 명시할 경우 다른 용도로 기부금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대비용으로 기부금 중 일부를 쓸 수 있는데, 법에서는 기부금이 200억 원을 넘어설 경우 10% 이내에서 인건비나 운영비, 홍보비 등 각종 부대비용을 충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부대비용에 많이 들어가도 기부금의 10%를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두고 "아니. 10%나 기부단체가 떼어간단 말이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여기서 10%는 어디까지나 한도일 뿐, 기계적으로 10%를 떼어간단 의미는 아닙니다.

지난 2022년에는 동해안 지역에서 산불이 크게 발생했고, 당시에도 전국에서 약 800억 원의 기부금이 모였습니다. 이때 대한적십자사는 한 해 동안 121억 원을 모금 받았는데, 이 가운데 인건비나 홍보비 등 부대비용으로 나간 건 3.5%인 4.2억 원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기부 목적에 맞게 사용됐습니다.(출처 : 감사보고서)

[취재파일] 내가 낸 산불 기부금, 얼마나 피해 지원에 쓰일까 [사실은 A/S]_5

이에 비추어보면 이번 산불로 모인 기부금도 95% 이상은 오로지 산불 피해 지원 및 복구에 사용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법이 잘 돼 있어도, 기부단체를 믿을 수 있나?


법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더라도, 형식만 법을 준수하고 실질적으로는 피해 이주민에게 도움 되는 방식이 아니라 제3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기부금을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의심도 상당수 댓글에서 나타났습니다. 가령, 피해 이주민에게 별로 도움도 안 되는 물품을 기부금을 이용해 잔뜩 구매해 정작 물품 공급업체만 이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심은 수백억 원의 기부금을 기부단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전제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행정안전부는 <재해구호계획 수립지침>에 따라 기부단체, 피해 지자체, 재난 및 기부업무 관련 전문가 등을 총망라하는 기부금협의회를 개최합니다. 이번 산불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미 행안부 주도로 기부금협의회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한 양식장에서 육군 50사단 장병들이 산불로 피해를 본 양식장 복구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부금협의회는 기부금이 중복 또는 누락 없이 공정하게 이재민에게 지원될 수 있도록 지급 기준과 배분 항목 등을 협의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쉽게 말해 기부금협의회를 통해 큰 틀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면 개별 기부단체는 배분위원회를 구성해 심의를 거쳐 배분 내용을 최종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이때 기부단체 별로 설치되는 배분위원회 역시 기부자 대표, 외부 전문가, 언론인 등으로 구성돼 불필요한 물품을 대량으로 사서 피해 이주민에게 지급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또, 기부금품은 지자체 등을 거치지 않고 개별 피해 주민에게 직접 지급됩니다. 즉, 지급품을 지자체 등 제3자가 가지고 있다가 다른 용도로 써버리는 가능성도 원천차단 되는 것입니다.

기부라는 선의가 왜곡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짜인 법 위에서 2중, 3중으로 된 협의체를 거쳐 기부금은 피해 주민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의 잘못과 거기서 비롯된 오해가 기부금에 대한 무분별한 가짜 뉴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없으니 믿어 달라.'는 호소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따라서 법과 제도, 그리고 그 이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부단체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기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비로소 신속한 피해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