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보다 약이 많고, 약보다 한숨이 많은' 노인을 과감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운 뮤지컬이 있습니다. 바로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인데요, 개그맨 김준현 씨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이 뮤지컬은 치매 노인이 겪는 환각을 '이상한 나라'에서 펼쳐지는 여정으로 풀어내는데요, 웃기다가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의 소중함과 '늙는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됩니다. 주인공 춘자 씨는 '이상한 나라'에서 계속 자신의 소원을 찾아 헤매는데요, 왜 이 소원은 '하얀 소원'일까요?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오미영 씨는 왜 치매 노인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오미영 씨와 춘자 씨 역 배우 서나영 씨 이야기 직접 들어보세요.
골라듣는 뉴스룸 커튼콜, 오미영 씨와 서나영 씨가 출연한 259회 풀영상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수현 기자 : '이렇게 써야겠다, 이런 얘기 한번 써봐야 되겠다' 했던 계기가 있으셨어요?
오미영 작·연출가 : '치매 환자들이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 환각의 정체가 뭘까' 궁금했었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연극성, '그것이 무대화되었을 때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있었어요. 그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들을 했었고 그러기 위해서 치매에 대한 공부들을 많이 했어요.
얼마 전에 노인 요양병원의 치매 전문 의사가 공연을 보러 오셨는데 '치매의 본질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인 것 같다' 평가를 해 주시고, 본인이 쓴 책도 보내주시고.
김수현 기자 : 아, 그래요.
오미영 작·연출가 :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공연을 교재로 사용하고 싶다고 말씀도 해 주셔서 재미있었어요.
김수현 기자 : 치매의 본질이 뭘까요?
오미영 작·연출가 : 그분이 말씀하시기로는, 관객들은 다 각자 자기 입장에서 보잖아요.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이상하지 않게 표현한 것 같다. 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 같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나쁜 치매' '착한 치매' 이런 이야기들 하잖아요. 그것은 밖에서 보는 사람들의 입장인 거고, 겪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다 이유가 있는 행동인데.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 같다는 말씀을 의사 선생님이 하셨어요.
김수현 기자 : 저는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환상의 세계에서 모험을 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제목을 처음에 듣고서는. 근데 그런 느낌도 좀 있잖아요. 진짜 이상한 나라에 빠져들어서 온갖 환상의 존재들을 만나고. 계속 소원을 찾으러 다니는 거잖아요. 근데 왜 '하얀 소원'인가요?
오미영 작·연출가 : '기억이 하얗게 사라졌다', '나 정말 하얗게 까먹었네' 이런 이야기들을 하잖아요. '머릿속이 하얗다' 이런 이야기들을 할 때. 근데 이 노래가 이때 한 번 나오고 리프라이즈 돼서 뒷부분에 '하얀 엄마를 찾아서'에 또 한 번 나오거든요. 그때는 '고춘자가 노인 유괴를 당한 게 아닐까?' 그래서 가족들이 너무 걱정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또 한 번 나와요.
그런데 하얀 소원을 찾을 때는 희망적인 하얀 색깔의 이미지들, '몽실몽실 비누 거품', '뭉게구름', '락스물에 담가 빤 빤스' 이렇게 뽀실뽀실하고 예쁜 이미지들이 나온다면, 뒷부분에는 '부슬부슬', '비듬', '구겨진 종이', '행주', '깜빡거리는 형광등' 이런 아련하고 슬프고 쓸쓸한 이미지의 하얀 색깔들을 좀 가사에 녹여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 그거 앞으로 가서 보시게 되면 '아, 이렇게 가사가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쨌든 저렇게 하얀 소원을 계속 찾으러 다니는데(웃음). 근데 앞에 '우리의 소원은' 그거 나오는 거 보고 또 울컥했어요. 소원 얘기 나오면 항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웃음). 자동으로.
이병희 아나운서 : 항상.
서나영 배우 :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를 거예요.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요.
이병희 아나운서 : 저희는 그냥 자동이죠, 자동.
서나영 배우 : 자동이죠, 그냥 바로(웃음).
김수현 기자 : 어쨌든 그래서 막 웃기다가, 이 가족들의 사연이 나오고 하면서 숙연해지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데.
이병희 아나운서 : 맞아요.
김수현 기자 : 어떠세요? 많이 우시잖아요, 공연하시면서도.
서나영 배우 : 이제 좀 그만 울라고 친구들이 그러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사연이 있고 아픔이 있는 캐릭터다 보니까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마음에서 걸리는 건 있는 것 같아요. 평생.
이병희 아나운서 : 막 웃다가 뒤에는 또 막 울고 그러니까 제 옆에 있는 남학생도 막 울고.
서나영 배우 : 그래도 좋은 게 금방 또 누가 나와서 또 깨지고 좀 울다가도 웃게 해 주고 저도 연기를 계속 슬프게만 하지 않고 그다음에는 좀 웃겨야 되고 이런 게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가사가 참 마음에 와닿아요. 어떻게 쓰신 거예요?
오미영 작·연출가 : 어떤 것들은 제가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쓴 부분들도 있고 어떤 거는 엄마가 하시는 말씀을 받아 적은 것들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너무 생생해서. '약보다 한숨이 많아서,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처럼 쓸쓸해요'
이병희 아나운서 : 부르시면서는 어떠세요?
서나영 배우 : 가사가 매번 새로워요. 진심으로 그냥 그렇겠거니 하다가 어느 순간 이게 내 얘기고 이런 것들이 있어요. 꼭 캐릭터의 말이 아니라 내 말이 되는 순간들이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누구나 한 번씩은 겪어야 되는. 나이 드는 게 꼭 슬픈 것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 게 두렵다 이런 얘기들 하시잖아요.
김수현 기자 : 그리고 또 너무 오래 살까 봐.
서나영 배우 : 맞아요. 두렵고 또 혹시 자식들한테 폐를 끼칠까 봐. 이런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의 마음은 있어서 '난 안 그래, 난 깔끔하게 갈 거야' 아무리 이렇게 생각해도 그런 게 있더라고요. 이렇게 아픈 일인지.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 막 웃고 폭소가 터지다가 또 울리다가, 웃다가 울다가. '사람 사는 게 그런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오미영 작·연출가 : 작가가 조울이 심해서.
김수현 기자 : 항상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항상 안 좋기만 한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이 작품 이전에도 아까 '한밤의 세레나데'도 말씀하셨고 '식구를 찾아서' 얘기도 했지만 여성들이 나오는 이야기 그리고 가족 이야기를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오미영 작·연출가 : 그거는 사실 저 혼자만의 사명 같은데, 연기 잘하는 여자 배우들이 굉장히 많은데 여성 창작자로서 '여자 배우들이 멋있게 연기할 수 있는 판을 잘 깔고 싶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은 이게 상업적으로 도움이 되는 생각은 아닐 수도 있고요.
그전에는 훨씬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은 멋있는 여자 캐릭터들 되게 많이 나왔잖아요. 한 20년 전만 해도 안 그랬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다양한 여자 캐릭터들을 만들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고, 동시에 저한테 영감을 주는 분들이 가족들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다 보니 가족 이야기들이 많이 담겼던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그러면 공연 보고 사람들에 따라서 또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도 있고 그런데, 그래도 작가로서 연출가로서 그리고 출연하신 배우로서 '이 공연을 보고 이거 하나는 마음에 담아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다면?
서나영 배우 :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랑. 사랑하기만 해도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더 열심히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
오미영 작·연출가 :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게 되잖아요. 그날이 올 때 너무 힘들지 않게, 당연히 힘들겠지만 너무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하루하루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