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미국의 유산(Legacy)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회적 유산들은 특히 소프트파워로서 미국의 슈퍼 파워를 상징해왔습니다. 83년 역사의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그리고 114년 역사의 윈터가든 극장, 97년 역사의 CBS 방송, 57년 역사의 뉴스 매거진 프로그램 《60분》(60 minutes)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조지 클루니도 어느덧 60대 중반이 됐으니 어느 정도 ‘유산’이 됐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조지 클루니는 미남의 대명사다. 한때 『피플』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순위에서 1위를 했다. 조지 클루니의 아버지는 미국 신시내티 지역 방송사(WKRC)의 기자이자 앵커였다. 클루니는 어린 시절부터 방송국을 드나들며 아버지가 읽을 구식 텔레 프롬프터의 기사를 넘겨주곤 했다. 그가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 2005)이라는 저널리즘 영화를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 영화로 조지 클루니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6개 부문 후보로도 올랐다.
이 영화가 지난 3일 연극으로 재탄생해서 브로드웨이 윈터가든 극장에서 정식 개막했다. 영화 개봉 20년 만이다. 역시 조지 클루니가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주연까지 맡은 이 연극은 정식 개봉 전 일곱 번의 프리뷰 공연만으로 약 48억원을 벌어 브로드웨이 주간 연극 흥행 기록을 세웠다. 뮤지컬 《캣츠》를 장장 25년 동안이나 무대에 올린 뉴욕의 윈터가든 극장은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극장이다. 1928~33년에는 워너브라더스의 극장이기도 했어서 영화와도 인연이 깊다.

조지 클루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프 대니얼스(미드 《뉴스룸》에서 앵커 역을 맡았던 배우), 데이비드 스트라탄 등이 나오는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은 매카시즘에 맞선 미국 언론인들의 직업 정신을 보여주는 영화다.
1950년대 초 중반 미국에는 매카시즘 광풍이 불었다. 위스콘신주 상원의원 매카시는 막무가내식으로 무고한 군인, 공무원, 일반인 등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마녀 사냥했다. 피해자들의 인생은 파괴됐다. 당시 CBS 방송의 주간 시사 프로그램 《씨 잇 나우》(See It Now)의 앵커인 에드워드 머로우와 제작진은 방송사 안팎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매카시즘을 정면 반박하는 방송을 내보내 매카시즘이 종언을 고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조지 클루니는 미국이 이라크전을 시작한 2000년대 초반 이 영화를 착안했다. 언론이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은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굿 나잇 앤 굿럭》은 20년 전에 언론의 제 구실에 대해 물은 영화였는데, 지금의 미국을 보면 그 시절조차 양반이라고 할만 하다. 조지 클루니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부(三府)가 실패할 때라도 사부인 언론(fourth estate)은 성공해야 한다고, CBS의 뉴스 매거진 프로그램 《60분》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리고 미국(저널리즘)의 오늘을 이렇게 증언했다.
진실은 점점 포착하기 어려워지고 있고 사실(fact)은 협상 대상이 됐습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무려 83년 역사의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하루 아침에 사실상 폐국해버렸다. VOA는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선전 선동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다. (설립 목적과 방송 내용상 그럴 수 밖에 없는 기관이다) 하지만 VOA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트럼프는 예산과 조직을 축소하는 행정 명령을 발동했고 1천 3백여 명의 VOA 직원들이 지난 달 유급 휴가에 들어갔다.
트럼프의 화를 북돋운 것은 지난 달 12일 백악관에서 열린 아일랜드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일지도 모르겠다. VOA의 백악관 출입 기자 팻시 위다쿠스와라는 아일랜드 총리에게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 말은 들은 아일랜드 총리가 입을 떼기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한 뒤 질문한 기자가 어디 소속이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이미 친 트럼프 인사인 폭스뉴스 앵커 출신 캐리 레이크를 VOA를 관장하는 미 국제방송처의 선임 고문 자리에 앉힌 상태였다. 그녀는 VOA 안에 ‘국가 안보상 위험’이 있고 조직이 썩어서 구제불능이라며 조직을 대폭 축소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49개 언어로 서비스하며 전세계에서 주간 3억 6천만 명의 시·청취자를 보유한 VOA의 연간 예산은 영화 “백설공주”의 제작비와 비슷한 정도이다) 그녀는 VOA 사태에 대해 묻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한 《60분》을 “평판이 안 좋은”(disreputable) 뉴스 프로그램이라 부르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60분》은 주지하다시피 역사상 최고의 뉴스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바디상을 25번이나 받았고, 에미상도 138개 받았다. 1992-93 시즌에는 드라마와 예능을 포함한 모든 프로그램 중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팻시 위다쿠스와라 기자는 소송 중이다. 하지만 그는 《60분》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설사 다음 주에 VOA가 정상화된다고 해도 보도국 분위기가 어떻겠냐고. 이런 분위기에서 자신들이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 보도할 수 있겠느냐고. 대통령을 기쁘게 하는 뉴스만 하게 되지는 않겠냐고.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without fear or favor)는 1896년 아돌프 옥스가 뉴욕타임스를 인수한 다음 날 사설면에 쓴 ‘경영 선언문’의 한 대목으로 지금도 뉴욕타임즈 빌딩 로비 한 구석을 지키고 있다.
'당파나 종파, 이해 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뉴스를 불편부당하게,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 전달하고…'
‘두려움과 호의도 없이’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언론은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다. 확신을 갖고 돌파해야 할 일도 있겠지만 의심과 확신은 늘 긴장 관계에 있다. 어떤 형태의 권력이든 권력은 의심을 싫어한다. (사실 개인도 싫어한다) 하지만 그러한 의심이 국가를 위험으로부터 구한다.
2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올해 개봉한 외국 독립예술영화 흥행 1위에 올라있는 《콘클라베》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교황 선출 선거인 콘클라베를 관장하는 로렌스 추기경의 연설 중 한 대목이다.
확신은 통합의 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것은 바로 의심과 손을 맞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만약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의심하는 교황을 허락하시도록 기도합시다.
현재 피소 중인 CBS의 모회사는 파라마운트사이고 파라마운트에는 중요한 경영 이슈가 하나 있다. “미션 임파서블”, “탑건” 등의 제작사 스카이댄스와 합병 심사가 그것이다. 이 합병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 심사의 주무 부처인 연방통신위원회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다.
《씨 잇 나우》의 에드워드 머로우, 《CBS 이브닝 뉴스》의 월터크롱 카이트와 댄 래더, 《60분》의 마이크 월러스 등 미국 방송 언론의 획을 그은 프로그램과 뉴스맨들을 배출한 CBS는 주간 방송인 《60분》을 통해 ‘클루니씨 브로드웨이에 가다’ (1939년 영화《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의 패러디)편과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편을 지난 3월23일과 30일에 잇달아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