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스포츠를 다루는 영화는 소재 자체가 영화의 주제로 인식되기 쉽다. 경기나 게임이 영화의 구조가 되다 보니 승부의 과정과 결과가 곧 영화의 장르나 색깔로 규정되는 것이다.
잘 만든 영화는 소재에 함몰되지 않고, 소재와 이야기를 통해 주제를 자연스럽게 발현한다. '록키'는 단순한 권투 영화가 아니고, '머니볼'은 뻔한 야구 영화가 아니다. 영화 안에 삶이 있고, 사람이 있다.
최근 극장가에 바둑과 골프를 소재로 한 한국 영화가 잇따라 개봉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두 영화 모두 다소 장벽이 높은 종목을 소재로 한만큼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라면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바둑이나 골프는 소재일 뿐 막상 영화를 보면 바둑돌, 골프공보다 이야기와 인물이 크게 보인다.
바둑을 다루는 영화인데 바둑 영화가 아니고, 골프를 다루는데 골프 영화가 아니라는 두 영화에는 각각 어떤 영화적 재미가 있을까.

'승부', 한국판 '퀸즈갬빗'…이병헌-유아인은 신의 한 수
우리나라 바둑계를 대표하는 두 레전드 조훈현과 이창호는 통산 314번 맞붙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다. 전적은 195승 119패의 성적을 거둔 제자 이창호의 우위다. 서로가 이기고 지기를 반복한 이 숱한 승부의 과정에는 어떤 비화가 숨겨져 있을까.
'승부'는 스승과 제자로 만나 라이벌이 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오프닝을 통해 한국 바둑 기사 최초로 세계 바둑을 제패했던 조훈현의 신화를 조명한 뒤, 내제자를 받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조훈현은 불과 6개월 만에 15살의 제자 이창호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한 집에서 먹고 자며 사제 관계를 이어간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에 걸맞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라 이야기만으로도 흡입력이 상당하다.

게다가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배우가 최고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 이병헌과 유아인이다. 이병헌은 전신(戰神)이라 불렸던 조훈현 국수를, 유아인은 산신(算神)이라 불렸던 이창호를 연기했다.
외모만 놓고 보자면 두 배우 모두 실존 인물과 크게 닮지 않았다. 이병헌과 유아인은 실존 인물의 분위기와 자세 등을 분석하고,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더해 제법 그럴듯한 룩을 만들어냈다. 외형의 부족한 싱크로율은 연기력으로 보완했다.
이병헌과 유아인 모두 모사와 연기의 선을 절묘하게 탄다. 덕분에 영화를 보고 나면 두 배우가 실존인물과 꼭 닮아 보인다는 인상을 남긴다.

이병헌은 제자에게 패배한 후 느낀 분노와 절망, 좌절의 감정을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 내며 승부사의 흔들리는 마음을 인간적으로 묘사했다.
유아인은 '쪼'가 매우 강한 배우고,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연기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절제의 미학을 발휘하며, 덜어내는 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조훈현 중심일 수밖에 없는 서사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유아인은 이병헌에게 뒤지지 않은 존재감을 발휘하며 대체불가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는 조훈현과 이창호를 끊임없이 대비해 두 사람이 벌이는 승부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싸우는 바둑을 구사했던 '제비' 조훈현, 지키는 바둑을 구사했던 '돌부처' 이창호의 승부사로서의 면모를 바둑의 기품과 철학을 더해 재현하며 두 국수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바둑돌이 움직이는 CG를 통해 양측의 대비되는 승부수를 조명하고, 바둑돌에 금이 가는 CG를 통해 파훼의 순간을 시각화하는 등 컴퓨터 그래픽 활용도 인상적이다.
'승부'는 패배를 딛고 부활하는 조훈현의 재기의 서사인 동시에 '나만의 바둑'을 정립해 가는 이창호의 성장담이다.
"또 너냐? 도리 없지. 이것이 승부니까."
두 사람의 국수전 관전기를 쓴 기자는 정상에서 다시 마주한 제자를 바라보는 조훈현의 마음을 이렇게 유추해 적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이 말은 인생이란 바둑판 앞에 선 우리의 마음과도 닿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상한데 재밌는 영화"…감독 하정우의 신작 '로비'

스타트업 대표인 창욱(하정우)은 4조 원이 걸린 스마트 주차장 국책사업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라이벌 회사 대표 광우(박병은)와 입찰 경쟁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국책 사업의 실권자인 조 장관(강말금)과 그녀의 남편 최 실장(김의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접대 골프에 발을 디디게 된다.
'로비' 역시 단순한 골프 영화는 아니다. 라이벌인 창욱과 광우의 악연을 소개한 뒤 본무대인 골프장으로 진입하는 영화는 라운딩 동안 벌어지는 일을 소동극처럼 다루며 블랙 코미디의 개성을 드러낸다.
영화의 원제는 '오비'(OB)였다. 'OB'는 'Out of Bound'의 약자로 골프에서 공이 정해진 코스 영역을 빠져나가는 것을 말한다. 골프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오비다. 오비가 났다는 것은 골프가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출과 주연을 겸한 하정우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다 우연"이라는 말로 영화를 압축하며 인생의 예측불가성과 불가항력성을 골프에 대입하고, 골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통해 웃음을 선사한다.
창욱팀 대 광우팀의 팀플레이가 된 라운딩은 우리네 사회생활의 축소판 같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실세에게 아부하고, 권력자는 그것을 이용한다. 누구나 그럴싸한 목표와 계획을 세우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로 미끄러지고 낙마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영화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을 캐릭터들의 앙상블로 그려내며 웃음과 동시에 풍자에도 도달한다.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2013)에서 병맛 코미디로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았던 하정우는 다시 한번 자신의 장기인 블랙 코미디 장르로 돌아왔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